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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195 조회 : 1,526




겨우내 쌓아 두었던 거름더미에서 흐늘흐늘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엄 가에 서 있는 홍매화 나뭇가지 사이로 벼랑바위가 가깝게 바라보였다.

그 벼랑바위 옆 황토밭에 이른 아침부터 종구네 아버지와 동근이 아버지 그리고 몇몇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었다. 종구네 아버지가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에 온갖 충성을 다한 혜택으로 오랫동안 목메게 기다렸던 기와공장을 세우려고 밭 자락에 터를 닦으려는 것 같았다.
굳이 기와 공장을 세우지 않아도 앞 들녘 기름진 곳에 그 많은 농토를 지니고 사는지라, 그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는데도 그리 물욕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우리 인간들 모두가 다 그러할 진데, 저마다 주어진 삶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 자락 남은 미련에 열 손가락 시원스레 다 펴지도 못하면서 아등바등하다가 숨을 멈추고 난 후에야 손가락이 스르르 부챗살처럼 펴져 그 어느 것 하나 가져가지도 못하는 순리를 모를 리 없건만, 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질긴 욕망의 끈을 쉽사리 놓지 못하는 게 우매한 인간사 삶의 여정인 것 같았다.

그렇듯 저마다 권력에 밀착하려고 선거에 열성을 다해 크고 작은 혜택을 받는 듯했다.

가깝게 내 주변에는 지서주임인 석란이 아버지가 선거가 끝나자 그 공로가 컸던지 일 계급 특진을 했다. 그로 인해 진작부터 말이 있었던 논산 훈련소가 있는 연무대에 지서장 자리로 영전을 하게 되었다.
이제 머지않아 석란이도 오랜 세월 동안 정이 듬뿍 들었던 채화면을 떠나 자기 아버지를 따라 연무대로 이사를 갈 것 같았다. 그리고 석란이와 함께 교회를 다녔던 면내에서 유지로 불리는 정임이 아버지도 이번 선거에 남다른 열성을 보였기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새로 임명되는 군내 수리조합장 자리로 영전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 크고 작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건만 뒷산에 잠들어 계신 내 아버지는 언제나 말없이 제자리에 머물러 계셨다. 천체를 떠도는 무수히 많은 별들 중에 자리 하나 잡지도 못한 채 떠밀려 사라져 가는 유성처럼 내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 곁을 떠나 화석처럼 굳어져 가는 덩이진 아픔만 우리 두 사람 몫으로 남겨 주셨다.

그렇듯 내 아버지가 영면해 계신 저 산은 어린 나에게 숱한 기쁨과 눈물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가슴 한 귀퉁이에 아련한 그리움 한 자락을 남겼다. 그렇게 가슴속 깊이 새겨진 추억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스쳐 지나간 가슴앓이도 그날만큼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날이었으니 바로 내가 세상을 향해 첫울음을 터트린 날이었다.

아침 햇살에 선홍색을 띄운 하얀 구름 조각이 유유히 노닐고, 봄바람이 새실스럽게 부는 벼랑바위 앞에 옥순이가 다소곳한 모습으로 짙은 청색 책가방을 들고 기다리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야, 상민아! 너 생일 축하한다 건강하구, 하긴 건강이 넘쳐나는데 더 건강하면 어쩔라 암튼 한번 더 축하한다.”

작아 앙증스럽기만 한 얼굴에 양쪽 볼에 조금은 파인 듯 보조개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야, 축하해 줘서 고맙긴 헌데 생일날 선물 하나두 안 주냐? 서운케 시리.”

그러자 옥순이가 가방 앞 양쪽에 달린 고리를 풀고 가방 속에서 한 뭉치 종이에 쌓인 것을 꺼내 들었다.

“내 그럴 줄 알구 준비를 했당게. 이거 곶감인께 절대루 넘 주지 말구 너나 혼자서 먹어 알았지?”
“야, 옥순아! 곶감 많이 먹으면 거기가 막혀서 뭣도 안 나온다구 하든디, 괜찮을란가 모르것다. 암튼 잘 먹을게.”

옥순이가 구부린 몸으로 가방 고리를 잠그다 말고 예민하게 내 얼굴을 올려보면서 소릴 쳤다.

“너 또 그 소리할라구 했지? 너 정말로 장난 아니구, 그 말 한번만 더 꺼내기만 하면 나랑은 끝장이다.”

옥순이가 뽀얀 살결의 목선을 하얀 칼라 사이로 내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큰길로 종구가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옥순이가 나에게 선물로 준 곶감이 부담스럽고 부끄러웠는지 빨리 가자는 투로 들고 있던 책가방으로 내 다리를 툭 치며 앞을 서려 했다.

철로길 건널목에 올라 거무스레한 지서 건물을 바라보았다. 늘 보였던 석란이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이제 머지않아 석란이도 정들었던 고향 땅을 떠나는가 하고 생각하니 싫었던 좋았던 간에 막상 떠나고 나면 무엇인가 하나를 잃어버린 듯 허전할 것만 같았다.

면소재지 약방 앞 큰길가에 선배들이 책가방을 옆에 끼고 걸어오자 옆에 걸어가던 옥순이가 나를 놀리려는 듯이 말을 건넸다.

“야, 상민아! 니네 학교 선배님들 까마귀 떼처럼 몰려오는디, 얼른 경례를 붙여라 또 먼젓번처럼 가슴팍 얻어맞을라.”

속마음으로는 제발 선배들이 서로 떨어져 띄엄띄엄 오지 말고 한꺼번에 몰려오길 바랐다. 기왕지사 빼도 박도 못해 해야만 되는 거수경례를 동창생 여학생들의 눈에나 안 띄게 단 한 번에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띄엄띄엄 다가서는 선배들에게 번거롭게 일일이 경례를 부쳐야만 했다.

다소는 거북스럽기만 한 그런 분위기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 한시라도 빨리 버스가 도착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 것 조차도 내 뜻대로 되질 않았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시골 버스 와야 오는 거고 가야 가는 것’이라고, 여느 날과는 달리 버스가 제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을 하여 저마다 서둘러 차에 올랐다.

차창 밖 부연 흙먼지 사이로 내다보이는 들녘은 자연의 은혜에 보답을 하듯 독사풀과 자운영의 푸른 잎들로 크고 널따란 녹색의 초원을 이루었다. 차츰차츰 멀어져가는 내 사는 곳 산골짝을 바라보며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가난을 꼭 벗어나 내 어머니의 한과 설움이 응어리진 아픔을 기필코 풀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육각 정자가 뾰주름히 올려다보이는 채운산 산자락엔 연분홍빛 벚꽃이 드문드문 피어나고 허전한 자리를 메워주려는 듯 샛노란 개나리가 듬뿍 피어나 봄의 운치가 더욱 돋보이게 했다.

텅 빈 역사(驛舍) 하늘엔 방금 읍내를 빠져나간 기관차가 남긴 연기가 한 자락 아쉬움에 여운처럼 희끄무레하게 맴돌고 있었다.

그런 우울키만 한 마음이 하루 일과 중에 어떤 자그마한 계기가 도래되어 변화되길 내심 바랐다. 그런데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우리들 모두에게 나눠주신 ‘가정환경 설문조사’의 용지를 받아 들고 더욱 마음이 우울해졌다. O와 X로 표기하는 설문지의 기입란을 바라보니 부모의 물음 란엔 아버지가 안 계시니 표시할 것도 없었다. 보호자 직업란에 남들은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어떻게 볼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어머니가 젓갈을 팔러 다니시는 것도 고맙기만 하여 상업이라고 일부러 큼직하게 써 넣었다. 그리고 거주하고 있는 집 종류에서는 초가집이라도 그나마 고마워 얼른 표기를 했다.

문화시설 란에는 그 어느 한곳에도 O자를 표시하지 못했다. 비좁은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침침한 방안을 홀로 지키고 있는 반다지와 개다리소반뿐이었다. 답답해져 오는 마음만큼 X 자 만을 느껴오는 감정처럼 커다랗게 표기를 했다. 어쩌면 천형처럼 달라붙은 진저리나는 가난에 대하여 어린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무언에 시위였으리라!

내 옆에 앉아 있던 성구는 그래도 엎드려 공부할 수 있는 나무 책상은 있었으니 O자 하나를 겨우 표기했다.

가난으로 어려웠던 만큼 전전긍긍하며 표기를 하고 있는 나와 성구의 모습이 마치 먹장구름 가득 낀 장마철 여름날 하늘처럼 우울하게 보였다. 그래서 가난에 찌든 성구와 나는 가정환경 설문서를 작성하기가 처해 있는 냉엄한 현실만큼이나 한없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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