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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39 조회 : 1,672




들녘너머로 각기 다른 읍내 건물들이 아스라이 바라보였다. 그 숱한 건물들 중에서 높다란 간장 공장의 굴뚝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붉은 벽돌로 높다랗게 쌓아올린 굴뚝 위로 퍼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멀어 희미하게 보였다.
눈만 뜨고 나면 질리도록 바라보는 읍내의 전경이건만 언제나 왠지 모를 익숙지 못한 낯설음이 늘 존재했다.

오후 햇살을 듬뿍 받고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동구 밖 둥구나무의 자태도 더없이 듬직하기만 했다. 방죽가 언덕 위에는 경수 아저씨가 두 아들과 함께 다정스레 하늘 높이 연을 띄우고 있었다.
높다랗게 떠오른 연의 모습이 그도 좋은지 동네 아이들은 목을 쳐들어 연이 움직이는 방향 따라 작은 눈망울을 움직였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진 흥남이 아저씨네 집에서는 아저씨가 텃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아직도 드문드문 파릇한 이파리가 뾰족하게 내민 누런 생강을 캐고 있는 것 같았다.

발길을 재촉하여 동구 밖에 있는 둥구나무에 닿았다. 둥구나무 아래 한쪽 공터에는 읍내에서 생사탕 집을 하는 아저씨가 몸을 구부려 화덕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숯불이 잘 달구어진 풍로 위에는 약탕관이 놓여 있어 비릿한 냄새가 주위로 잔뜩 퍼져나 조금은 역겹게 비위가 거슬렸다. 그 주위를 둘러싸고 동네 어른 몇 분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른들 틈사이로 고만고만한 동네 아이들이 자못 궁금한 표정으로 눈을 모아 바라보았다.

곰방대에 잎담배를 가득 담아 무신 기현이 할아버지께서 뱀장수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뱀이라는 건 수두 없이 보구는 살았지만 이렇게 고아먹는 건 말로만 들었지 첨보는 건디. 어찌. 이게 증말루다가 몸에 좋기는 헌 거여 어쩐거여?”

그러자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부채질을 하던 생사탕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궐연 한 개비를 꺼내면서 말문을 터트렸다.

“아, 글씨 이놈들이 생긴 게 좀 그렇지만 몸에 양기를 돋구는 디는 세상 어떤 것두 따라올 것이 없다닌께유. 산에는 산삼, 바다에는 해삼, 밭에는 인삼이 지아무리 좋다구덜 허지만 명산에 장생불로초라두 일단은 입에 넣어 봐야 안다구 먹어 봐야 그 효능을 아닌께루. 잘 해드릴 테니 이참에 영감님두 굵구 좋은 놈으루다가 한 탕 앉혀 드시지유?”

한참을 신명나게 떠벌리던 아저씨가 잠시 말문을 멈췄다. 그리고 나무 막대 손잡이가 달린 쇠갈고리로 두툼한 포대 자루 속에서 어린 아이 팔뚝 굵기만 한 구렁이 한 마리를 꺼냈다.
그런 다음 굵직한 구렁이를 두 손으로 치켜들어 보이자 옆에서 구경을 하시던 어른들이 징그러우신 듯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셨다.

“우주 만물 중에 뭐시 깨끗하다구 혀두, 진짜 따지구 보면 이놈들만큼 깨끗한 놈들은 없을끼구만유. 왜냐면, 뱀은 절대루 죽은 건 안 먹으닌께유. 그리구 이놈들이 생긴 건 요래두 큰기침 허구 사는 고관대작들이 몸보신하느라 오장육부 뱃속에 넣는 거시라 이래 뵈두 값이 만만치 않구먼유.”

뱀장수 아저씨가 주위를 둘러보고 너스레를 떨어 구성지게 입담을 늘어놓으시자 곁에서 함께 바라보시고 있던 진식이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글쎄 나두 잘은 모르지만, 아무래두 무신 효험이 쪼매라두 있으닌게 이걸 먹구덜 그러지 안 그러면 먹을라구 허건는감? 그리구 능구렁이는 소주에다가 술 담거서 몇 해 묵혔다가 먹으면 그게 골병든디는 좋다구덜 허던구먼 그려. 내사 비위가 약혀서 그냥 먹으라구 줘두 못 먹지만서두.”

생사탕 장사 아저씨가 손에 들고 있던 구렁이를 자루 속에 넣으며 나무집게를 들고 다시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아,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라 불여일식이라구. 겨울잠 자기 전 양기가 오를 대로 오른 이놈을 푹 고아서 먹기만 허면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해서 앞이 잘 안 보이구, 일어서 있으면 자꾸만 앉고 싶어 두 다리에 양기가 쭉 빠진 디나, 자고나면 온 몸뚱아리에 식은땀이 ‘주루루’ 나는 몸이 허한디, 그리고 밤마다 거시기를 한번 혀 볼라구 허면, 마음뿐이지 발동이 잘 안 걸려 마누라 눈치나 실금실금 봐야 허는 발기 부족에는 이거 이상 좋은 게 없구만이라우.”

뱀장수 아저씨께서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주저 없이 한동안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동네 어른들이 그 말솜씨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우리자 더욱 신이 난 듯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시냐.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한 가슴앓이, 또는 밥 잘 먹고 나면 건구역질이나 시쿠름한 헛트름이 올라오는 위장병에 직방이구, 해묵어 각혈이 심한 모진 폐병두 ‘칠점사’ 보름만 달여 먹으면 그냥 낫으닌게 한번씩 드셔 보랑께유.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내가 어디 뜨내기 뱀꾼도 아닌께. 읍내 내 점방으로 찾아와서 내 몸뚱이 아랫도리에 달린 거시기를 딱 짤라 가 버리랑께유.”

제법 신바람이 나시는 듯 목에 핏줄을 잔뜩 세워 한참 동안 열심히 이야기를 늘어놨다. 동네 어른들이 모두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생사탕 장사 아저씨도 말을 막상 해놓고 머쓱한지 한 번 씩하고 웃으며 풍로에 부채질을 했다. 그러자 풍로 앞에 앉아 계시던 민균이 아버지가 뱀장수 아저씨에게 물으셨다.

“그건 그렇구 뭐시냐, 지금 끓이구 있는 건 우리 동네 누가 먹을 건감? 그리 귀한 것이라구 허닌께 동네서 방구 깨나 뀌고 사는 사람인가 본디.”

민균이 아버지께서 자못 궁금한 얼굴로 물어보시자 뱀탕을 끓이고 있던 아저씨가 대답을 했다.

“이게유? 다 드실 분이 계시닌게 그리들 아시유. 그래서 이렇게 엄청나게 정성을 들여 팍 고고 있는 거 아닌감유.”

뱀장수 아저씨가 자꾸만 뜸을 들이며 궁금하게 말을 하시자 민균이 아버지가 내심 누구인가 궁금하신지 제차 물으셨다.

“아, 이 사람아 뭘 그리 뜸을 들이는가? 누가 먹는 지나 알어야 나두 한번쯤 먹어볼까 생각을 혀보던지 말던지 헐 꺼 아닌감, 안 그려?”

민균이 아버지께서 생사탕 장사 아저씨를 부추기는 듯 말씀하셨다. 그러자 뱀장수 아저씨가 잠시 망설이는 듯 머뭇머뭇하더니 그제서야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이런 말혀서 쓸랑가 모르것는디. 이번에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잣집에 젊디젊고 고우신 마님 새로 맞으신 분이 드실 꺼구먼유.”

말을 끝마치신 뱀장수 아저씨가 슬쩍 주위를 살피자 그 말을 들으신 민균이 아버지가 아시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럼 그렇지, 내가 속으루다가 얼쯤 생각은 했었는디 딱 맞구먼. 동네서 이런 거 먹을 사람 그 사람 빼고는 없으닌게. 암튼 그렇게 좋은 거라구 허닌게, 이참에 이놈 먹구 두 내외 신바람 나서 밤이 기니 짧으니 허면서 꽤나 좋아 허것구먼 그려.”

민균이 아버지가 커다랗게 웃으시자 동네 어른들도 모두 따라 커다랗게 껄껄대며 웃으셨다.

바람이 제법 싸하게 불어오는 원목 다리 위에는 민균이 어머니께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번에 해산을 한 큰며느리에게 국을 끓여 주시려는지 면 소재지에서 미역을 한 두름 사 들고 오는 것 같았다.
허나 뱀장수를 보시자마자 얼굴을 잔뜩 찡그리시며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리고 앞에 쪼그려 앉으셔 구경을 하시고 계신 민균이 아버지를 보고 책망하시는 듯 말을 했다.

“아! 큰 아이 몸두 풀었는디 어쩔려구 저리 험한 걸 보구 그러나 몰루긋네. 어여 집으루 갑시다, 어여유.”

한참 열심히 얘기를 하시던 민균이 아버지를 두어 차례 채근했다. 그러자 민균이 아버지가 큰며느리 몸 풀은 얘기가 나오자 무엇인가 느끼신 듯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큰기침을 한번 하시며 뒷짐을 지시고 집으로 향하셨다. 그러자 뱀장수 아저씨가 민균이 어머니께서 하신 험한 거라는 말이 비위에 거슬렸는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셨다.

한낮 햇살 따사하게 고루고루 비추는 고샅길로 접어드니 우현이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엊그제 뒷산에서 쪄 온 싸리나무로 삼태기를 엮고 계셨다. 마루 앞 토방엔 강아지들이 이제 눈을 떴는지 선홍색 혀를 내밀어 하품을 하며 볏짚 둥우리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어미가 잽싸게 강아지 목덜미를 가볍게 물어 제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건너편 진식이네 집에서는 진식이 어머니가 돌절구에 절굿공이로 고추를 빻아 채로 곱게 치시다가 이내 재채기를 하셨다.

길모퉁이 상수네 집에서는 상수 어머니와 상순이가 상수리나무 밑에서 상수리를 줍고 있었다. 한낮 햇살에 자르르 윤기가 나는 상수리 알들이 퍽이나 풍요롭게 보였다.
그리고 쪽파를 심어 놓은 텃밭 가장자리에서 늙은 수탉이 암탉의 등을 타고 올라 정수리를 쪼아 물고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동네 고샅길 가운데 이장댁에서는 메밀묵을 쑤시려는지 고부간에 정답게 맷돌을 돌려 메밀을 갈고 계셨다. 그리고 마루 위에는 면사무소에서 타 온 원조물자 밀가루 대여섯 포대가 가지런하게 보였다.

고샅길 한가운데 종구네 집 앞에는 동네에서 가장 잘사는 집이라고 멀리서 풍문을 듣고 찾아왔는지 대문 앞에 두 걸인이 버텨 서 있었다. 나이가 좀 작은 듯해 보이는 한 사람은 속이 텅 빈 미제 버터 깡통을 숟가락으로 박자에 맞춰 간드러지게 두드렸다.
그리고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한 분이 깡통을 두드리는 소리에 따라 어깨춤을 추시면서 구성지게 타령을 불러 그 소리가 고샅길로 퍼져 났다.

그 노랫가락의 흐름이 술 좋아하시는 병수 아버지가 기분이 아주 좋으실 때 이따금씩 부르시는 장타령과 비슷했다. 연자방앗간 공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고 두 걸인들을 빙 둘러싸고 노랫가락에 함께 흥이 나는 듯 바라보았다.

종구네 집 대문 앞에는 낯선 사람 하나 오기라도 하면 죽어라고 달려드는 마당가 얄미운 거위들도 긴 목을 쳐들고 함께 울어댔다. 아이들이 동네에 동냥꾼들이 오면 뒤를 따라다니며 손가락질하고 마구 놀려댔다.
그런데 이번에 온 분들에게는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달랐다. 모두들 흥겨운 가락에 관심을 가지고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한, 일 자나 들고나 보니 일선에 계신 우리낭군 무공훈장 달고 온다
두. 이 자나 들고나 보니 이승만박사 대통령 함태영선생 부통령 우리 대한민국 만만세다
석. 삼 자나 들고나 보니 원한 맺힌 삼팔선 민족소원 북진통일 이루기를 고대한다
넉. 사 자나 들고나 보니 사월이라 초파일에 관등불도 밝혔구나
다섯. 오 자나 들고나 보니 오월이라 단오날에 처녀 총각 정분났네

어얼시구시구 잘이헌다 저얼시구 잘도한다

여섯. 육 자나 들고나 보니 유월이라 유두날에 탁주 놀이가 좋을 씨고
일곱. 칠 자나 들고나 보니 칠월이라 칠석날에 견우 직녀가 짝을 짓네
여덟. 팔 자나 들고나 보니 팔월이라 한가위 날 보름달이 덩실 뜨고
아홉. 구 자나 들고나 보니 구월이라 구일 날에 국화주가 좋을 씨고
열. 장 자나 들고나 보니 멀고멀은 인생길에 정든 우리 님 만났으니 한 백년을 살아보세

어얼시구 들어간다 시구시구시구 잘이헌다 어허얼 시구가 잘도 헌다』

동냥을 하러 오신 두 분께서 한바탕 신바람 나게 타령을 부르셨다. 그러자 대문 밖으로 정희누나가 바가지에 쌀을 퍼 담아 들고 나와 아저씨들의 자루 속에 부어 주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 눈치를 살피는가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저씨들이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듯이 인사를 하며 자루를 어깨에 둘러메시고 건너편에 있는 이장님 댁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계속해서 부르는 각설이 타령의 구성진 가락이 골목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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