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날 동안 내린 눈이 온 누리를 설원으로 장식한 후에서야 멈췄다. 그리고 눈이 멈추기 무섭게 맹추위가 기승(氣勝)을 떨쳤다. 삭막한 북풍이 요동(搖動)을 치며 불어와 주위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을 꽁꽁 얼어붙게 하더니 이제는 저도 지친 듯 바람이 자지러들자 해말끔한 해는 눈 덮인 지붕 위로 한걸음 바짝 다가서고 있었다. 그리 옴팡지게 내리던 눈이 그치자 기다린 듯 맨 먼저 반기는 것은 울타리 안에 서 있는 대추나무의 앙상한 가지 사이를 쉴 새 없이 촐싹촐싹 옮겨 다니며 시끄럽게 재잘대는 참새들이었다.
햇살 누르스름하게 달라붙는 봉창 밑을 바라보면 아랫목에 얼마 동안은 버텨낼 겨울 양식이 있어 그리도 마음 부듯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조금씩 줄어드는 쌀가마니와 고구마 둥지를 바라보면 더 이상은 양식이 나올 곳조차 없는 궁색한 삶이기에 마음이 온통 불안해졌다. 그런 마음을 가누려 아침 일찍 부터 물두멍에 물을 채우려 부엌에 들어섰다. 혹시라도 줄어드는 양식 걱정으로 찌푸린 내 얼굴이 순덕이 어머니에게 부담을 드릴까 싶어 조심을 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줄어드는 나뭇간에 쌓인 볏짚을 조심스레 눈으로만 세어 볼 수밖에 없었다.
물지게 고리가 손에 쩍쩍 들러붙고 귀가 떨어져 나갈 듯이 아려 와도 물은 우리 집 네 식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용수였기에 양쪽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아랫마을 우물터로 향했다. 동네로 향하는 큰길로 이어진 소로에 오고가는 사람이 없어 쌓인 눈의 깊이가 발목가지 차올라 눈에 젖은 신발이 찬 기류와 맞닿아 온통 얼어붙으려는지 눈물이 날 정도로 두 발이 시려왔다. 그나마 큰길로 들어서 발등에 쌓였던 눈을 떨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해 지는 듯했으나 가혹하게 온몸으로 스며드는 추위는 매한가지였다.
동네 우물터에 닿으니 날이 추웠던지라 물을 깃는 사람들이 하나도 뵈질 않아 살얼음이 얼어붙은 우물터가 가난에 쪼들려 사는 내 모습처럼 그리도 초라하게 보였다. 우물터에 갈 때는 그래도 물통이 텅 비어 조금은 수월했는데 양쪽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미끄러운 빙판 길을 걸으려니 조그만 기울어도 이내 넘어질 것 같아 양쪽 손에 힘을 줘 물지게 고리를 꽉 붙잡고 조심스레 동네 고샅길을 빠져나왔다. 사방이 온통 탁 트여진 큰길로 들어서니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거세 차츰차츰 귀가 시려와 온몸이 저절로 웅크려졌다. 그리 추웠어도 참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그토록 추운 날에도 네 식구를 먹여 살리려고 밤늦도록 뜨개질을 하시는 내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느 때는 바로 눈앞에 닿을 듯 보였던 내 집이 그리도 멀게만 느껴졌다. 방죽가를 지나 철길을 건너 언덕바지로 오르려니 숨이 차오르고 추워 탓인지 두 다리가 조금씩 후들거렸다. 그리 참기 버거운 추위 속에서도 언덕바지 아래 새하얗게 쌓인 눈 속에 바라보이는 내 작은 초가집이 그리도 아담스럽게 보여 정이 물큰 묻어나 더욱 발길을 재촉했다.
사립짝으로 들어서 부엌으로 다가서니 순덕이 어머니가 물통을 재빨리 받으셔 두멍에 부으시며 어눌하신 목소리로 아궁이에 불을 쬐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이 애처로운지 얼어붙으려는 내 두 손을 꽉 붙들어 어머니의 양쪽 겨드랑 사이에 넣으셔 당신의 온기로 녹여 주시려 하는 뜨거운 모정에 더욱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리 밑에 사는 거지가 모닥불에 살이 찐다'는 말처럼 활 타오르는 아궁이에 불은 온통 얼어붙은 내 몸을 사르르 녹여 줘 온몸이 나른해졌다.
겨울방학 동안에 땔감을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틈틈이 산에 올라 마른 삭정이를 주웠다. 더러는 산토끼와 꿩을 잡으려고도 했다. 어쩌다 눈이 옴팡지게 내린 날엔 산토끼와 꿩이 쌓인 눈 속에 빠져 도망을 못 치면 발 빠른 검둥이도 있고 조금은 동작이 느린 듯싶지만 두 귀가 아예 축 늘어져 귀를 덮고 있는 인식이네 바둑이도 있어 운 좋게 잡을 수도 있다는 저마다의 마음에 욕심이 잔뜩 부풀어 올랐었다.
오후로 접어들자 다소는 추위가 누그러지는 듯해 동네 주현이와 동생 수영이 그리고 우물가에 사는 인식이가 삭정이를 주우러 산에 오르자고 집으로 찾아왔다. 등 뒤에 바지게를 지고 작대기를 가볍게 흔들며 들녘보다 추위가 훨씬 더해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인 산길 입목 언덕배기에 올랐다.
다스하게 내리쪼이는 오후 햇살에 겉녹은 눈길이 더욱 미끄럽기만 한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우리들보다 조금 앞서 가던 동네 우물가에 사는 인식이가 ‘앵두나무 우물가’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끝 소절에 가사를 바꿔서 ‘기성이 형 정희 누나도 단봇짐을 쌌다네.’ 라고 불렀다. 뒤따라가던 주현이와 수영이 그리고 나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누구 듣는 사람 없는 산속이라 커다랗게 웃고 말았다. 저 혼자서 노래를 끝마친 인식이가 처음에는 멍하니 바라보더니 우리들의 웃는 모습이 오히려 더 우스웠는지 깔깔대었다.
그리고 오솔길에서 조금 떨어진 양지바른 곳에 있는 종구네 할아버지 분묘가 눈에 띄자 ‘에이, 재수 없어. 퉤퉤!’하며 침을 뱉고 나서 그도 성이 덜 차는지 덜렁 달려가 분묘 앞에 세워 놓은 돌비석을 냅다 걷어찼다. 그러자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주현이가 인식이에게 말을 했다.
“야, 인식아! 그만 혀. 너 그러다가 종구가 보면 어쩔라구 그러냐?”
그래도 분에 가득 찬 얼굴로 인식이가 주현이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했다.
“형은 직접 안 당해 봐서 그러나 모르것는디, 잘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나두 첨에는 아무것두 모르구 동네 형이라고 졸졸 따라 댕기면서 오꼬시허구 셈베 쪼가리 조금씩 얻어먹는 재미로 꼬붕노릇도 많이 했지만, 재작년 여름밤에 모깃불 앞에서 울 엄니가 말해 줘서 알았는디, 그놈의 종구네 삼촌이 죽창을 들고 밤에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우리 아버지를 밧줄로 꽁꽁 묶어 가지구 끌고가서 몽둥이로 마구 두둘겨 패는 바람에 골병이 들어서 돌아가셨다는 소리 듣고 나서부터는 종구는 말할 것두 없구, 그 식구들도 그때부터 원수가 됐으닌께. 형은 절대루 종구편 들라구 하지 마. 그리구 저랑 나랑 겨우 한 살 턱인데 뭐 쌈을 혀두 내가 절대로 힘이 딸릴 것 같지두 않구. 한판 붙어두 키만 컸지 별로 힘두 없을 거 같어. 충분하닌께 하나두 겁날 것 없어.”
그렇게 분개하는 인식이의 골 깊은 아픔에 주현이와 수영이는 그리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본질적인 아픔이 조금 다르긴 하여도 이해의 대상이 종구네 집이라는 공통점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립짝을 나설 때는 검둥이가 밥값을 하느라고 무엇인가 한몫을 할 것 같이 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인식이네 바둑이를 만나고 나서는 꼴에 달린 값을 하려나 늘 바둑이 옆에만 맴돌아 산토기와 꿩을 찾는 일은 까맣게 잊은 듯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여 그런 검둥이를 크게 탓하지 않았다.
산길을 오르며 ‘사르락’ 소리에도 긴장을 하여 고개 돌려 바라보면 바람결에 나부끼는 가랑잎 소리뿐이었다. 한번쯤 마주칠 것 같았던 토끼는커녕 털 빠진 꿩 새끼 한 마리도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리도 흔히 눈에 보이던 다람쥐도설한의 추위를 피해 굴속 깊이 숨었는지 단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 세월 동안 그리 수없이 바라만 보았지만 혼자서는 단 한 번도 오르질 못하였던 가장 높다란 산릉선에 오르려 했다.
그 산 너머엔 무엇이 보일까 하는 궁금증과 높이 올라가면 늘 마음속에 그려왔던 줄기차게 밀려오던 그리움에 대한 답을 얼마쯤은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차오르는 숨을 가누고 바위 턱에 몇 차례 쉬엄쉬엄 쉬어 가며 시간이 얼마쯤 지나 높다란 산마루턱에 겨우 올랐다.
귓속까지 윙윙거리는 세찬 바람에 얼굴과 콧등이 시리고 손끝과 발끝이 아려 정신이 번쩍 드는 듯 산 밑을 내려다보았다. 하늘 멀리 동북 방향으로 논산 읍내 모습이 희누르스름하게 보였다. 다시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니 확 트인 들녘을 가르며 끝 모르게 이어진 금강 물줄기가 허옇게 바라보여 둑 옆으로 오막조막한 강경 읍내 건물들이 정겹게 보였다.
하얀 눈 속에 검정 화물열차는 산모퉁이에 꼬리를 감아 말듯이 감추고 산 밑 멀리 바라보이는 물레치기 골짜기에 있는 아버지 분묘에 덮인 눈이 듬성듬성 보여 마음 한쪽 텅 빈 것처럼 허전하기만 했다.
골짝 끝머리 비석골에는 인식이 아버지와 기성이 형 아버지의 분묘가 사이좋게 자릴 잡아 사후에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듯하게 보였다.
모처럼 산마루에 올라 기분이 좋았는지 주현이와 수영이는 산 밑을 향해 ‘야호!’ 하면서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 쾌활하게 보이던 인식이가 말없이 비석골 쪽을 바라보고 있어 측은해지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설움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잔뜩 얼어붙은 산야를 바라보며 ‘아버지’ 하고 소리를 있는 힘대로 내어 지르니, 잔뜩 기분이 들떠 있던 주현이와 수영이가 둥그런 눈으로 울먹이는 나를 바라보다 조금은 거북했던지 그만 고개를 외면하듯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내 옆에 말없이 서 있던 인식이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상민이 형 지금 뭐라고 소리를 질렀어? 나도 꽉 참느라구 죽것는디, 뭐한다고 아버지를 부르는가 모르것구먼. 괜히 속만 상하게 뭐 그렇게 한다고 죽은 양반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디?”
인식이가 숙연해진 내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어 마주치는 눈빛에 서로의 아픔을 읽어 달래주려는 듯 보였고, 내가 그토록 애써 찾으려 하였던 그리움이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켜켜이 쌓여진 정이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더는 그런 숙연한 분위기가 바라보기 힘겨웠던지 서두르는 듯 주현이가 지게를 얼른 걸머지고 산자락으로 내려서려 했다.
“야! 이러다가 해 다 떨어질라 얼른 수랑골로 내려가서 한바탕 부지런히 삭정이 주워 모아 한 짐씩 벌렁 지고 내려가자.”
가슴속 깊이 쌓인 모든 시름 산자락에 묻어 두고 인식이와 함께 지게를 지고 내려가려는데 바람소리 웅웅거려 왠지 을씨년스럽기도 한 산마루턱에 가득 들어찬 갈참나무 제일 높은 끝가지에 보기 드문 황금 가지 겨우살이가 눈에 띠었다.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나무줄기에 끈끈하게 착생하여 혹한 영하의 추위에도 얼지 않고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부러지지 않는 식물로 아주 강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그 겨우살이가 ‘술에 찌든 간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동의보감에도 쓰여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집안에 악귀를 쫓아 준다 하여 어쩌다 운 좋게 높다랗게 달려 있는 겨우살이가 눈에 띄기만 하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꼭 따려고 했다.
겨우살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동네 술 좋아하시는 ‘신고산 타령’ 병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혼자서 피식 웃고 말았다.
해가 들녘보다는 일찍 저무는 산속 저녁을 재촉하는 듯 불기 시작하는 칼바람에 얼굴과 콧등이 온통 시렸다. 손발이 감각을 잃은 듯 둔해지고 가슴이 저려 사타구니까지 아려와 무엇보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두툼한 이불을 덮어놓은 따뜻한 아랫목이었다.
산자락을 내려선 우리들은 얼굴에 맞바람 치는 북풍에 눈이 시려 눈물이 저절로 났다. 그래도 저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욕심껏 삭정이를 꺾어 모아 바지게에 한 짐이 너끈하게 올려 쌓아 어깨에 걸머지고 불그레하게 달아오르는 저녁노을을 등에 지고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지면 산속의 고요는 적멸을 느낄 만큼 어둠의 장이 펼쳐졌다. 한겨울 산골의 밤은 이따금 들려오는 고라니 울음소리와 밤 부엉이 소리가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찬바람 벗 삼고 밤을 지켜 새워 첫새벽 여명에게 슬며시 자릴 물려주려는 별 하나가 차디찬 하늘에 외롭게 붙박이 하고 있었다. 오목하게 작은 집 끄름 냄새 물씬 나는 석유 등잔의 불심지 너울거리는 방 안에 불씨 성성한 화롯불을 사이에 두고 식구들끼리 도란도란 둘러앉았다. 그리고 늦가을에 모아 놓은 알밤을 꺼내 밑동을 칼로 갈라 구수하게 익은 군밤을 나눠 먹으며 식구끼리 더 가깝게 살을 붙이고 살았다.
그러다 불씨 사그라들면 이리저리 쏘삭거려 불씨를 다시 모아 놓고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이야기들 무척이나 많았는데 잘 떠오르지 않으면 한말 또 하고 또 한말을 한번쯤 더했다. 그러다 몇 차례 조는 듯 옆으로 스르르 몸 기울여 어렴풋이 잠이 들면 어머니는 두툼한 솜이불로 나를 감싸 덮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