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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56 조회 : 1,454




침묵하는 겨울은 땅에 떨어져 메말라 버린 나뭇잎이 마지막 남긴 슬픈 눈빛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했다. 면소재지로부터 마을로 이어지는 서낭당 언덕 위에 참나무 한 그루가 오도카니 서 있어 퍽이나 외롭게 보였다. 그 우듬지에 허여멀건 겨울 하늘 한 조각이 맥(脈)없이 걸려 있었다.

허름한 부엌은 제대로 된 나무 문짝 하나 달려있지 않았다. 그저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이나 막아 보려고 빈 가마니를 툭 뜯어 기다랗게 걸쳐놓은 아주 볼품없는 상태였다.
검정 가마솥을 뜨겁게 달구며 아궁이 밖으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흙냄새 물씬 풍기는 부뚜막엔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눈 시려오는 모정이 소리 없이 움트고 있었다.
허술하게 지은 초가집 트여진 벽 틈사이로 골바람이 매섭게 새어들어 냉습(冷濕)한 추위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럴 때마다 한줌 볕이 마냥 그리워 양지 바른 쪽에 등을 기대어 버릇처럼 하늘을 치켜 바라보았다.
그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쩡대는 해는 밖 둥구나무 머리에 능청스럽게 앉아 동네 안을 짯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 인색하게 짧기만 한 겨울 해가 그라도 반나절쯤은 내 집 울안에 따스하게 머물러 줄 것만 같았다.

고샅길 따라 남쪽 끝머리 종금이 누나네 집 마당엔 이른 아침부터 널따랗게 차일이 쳐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추위에 몸을 녹이라고 모닥불을 피우나 부연 연기가 흐트러지고 다소 부산스럽게 부는 바람에 차일 천장머리가 들썩거리며 흔들리는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사실 잔치를 하루 앞둔 어제부터 날씨가 찌뿌듯해 결혼식 날 날이 흐릴까봐 조금은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날이 밝아 아침녘이 되자 하늘은 마음에 쏙 들게 맑기만 했다. 아마도 오늘 성례를 올리는 두 사람의 앞날을 마냥 축복해 주려는 것 같았다.

싸리나무로 엮어 놓은 울타리를 넘어 바라보이는 벼랑바위 앞에는 오랜만에 보는 읍내 시발택시 한 대가 눈에 띄었다.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동네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장가를 들려고 오는 신랑이 강경 읍내로부터 타고 오는 것 같았다.

방죽가 외딴집에는 기현이 할아버지가 혼례식에 참석하시려는지 모처럼 만에 검정 통영갓에 하얀 도포를 입으시고 마을로 향하려 집을 나서는 참이었다. 한편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흥남이 아저씨 집에서는 두 내외분이 가벼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께서는 아직은 동네 사람들과 낮이 선 탓에 서먹하신지 종금이 누나의 혼례식에 가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흥남이 아저씨께서는 아주머니와 함께 가고 싶어 자꾸만 조르고 있었다.

동네 고샅길로 들어서자 동네 사람들이 혼례식을 올리는 신랑 각시 얼굴 구경을 하려고 천천히 집을 나서고 있었다. 칠순을 훨씬 넘기셔 허리가 굽으신 옥순이 친할머니도 구경을 하려 가시는지 뽕나무로 깎아 만든 지팡이를 짚고 걸어 오셨다.
그러다 바람에 눈이 스쳐 눈물이 자꾸만 나오는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신 훔치셨다.

이윽고 새 신랑이 타고 오는 시발택시가 마을 안 고샅길로 들어섰다. 동네 아이들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달려가서 차안을 요리저리 살펴보며 구경을 했다. 신랑이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택시가 머리를 돌려 다시 읍내로 돌아가려고 면소재지로 향했다. 그러자 마음이 좀 허전해진 동네 아이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다음 구경거리가 있는 이장님 댁으로 모두 몰려갔다.
이장님댁 마당엔 면내에서 치루는 모든 혼례식에 약방에 감초처럼 빠지질 않는 새텃마을 조랑말이 눈에 띄었다. 조랑말은 나뭇조각을 이어대고 대나무로 테를 두른 둥그런 여물통에 머릴 디밀고 연신 입을 좌우로 돌려가며 여물을 먹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그 동안 누런 소는 많이 보아 왔지만 밤색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말은 자주 볼 수가 없어 신기하기만 했다. 어쩌다 면 소재지 큰길가를 지나가는 말의 모습을 먼발치서 눈동냥 정도로 보아왔던 터라 그 모습이 눈에 새롭게만 보였다.
더욱이 몸집이 작은 조랑말은 아주 오랜만에 보게 되어 퍽이나 생소하게 느껴졌는지 조랑말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점점 조랑말에게 가까이 다가서려 하자 조랑말 임자인 문수네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소릴 치셨다.

“야! 이놈들아 구경허는 것이사 좋다만은 너무 바짝 달라붙으면 어쩐다냐 그러다가 말이 뒷발로 얼굴이라도 걷어차면 어쩔라구 자꾸 바싹 달려드냐?”

그러자 이장님이 타동네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시끄럽게 하지 말고 연자방앗간 공터에 가서 놀라고 하시며 아이들을 대문 밖으로 쫓으셨다. 규모가 지극히 단출한 시골집은 겨우 방 두 칸 정도 달고 사는 크기의 초가집이라 집이 협소하기만 했다.
무슨 큰일을 치르려 하면 늘 가까운 옆집의 방을 빌려서 큰일들을 치렀다. 그런 탓에 잔치를 치루는 종금이 누나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겨우 방이 두 칸뿐인 작은 초가집이여서 혼례를 치르려고 먼데서 온 신랑 측 손님들이 이장님 댁에 잠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유로 이장님댁 안방에는 신랑 측 부모들과 신랑이 신부 측인 종금이 누나네 집으로부터 기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가 키 작은 두 그루 향나무도 혼례를 축복해 주려는 듯했다. 다스한 햇살을 듬뿍 머리에 이고 어렵사리 발뒤꿈치를 들어 저 또한 구경을 하려는 듯해 보였다.
높고 널따랗게 차일이 처진 종금이 누나네 마당 초례청에는 동네 어른들이 준비를 하시느라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그리고 마당 안에는 혼례 사진을 찍으러 왔는지 지난번 졸업사진을 찍었을 때 보았던 읍내 사진관 아저씨의 모습도 보였다.
작아 납작하게만 보이는 모자를 단작스럽게 머리에 쓴 기다란 수염의 읍내 사진관 아저씨의 모습이 여러 사람들 중에 유난스레 돋보였다.

마당 한 가운데 놓인 대례상에 위에는 굵은 초가 꼽힌 촛대가 자릴 했다. 그리고 새하얀 호리병 두 개에 갓 꺾어온 듯 파릇파릇한 소나무 가지와 잎이 무성한 대나무 가지가 꽂혀 있었다.
빨갛게 잘 익은 큼직한 사과와 한입 베어 물면 금방이라도 물이 줄줄 흐를 듯 노란 배 그리고 곱게 깎아 쌓아 올려놓은 밤과 곶감 등의 과일과 백미도 정갈하게 그릇에 담겨 있었다. 그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청색과 홍색 보자기에 싸여 있는 수탉과 암탉의 모습이었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수탉은 이른 새벽 울음을 터트려 악귀를 쫓으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라고 했다. 그리고 암탉은 농경에 의존해 사는 사회의 모습처럼 닭이 알을 낳고 부화를 하여 번식을 하듯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뜻으로 올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방에는 종금이 누나가 연지곤지를 찍고 분단장을 곱게 하여 혼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무늬가 곱살한 원삼을 입고 머리 위에는 여러 가지 고운 색깔의 구슬 장식이 달린 쪽두리를 쓰고 초초한 얼굴로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곱단장한 종금이 누나 모습을 한번쯤은 보려고 방 안으로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주위가 번잡스러워지자 초례청에 놓을 물건들을 나르시던 민균이 어머니가 방문 쪽을 바라보시며 한 말씀하셨다.

“아따! 바뻐 죽것는디 싸게싸게들 서둘러서 일들이나 허지 뭐시 그리 궁금혀서 들락날락거리는지 모르것네 이미 다들 한번씩 혀 본거라 이맛 저맛 다 알고 있으면서 새삼스럽게 뭘 그러는지들 모르것네.”

그렇게 한바탕 입에 바른 말을 하시자 모두들 껄껄 웃으시며 각자 맡은 일들을 하고 계셨다. 조랑말을 타고 오는 신랑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의 소리가 대문 앞에 요란스레 들려오자 마당에 모여 있던 동네사람들은 저마다 새 신랑이 온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말에서 내린 신랑이 얼굴을 면포로 살며시 가리고 그 앞에 기러기 애비가 비단 보자기에 쌓은 나무 기러기 한 쌍을 손에 들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죽을 때까지 오직 자기의 짝만을 위하여 산다는 의미의 기러기를 신랑이 작은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새신랑이 종금이 누나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며 기러기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기러기를 안고 종금이 누나에게 전해주려고 방안으로 들어가셨다.

양쪽 집 부모들이 촛불에 불을 켜시고 잔치에 오신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혼례를 주관하는 진식이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신랑이 면포로 얼굴을 가리고 서 있었다.
안방에서는 종금이 누나가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의 부축을 받으며 마루 위에 깔려 있는 왕골 돗자리를 조심스레 밟고 초례청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세숫대야에 담긴 물에 손을 씻고 종금이 누나가 신랑을 향해 절을 두 번 했다.
그러자 신랑이 절을 한 번하고 다시 두 차례 정도 절을 주고받았다. 식을 진행하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짓궂은 동네사람 누군가 종금이 누나를 향해 말을 던졌다.

“종금아 너무 좋다구 웃지 말아야 혀 웃으면 딸 낳으닌게.”

그러자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커다랗게 껄껄대며 웃었다. 두 쪽의 표주박이 서로 합쳐 하나의 박을 이룬다는 깊은 뜻으로 표주박으로 술을 서로 건네받으며 마시는데 신랑은 조금 마시는 듯했고, 종금이 누나는 겨우 입을 대는 것처럼 마시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합환주로 평생을 언약하는 엄숙한 식이 끝났다. 안방에 자릴 잡은 신랑 측 부모에게 폐백을 드리려 신랑과 신부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담 너머로 구경을 하던 옥순이도 중례누나와 함께 슬그머니 마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동네 어른 몇 분이 초례상을 치우기 시작하자 한쪽에서는 동네에서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부터 음식상을 차려 멍석 위에 앉자 드시기 시작했다.
멍석 위에 놓인 상 위에 음식들이 놓이기 시작하여 동네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앉아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우리들도 자리에 앉아 국수와 떡 그리고 과일 조각들을 아주 맛있게 나눠먹었다.

어른들 말에 없는 집에 자식 시집 장가보내고 나면 기둥뿌리 하나 빠진다고 했다. 온 동네 사람들로 마당이 꽉 차고 여자 어른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드실 정도로 그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더욱이 혼숫감 장만하는데 들어가는 돈도 그렇지만 음식 장만하는데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아 어른들의 말씀이 맞는 듯했다. 그러니 그 많은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종금이 누나 어머니가 논문서를 종구 아버지에게 잡히고 장리로 돈을 빌려 잔치를 치루고 있었다.
그런 탓에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 지긋지긋한 장리 빚으로 우리 집이 겪었던 옛날 일들이 하나둘 머리에 떠올라 마음이 아주 편치는 못한 듯했다.

동네 아낙네들은 첫날밤 치루는 신랑 신부 구경을 하려면 문종이에 침을 발라 뚫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시며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었다.
허나 기성이 형만은 얼굴 표정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기들 결혼을 끝내 반대하고 묵묵부답(默默不答)인 종구 아버지에 대한 야속한 생각에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인지 여느 날과는 달리 술을 좀 많이 마신 듯했다. 그러던 기성이 형이 경수 아저씨와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동네 사람들 모두 들으라고 말을 했다.

“암튼 우리 동네에서 제일 이쁜 처녀를 훔쳐가닌께 날이 저물기만 하면 새신랑을 덥석 등에 둘러업고 동네 사랑방으로 데리고 가서 광목천으로 발목을 묶어 어깨에 바싹 둘러메고 방망이로 발바닥을 세게 쳐 혼쭐을 내줘야 쓰것네.”

그러자 마당에 마련한 자리에 앉자 음식을 먹고 있던 동네 사람들 모두가 수더분하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한 장소에 모두 모여 스스럼없이 웃고 즐기는 그런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마음 흐뭇한 일이었다.
어느덧 중천에 떠오른 해도 성례를 올려 백년을 기약한 두 신혼부부는 물론이려니와 마당 안이 꽉 들어차게 자리를 함께한 온 마을 사람들을 축복해 주려는 듯 그 모두를 감싸 안으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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