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밑 토방(土房)에 밑창이 한 쪽으로 비스듬하게 닳은 검정 고무신짝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위로 싸늘한 찬바람이 한차례 스쳐 지났다. 두툼하게 층을 이룬 검은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칙칙한 하늘엔 금방이라도 새하얀 눈이 옴팡지게 내릴 듯했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구름은 하늘과 꽤나 번거롭게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때가 한낮임에도 구름에 가려진 해는 흐린 밤하늘에 맥맥하게 떠 있는 달처럼 답답할 만큼 힘없이 보였다.
가을걷이 끝이나 텅 빈 콩밭 자리에 예닐곱 마리 산 까마귀들이 내려 앉아 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지 지난 가을걷이에 눈길 놓친 낱알들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부리를 쪼아 싸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릇!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들이나 말 못하는 미물인 날짐승들도 한 조각 먹이를 쫓아 아귀다툼하는 모습이 모두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샅길 초입머리 진식이네 사랑채 흙벽에 허옇게 보이는 종이가 기다랗게 붙어 있어 가까이 다가서 바라보았다. 정부통령(正副統領) 입후보자(立候補者)들의 얼굴 모습과 정책(政策) 및 약력(略歷)이 인쇄된 선거 벽보였다. 밀가루 풀물이 채 마르지 않아 흙벽 바닥의 형체가 축축하게 배어 드문드문 드러나 보이고 동네 어른들은 뒷짐을 짓고 관심 어린 눈빛으로 벽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정부통령 임기가 아직은 남아 있어 오는 5월경에 실시해도 될 선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앞 당겨 실시하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정부통령 선거에서민심을 등에 업고 있던 강력한 야당 후보자였던 민주당의 조병옥 박사가 신병을 치료를 하러 미국으로 건너가자 가뜩이나 열세에 몰려 있던 자유당이 때는 이 때다 싶어 틈새를 놓치지 않으려 두 달여를 앞당겨 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처럼 오랜 실정으로 자유당 정부에 이미 등을 돌린 민심이 신병을 치료하려 미국으로 떠난 조병옥 박사에 대한 동정심에 편중되어 민심이 야당 쪽으로 걷잡을 수 없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판세를 불리하게 생각한 자유당과 부통령 후보로 나서려고 하는 자유당의 제 2인자인 이기붕이 더 이상 시일을 끌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예정 보다 앞당겨 선거를 치르게 된 것이었다.
그 날짜가 3월 15일로 정해져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작은 동네에도 여와 야로 서로 편이 둘로 갈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유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동근이 아버지와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선거 슬로건을 내건 야당인 민주당의 골수 당원인 병수 아버지를 중심으로 양분화 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오랜 실정과 경제 불안으로 등을 돌린 민초들의 틈에 파고들려 하는 자유당의 동근이 아버지는 좀 힘든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운명을 달리한 해공 신익희 선생과 조병옥 박사에 대한 동정심으로 서서히 결집되어 가는 민심을 등에 업고 발로 뛰는 병수 아버지는 외관상으로는 좀 수월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앞에 나서 열성으로 자유당 운동을 했던 종구네 아버지가 이 번에는 그리 열성을 부리지 않았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자기가 바랐던 기대치에 만족을 못하였는지 이제는 그다지 열성을 보이지 않고 양쪽 사이를 힐끔거리며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은 동근이 아버지와 깊은 얘기를 나누며 머릴 끄덕거리다 또다시 동네 사람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병수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자기중심을 못 잡는 이중성을 보였다. 그리고 집권 자유당의 운동을 열심히 하는 다른 마을 이장들과는 달리 우리 동네 이장님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어느 쪽에도 편중치 않고 묵묵한 자세로 관망을 하고 있었다.
벽에 붙은 벽보를 보시는 어른들이 처음엔 우현이 아버지와 진식이 아버지 두 분뿐이었는데 차츰차츰 그 숫자가 늘어나 좁은 길이 가릴 정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벽보를 찬찬히 바라보시던 우현이 아버지께서 맨 먼저 입을 떼셨다.
“대통령은 복 많은 노인네가 그냥 당선이 될 것 같은디, 부통령 선거는 민주당에 장면 박사가 원체 막강해서 뭐시냐 이기붕이가 똥줄 꽤나 타것구먼 그려.”
그러자 옆에서 함께 벽보를 보시고 계시던 상수네 아버지가 우현이 아버지 말을 거드셨다.
“그러니 저리 난리들이지유. 가만가만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닌께, 면 직원들 허구 지서 순경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 마을 이장들까지 운동하라고 들볶아대는 모양이던디. 그건 그렇구 빼싹 물마른 자리에 있던 송사리가 물을 만나듯이 그나저나 동근이 아버지가 제철 만났구먼 그려. 요즘은 아침밥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면 소재지로 나갔다가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모양이던디.”
조금 떨어진 뒷전에서 벽보를 바라보시던 기현이 할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자꾸 뭔 놈에 일루 큰 별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니 갈수록 나랏일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구먼 그려. 그러니 나는 늘 생각을 혀 보는 거지만 몇 해 전에 돌아가신 그 김구 선생님 생각이 자꾸만 나네 그려. 참 휼륭한 분이셨는디, 아깝지 아까워. 세상 어디 그만한 인물이 다시 나오겠는가?”
말을 마친 기현이 할아버지께서 아쉬운 얼굴로 솜저고리 등 뒤에 꽂아 두었던 곰방대를 꺼내시어 담배를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그때 새로 이사 온 담뱃대 만드는 집 흙담 모서리를 돌아 나오는 병수네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이 시국에 관하여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들을까 싶어 자연스럽게 병수네 아버지에게 눈길이 모아졌다.
병수 아버지가 동네 어른들에게 차례대로 인사를 건네고 계시자 구학문을 많이 하셔 오래전에는 동네에서 한문 글방인 서당을 하셨던 진식이 할아버지가 병수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셨다.
“음, 병수 애비 내가 그놈의 고뿔에 걸려 구들장 신세만 지느라 요 며칠 동안 당췌 바깥나들이를 못해서 오늘에서야 첨 보는구먼 그려. 근디 듣자허닌께 뭔 일인지는 잘 모르것지만서루 읍내 경찰서까장 댕겨왔다는디 별일은 없었는감?”
그러자 병수네 아버지가 어르신 앞으로 다가서시며 말씀을 하셨다.
“예. 저두 어르신님을 오랜만에 뵙네유. 어쩌다 끌려는 갔지만 죄은 죄가 읍는디 뭐 별일이야 있겠시유. 제가 하는 말이 자유당원인 자기들이 귀로 듣기에 거북했는지 몰라두 지는 지 소신대로 말을 했을 뿐인디, 지가 뭐 뚜렷하게 잘못이 없으니 하룻밤 재워 그냥 돌려보낸 것이지유. 그리고 말이사 바른말이지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흘러 다니는 소문인디 그걸 트집 잡으려 했지만, 그게 어디 자기들 입맛대로 되는 건감유? 그리구 이제는 선거도 시작되어 제가 민주당 당원으로 정식 선거 운동원으로 등록이 되어서 별스런 문제는 없으니 걱정을 놓으세유. 암튼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허구먼유.”
그렇게 동네 어른들의 대화가 무르익어 가는데 농사일 외에는 별로 동네 사람들과 접촉이 없으신 대추나무 집 상두 아버지가 모처럼만에 얼굴을 보이셨다.
“그나저나 나사 동네 사랑방 근처도 안 가는 사람이라서 통 몰르구 지냈는디, 동네 떠도는 말로는 뭐시냐.높으신 장관네 집 도둑든 얘기랑,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부인이 머리가 뽀글뽀글 노랗고 눈알이 파랗게 생겼다고 말을 혀서 경찰서까장 끌러 갔다 나왔다고들 하던디, 그게 무슨 말인지 통 몰라서 그러는디, 함 속 시원허게 말을 해볼란가? 정 입장 곤란할 것 같으면 그만두고.”
상두 아버지가 입을 쩝 하고 다시면서 자못 궁금한 얼굴로 말을 마치시자 말을 끝까지 듣고 계시던 병수네 아버지가 다시 말문을 여셨다.
“뭐 입장이 곤란할 것이사 있을 리도 없는 일이구. 안 그래두 이번 참에 지가 읍내 경찰서에 댕겨온 일루 다가 동네에서 이런저런 엉뚱한 소문들이 떠돌고 있어서, 이참에 얘기가 나왔으닌께 제가 말해 드릴게유. 그리고 이런 정도 얘기는 지금이라도 논산, 강경 양쪽 읍내 나가서 탁배기 집에 앉아 있으면 다들 하는 소리라 문제될 것도 없구먼유. 그게 무신 말이냐면유. 그날 밤 방앗간 사랑방에서도 말했지만, 남들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를 국부라고 하지만 지는 생각이 그렇네유. 대통령은 그렇타치더라도 그 부인인 외국 여자에게는 영부인이라는 말을 죽어도 못하겠다고 했는디, 왜냐면 섬기는 조상이 달라 피가 다른데 어떻게 머리 색깔이 노랗고 눈이 시푸런 그런 여자를 일국의 영부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냐고 말한 것이구, 그리구 쎄빠또 개와 도둑놈 이야기는 무엇이냐면, 어느 날 밤 아주 잘살기로 소문이 서울 장안에 파다하게 난 고대광실(高臺廣室) 높다란 모 장관네 기와집에 도둑이 그 높은 담을 넘어 들어와 값비싼 금은보화를 몽땅 훔쳐 달아났는디, 그 이틑날 아침에 도둑맞은 장관이 화가 머리끝까장 나서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둑일 개라는 쎄빠또를 구둣발길로 사정없이 내리차면서 하는 말이 ‘에이 멍청한 놈의 개야! 그래 도둑놈이 그렇게 들어와서 온통 다 털어갔는디두 넌 무신 지랄을 허느라구 짖지도 않고 있었냐?’하면서 큰소리루 사정읍시 꾸짖어 대자, 그 쎄빠또란 놈이 허는 말이 ‘담 넘어간 도둑놈도 도둑놈이구 지금 나를 때리는 주인님도 도둑놈인디 내가 누굴 보구서 도둑놈이라구 짖어야 됩니까?’라는 말이니, 그 판단은 동네 분들 몫으로 돌리구 지는 읍내 지구당사에 나가 봐야 혀서 이만 읍내루 나가볼렵니다.”
말씀을 마치신 병수 아버지께서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 들 주막으로 향하고 벽보 앞에 있던 동네 사람들이 ‘셰퍼드와 도둑놈’ 얘기에 박장대소 하셔 나도 따라 함께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한바탕 열변을 토하고 뒤돌아 가시는 병수 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렴푸시라도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주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하시며 그리도 섧게 노래를 부르신 깊은 뜻을 다는 몰라도 그제서야 조금이라도 알 것 같은 느낌이 찬찬히 마음에 와 닿았고 그날따라 그분의 모습이 무척이나 오달차게 보였다.
그렇듯이 세속에 떠돌고 있는 그런 말들의 사실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모든 민초들의 두 귀에 쏙 닿아 들어갈 정도로 해학적으로 풍자된 말들이 그렇듯 거침없이 입에서 귀를 걸쳐 퍼져 나갈 정도로 시대상이 그리 암울하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1950년 초반부터 서구 유럽은 물론 범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의 침체로 한국전쟁 이전부터 실시되어 전쟁이 멈춰 휴전이 된 이후에도 지속되던 열강인 미국의 원조가 격감되었다. 그러자 미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하였던 국내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 규모가 아주 작은 소기업부터 어려움을 면치 못해 물가는 자고 나면 치솟아 올랐다. 더욱이 농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빈약한 나라가 어찌된 일인지 한 해를 건너 심심찮게 찾아드는 진절머리 나는 기근과 목숨을 무참히도 앗아간 크고 작은 물난리를 겪으면서 민심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그러나 우리에 위정자(爲政者)들은 권력에 두 눈이 멀어 백성들의 앞날이야 어찌되든 자기 실속 차리기에 혈안이 되었으니, 실로 그 시대를 살았던 민초들의 삶은 어렵고 힘들기가 더할 나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