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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76 조회 : 1,495




탐스런 새하얀 눈이 온 산야(山野)에 넉넉하게 내렸다. 내려 쌓인 눈이 은빛으로 곱게 수놓아 햇살에 반사되어 똑바로 바라보기에 눈이 가득 부셨다.
그렇듯 초자연적으로 펼쳐진 경이로운 풍광이 무척이나 탐스럽기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중 한 자락을 곱게 떼어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매몰스런 아침 해가 그런 마음 모르는 듯 서둘러 그마저 녹이려 했다.
새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인 끝없는 설원을 마냥 내달리다 숨이 차오르면 그곳이 어느메일지라도 스스럼없이 발길 멈춰 격 없이 주저앉아 마음 편히 쉬고만 싶었다. 그리고 움츠렸던 가슴 활짝 펴 백옥 같은 날개 활짝 펴 하늘 높이 유연하게 비상(飛上)하는 한 마리 학처럼 나도 한번쯤은 훌훌 털어 어디론가 지체 없이 날고만 싶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처해진 삶이 그만큼 궁핍하다보니 여리기만 해야 할 심성이 극도로 피폐해진 것 같았다. 허나 그마져도 누굴 탓할 수 없으니 다가올 먼 훗날이 이보다는 낫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그저 망연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남의 빚을 갚아 겉으로 보기엔 홀가분하게 보일는지는 몰라도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논 서마지기를 몽땅 날리고 나니 그나마 생활력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게 삶을 온통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에 처하고 보니 마음은 늘 분노로 들끓어 올랐다. 그 분노의 원천은 바로 종구네 아버지였다.

싸리나무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낮은 울타리에 목화솜처럼 뽀송뽀송한 하얀 눈이 곱살하게 내렷다. 더불어 산허리를 기어오르는 철제 송전탑 위에도 흰 눈이 쌓여 마음을 더없이 포근하게 했다.

전에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바닥에 머리만 닿아도 이내 잠에 들었다. 그러나 입학시험을 하루 앞두고 잠을 깊히 들지도 못해 이저리 뒤척임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께서는 시험장에서 처음 만나는 선생님들과 첫인상이 좋아야 한다고 하시며 옷차림을 단정히 하라고 채근(採根)하셨다. 그래서 수학여행 때 써 보고 그 후로는 쓰기가 귀찮아 방벽에 그대로 걸어두었던 검정 교모에 내려앉은 먼지를 탈탈 털어 쓰고 마당으로 나섰다.
아주머니 등에 업힌 순덕이에게 ‘오빠가 꼭 합격하겠노라.’ 무언의 약속처럼 오므린 순덕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아주고 사립짝을 나섰다. 밭둑길을 걸으니 신발짝 밑에서 ‘뽀드득 뽀드득’ 밟히는 소리가 싫지 않게 들려왔다.
면소재지로 이어진 벼랑바위엔 틈새를 비집고 몸 붙인 바위손 머리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바라보는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런 고결한 모습에 마음이 차분하게 편키만 하니 세파에 너무도 부대낀 나를 사뭇 아우러 주는 것 같았다. 아침저녁으로 싸늘키만 한 바람이 등 돌려, 떠날 줄 몰라 뒤척이는 겨울이 갈 듯 말 듯 늘쩡거려 봄을 애기하기엔 아직은 너무도 이른 것 같았다.

눈비에 나무 색깔이 잿빛으로 변한 교회 종탑이 하얀 눈빛 때문인지 더욱 높다랗게 보였다. 철길 건널목 건너 맨 먼저 눈앞에 다가서는 약방 집 마당에는 내린 눈이 그리 좋은지 온몸에 털이 수북한 삽살개가 마냥 껑충대며 눈 위에 뛰놀고 있었다.
칙칙하게 보이는 검정색 목조건물 지서 앞에는 오순경과 지서 소사가 눈을 치우고 시험을 보러 갈 같은 마을 친구들을 기다리나 석란이가 지난봄 종구와의 싸움사건으로 지서에 붙들려갔을 때 얼핏 본 듯한 자기 어머니와 함께 서 있었다.

면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지인 지서장 사모님답게 위아래로 검정색 벨벳 치마저고리에 파르스름한 보석이 박힌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노란색 긴 꼬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노는 여우 털목도리를 목에 빙 둘러 걸친 모습이 퍽이나 부유하게 보였다. 그로 인해 내 옆에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흰 솜저고리에 검정색 무명치마와는 빈부의 차이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런저런 잡다한 생각에 한시바삐 벗어나려 서둘러 걸어가는데 눈을 치우려 빗자루질을 하시던 오순경 아저씨가 싱겁게 웃으셔 내 머리를 가볍게 툭 치시며 말씀하셨다.

“야, 들메 싸움대장! 너도 오늘 시험 보러 가는구나. 암튼 시험 잘 보고 와라 그래도 이놈이 쌈박질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공부는 제법 잘하는 모양이구먼. 그것도 강경으로 시험치러 가는 것 보닌께.”

그러자 앞에 서 있던 석란이가 앞으로 나서 촐싹대며 말을 했다.

“아이구 오순경 아저씨가 잘 모르시는구먼유. 이번 졸업식 때 전체에서 8등을 해서 우등상도 탔어유. 나는 겨우 5등 밖에 못했지만.”

곁으로는 나를 배려하는 척 하면서 또 다른 면으로는 은연중에 자기과시를 하려는 석란이의 행동이 못내 마땅치가 않았다. 시험을 앞둔 날 아침부터 빈정거리듯 나를 바라보며 약을 올리려는지 자기 어머니의 팔을 붙들어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들 주막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진 큰 길 위에는 강경과 논산 양쪽 읍내 중학교에 시험을 보러 가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이런저런 말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으셨는지 애써 무관심한 것처럼 혼자 말없이 얼마큼 앞서가고 계셨다.
나도 석란이처럼 어머니의 팔을 붙들려 하니 어머니께서 가볍게 웃고 계셨다. 주막집 정류장에 닿으려 하니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옥순이와 옥순이 어머니가 조금은 늦은 줄 알고 바쁜 걸음으로 걸어오고, 바로 그 뒤에 석란이가 화산리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빠른 발걸음으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손목시계 하나 없이 살았다. 그저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바라보고 해가 어디쯤에 왔는지 살펴보고, 눈짐작으로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던 참으로 답답한 시절이었다.

신작로에는 다행스럽게 눈이 내려 흙먼지가 날리진 않았다. 그러나 온 사방이 휑하게 뚫린 들녘 모서리라 그런지 늦추위를 부둥켜안은 들녘 바람이 제법 싸늘키만 했다. 눈길에 조금은 미끄러운지 오가는 차들이 그리 빨리 달리질 못했다.

들 주막 임시 버스정류장엔 줄이 끊어져 축 늘어진 전깃줄처럼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줄기만을 힘없이 내린 채 서 있는 수양 버드나무가 쓸쓸하게만 보였다.
저마다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리도 많아 어림짐작으로도 버스에 좌석이 턱도 없이 모자라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타고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그뿐이었으니 대다수 모두는 이미 몸에 익숙해진 듯해 보였다.

그리 기다리기를 얼마쯤 지나 앞머리가 앞으로 불쑥 나온 파란색 칠을 한 버스가 다가섰다.
승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먼저 자리를 잡으려고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한동안은 소란스러워졌다.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는 욕심 많은 버스 조수와 어떻게라도 타고 갈 수 밖에 없는 목마른 승객들로 버스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비좁았다. 차 안엔 몸을 돌리지도 못할 정도였고, 아직도 더 타야할 사람이 남아 있는 듯 조수아저씨는 자꾸만 안쪽으로 더 들어가라고 차 문짝을 주먹으로 세게 두드리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 와중(渦中)에서도 지서장 사모님이 자리를 못 잡고 비좁은 틈바구니에서 바동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옆으로 겨우 비집고 나와 그리 어렵게 차지한 자리를 선뜻 내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언젠가 동네 어른들이 무심코 하시던 말이 퍼뜩 떠올랐다. ‘돈이 없으면 그놈의 빽이라도 있어야 사람 꼴 하고 산다.’는 말이 새삼스레 떠올라 조금은 받아들이기가 거북했다.

그 비좁은 차 안에 가득하게 타고 가는 우리들 저마다의 꿈이 있듯이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러 따라가시는 부모님들의 정성이 담겨 있어 씁쓸하던 마음을 조금은 풀어주는 듯했다.

날씨가 추워 비포장 도로 정비를 오랫동안 하지 않아 그런지 울퉁불퉁한 도로는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사람들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려 사람들의 무게에 눌리니 서로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다. 더욱이 춥다고 창문까지 꽉 닫아 사람 냄새와 기름 냄새가 뒤범벅되어 버스 안 공기가 혼탁하여 숨이 막혀도 운전수 아저씨는 본척만척 못 들은 척 시침을 뚝 떼고 백미러로 차 안을 가끔씩 힐끔힐끔 쳐다보며 밉살스레 차를 몰고 있었다.

그렇게 차가 뒤뚱거려 면 소재지 정류장을 출발하여 읍내까지 거리의 중간 지점인 안뜰 마을 장화리 앞에 닿았다. 읍내로 볼일이 있어 가시려는지 어른들 두서너 분이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 흔들며 태워달라고 사정을 해도 더는 태울 수 없어 얼른 길가로 비켜서라는 듯이 운전수 아저씨가 경적을 크게 두어 번 울리고 앞을 향해 매정하게 달려갔다.

그리고 눈 덮인 논배미에는 그때까지도 치우지 못해 부서져 녹이 슬은 소련제 탱크가 흉물처럼 서 있어 전쟁의 허무함을 일깨워 주는 듯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괴뢰군이 강경읍내로 통과하는 철교를 폭파하려고 몰고 와서 폭파를 하기 직전에 미군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처참하게 폭파된 큼지막한 소련제 탱크였다.

버스가 읍내로 들어서는 다리를 건너려고 경사가 가파른 높다란 금강 둑 오름을 올라서는지 또 한 차례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자 버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얼마 후 버스가 강경천 둑에 올라 읍내로 진입하는 다리를 건너자 산 밑 동네에서 늘 들녘 멀리 지평선 너머로 바라만 보았던 강경 읍내 전경이 눈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맨 먼저 눈에 띈 것이 수많은 향나무 사이로 붉은 벽돌로 높다랗게 지은 아주 예스럽게 바라보이는 강경상업고등학교 건물이었고 그 건물은 일제 강제 점령기 때에 세운 오랜 역사를 지녀 그 당시 논산군 내에선 설립 년도가 가장 오래된 학교로 국내의 금융기관인 각 은행에 수많은 인재들이 진출한 명문고였다.
학교 언덕 위에는 동네 앞마을의 수호신인 둥구나무보다 세 배 정도는 더 커 보이는 팽나무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낯설기만 한 새로운 도시가 주는 색다른 중압감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었다.

강경 읍내 외곽 동쪽 지역인 남교동 임시 버스 정류장 앞에 버스가 멈추자 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인 강경여자중학교에 응시를 하러 가는 여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옥순이 어머니와 옥순이 그리고 석란이도 자기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옥순이가 시험을 잘 보라는 마음의 뜻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 나도 옥순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읍내 서쪽 외곽에 있는 강경중학교로 가야 하는 승객들이 다시 승차를 하여 버스가 읍내로 들어서자 우리나라 기와집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느낌의 크고 작은 일본식 건물들이 심심찮게 보여 아직은 처음이라 눈에 덜 익은 탓인지 읍내의 모습이 더욱 낯설어 서먹하기만 했다.
강경역이 가까워 오는지 창문 틈으로 슬슬 석탄 타는 냄새가 흘러드는데 갑작스럽게 기적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와 창밖을 바라보니 강경역을 출발하려는 기차가 내뿜는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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