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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71 조회 : 1,594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향(志向)하는 그곳이 설령 높고 험난할지라도 내 모든 뜻과 정성을 모아 서두름 없이 다가서려 했다. 그런 연약한 나를 하늘이 긍휼(矜恤)히 여겨 시험치 말고 온유하게 받아 주길 늘 마음속으로 갈구(渴求)했다.

문틈 사이로 새어드는 황소바람이 여법 매서웠다. 시도 때도 없이 파고드는 한 가닥 그리움이 어슴푸레한 방안을 가득 메우려 했다. 그래서 방문으로 내비치는 햇살에 답을 물어보아도 그 또한 말이 없어 마음이 더욱 허(虛)하기만 했다.

드넓기만 한 세상을 향해 가슴 시린 어릿광대짓을 그리 수도 없이 해보았건만 이루지 못할 꿈은 언제나 발끝에 머물렀다. 그런 탓에 시름 찬 애증을 반추하는 동안 그리 깊고 투명한 세월은 말없이 흐르고만 있었다.

정연(精淵0한 아침 해는 먼 길 떠나려 첫차를 기다리는 나그네의 침정(沈靜)된 마음처럼 숙연한 모습으로 들녘 머리에 머물고 있었다. 열약한 환경에서도 가끔씩은 가벼운 설렘으로 다가서는 날들이 있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분한 현실이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리고 가슴이 아려오도록 슬프기만 한 그런 기억일지라도 하나하나 놓치질 않고 뇌리 속에 빼꼭하게 담아 놓고 싶었다. 그래서 훗날 아주 먼 훗날 문득 생각이나 다시 기억을 더듬게 될지라도 서로 다른 느낌으로 떠오르지 않길 바라고 싶었다.

불과 한 달여의 방학 기간인데도 꽤나 길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늘 보고 지나쳤던 학교 주변 샛터마을의 아기자기한 거리의 모습은 커다란 변화가 없이 그대로였다. 학교 울타리를 끼고 도는 달구지 길엔 면내에 있는 각 마을로 술 배달을 나선 막걸리 나무 술통을 가득 실은 조랑말이 말방울 소리를 드높이며 교문 앞을 지났다. 방학 전에는 말방울 소리를 드문드문 들어 본 터라 별다른 느낌을 못 느꼈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는 탓인지 조금은 생소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머지않아 정들었던 학교를 졸업하여 우리 모두들 저마다의 갈 길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그 모두가 아련한 추억 속에 퍽이나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어쩌다 오가는 길가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더라도 반가운 만큼은 서먹함 속에 다소는 생소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찬 마음 한쪽이 싸늘한 운동장에 맴도는 냉기처럼 허전하기도 했다.

휴식은 다음의 도약을 위한 준비의 과정인 듯 방학 기간 동안 적막했던 교정이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소리로 잠시 동안 잃었던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동안 뵙지 못했던 눈에 익은 선생님들의 모습이 그리도 반갑기만 했다.

방학으로 교실을 비웠던 만큼이나 난로에서 흘러나오는 녹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치지직’하는 소리를 내며 연통 가장자리에 누르스름한 흔적을 남겼다. 열기가 알맞게 달아오른 난로 위 주전자에는 구수한 냄새 배어나는 보리차가 한동안 끊겼던 우리들의 우정에 대화를 부추기듯 포말(泡沫)을 이루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이십 여일도 채 남지 않은 학교생활이었다. 교실을 메우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은 상급학교인 중학교 입학시험에 대한 불안감과 졸업에 대한 서운함으로 뒤엉켜 저마다 조금씩은 들떠 있었다.

‘땡땡땡 땡땡땡’ 교무실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귓가에 정겹게 와 닿았다. ‘따그닥, 따그닥’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는 반가운 소리였다. 그것은 매끄러운 복도를 걸어오시는 담임선생님의 슬리퍼 소리였다. 모처럼만에 보게 되는 제자들의 건강한 모습에 마음이 부듯하신지 교단에 오르신 선생님의 얼굴이 그리도 환하게 보였다.

변함없이 우리들은 큰소리로 ‘우리의 맹세’를 교실이 떠내려가라고 외친 후 교단에 오르신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이제 개학을 하여 너희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게 되니 선생님은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기만 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학교생활 더욱 열심히 하여 너희들의 뒤를 따라갈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남겨주길 바라고, 그동안 배워 온 공부를 총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잘 정리를 하여 다가오는 상급학교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길 바란다. 그리고 가정통신문을 발송할 것이지만 너희들 졸업식이 다음달 2월17일로 날짜가 잡혔으니, 그리들 알고 졸업식 전에 중학교 입학원서를 제출할 것이니 그리 알기 바란다.”

말씀을 마치신 선생님이 콧등 아래로 조금 내려온 안경을 추켜올리시자 다른 날 같으면 온통 시끄러울 교실이 미리 약속한 것처럼 숙연하기만 했다.

그 시절 논산 군내 중학교 중에서 전기 시험을 치루는 학교는 강경에 있는 강경중학교와 강경여자중학교 그리고 논산에 있는 논산중학교 세 곳이었다. 학교 전체 성적순으로 상위권에 해당하는 남녀 학생들은 강경중학교와 강경여자중학교에 응시를 하였고, 그 다음 중상위권에 해당하는 남학생들은 논산에 있는 논산중학교에 응시를 하였다.

전기 세 곳의 입학시험이 끝난 후 전기 입학시험에서 탈락한 학생들과 학교 성적이 중하위권에 머물던 학생들이 후기 입학시험으로 논산에 있는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건중학교와 사립학교인 논산에 있는 기민중학교에 응시를 했다.
그리고 학업 성적에 상관없이 가정생활 형편이 여의치 못한 극빈 가정의 학생들은 은진미륵(恩津彌勒)이 있는 은진면에 있는 중등 교육과정인 은진고등공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일제 강제 점령 말기 민족 해방을 몇 해 앞에 두고 세워진 목조건물 시골 작은 학교는 강당 하나 제대로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 큰 행사가 있으면 두 개의 교실 사이에 미닫이로 된 문짝을 걷어내어 두 개의 교실을 하나의 큰 공간으로 만들어 사용을 했다.
그런 탓에 이번에 치르게 되는 우리들의 졸업식 때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교실을 터서 임시로 강당을 만들 것 같았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중학교 입학원서 제출 요령에 대한 ‘가정통신문’과 졸업식에 내빈들을 초대하는 안내 글이 담긴 ‘초대장’을 작성하시려고 철판 위에 등사원지를 올려놓으시고 필경(筆耕)을 하고 계셨다

오전 마지막 수업시간쯤에 논산 읍내 사진관을 하시는 아저씨가 학교에 오셨다. 육학년 전체 학생들은 운동장에 나가 교실 벽에 이어진 검정 나무판자를 배경으로 입학원서에 첨부할 증명사진을 찍었다.
남자 아이들은 별스레 옷과 머리에 신경을 덜 쓰는 듯했는데 여학생들은 호주머니에서 작은 빗을 꺼내어 손거울을 돌려 보며 옷차림새와 머리를 매만지고 특히나 성격이 좀 유별난 석란이는 모양새에 유별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별스레 키가 작은 내 친구 옥순이도 제 나름대로 입을 잔뜩 예쁘게 오므려 웃는 얼굴로 사진 촬영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노란색 칠이 반쯤이나 벗겨진 양철 단추가 달린 검정색 교복에 목둘레에 하얀색 천의 목달개를 한 빡빡머리들의 모습이 사진기 틀 안에 추억을 담으며 모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의 크고 작은 일에 빠지질 않고 약방의 감초처럼 나타나시는 교장 선생님이 모습을 나타내셨다. 회중시계(懷中時計)의 하얀 쇠줄이 늘어진 조끼를 입으시고 도수가 엄청 높은 두꺼운 안경 너머로 우리들의 모습이 대견하신 듯 지켜보셨다. 그리고 수업 중이신 다른 학년 선생님들도 교실 창문 너머로 힐끔힐끔 쳐다보셨다.

이제 머지않아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담임선생님께 간곡히 청을 드려 졸업선물로 갖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동구 밖 냇가 자갈밭에 여름 철새 꼬마물떼새가 그리도 촐랑거리던 여름 어느 날 영선이가 손톱에 빨갛게 물을 들이려 봉숭아 꽃잎을 따러 우리 동네 옥순이네 집에 왔을 때 우리 집에 놀러와 보고 간 뒤에 산 밑 초가지붕 우리 집을 곱살하게 그린 수채화 한 점이었다.

그 수채화 한 점이 교실 게시판에 붙어 있어 지난 육년 동안 쌓인 그 숱한 기억 중에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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