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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13 조회 : 1,570




온 사방 들녘을 후덥지근한 열기(熱氣)로 들쑤셔 놓으려나, 푸닥지게 내리쬐는 한낮 햇살이 마냥 이글거렸다.

철로 변에 짙 푸른 잎이 쭈삣뿌삣 사방으로 무성하게 자란 깨밭에서 주현이 어머니가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시고 일을 하고 계셨다. 몇 해 전 기근이 그리 심했을 때 철도 부지인 야트막한 둔덕에 억척스레 밭을 일궈 대여섯 고랑 심어 놓은 참깨밭이었다. 좁다란 밭고랑에서 연한 깻이파리를 찬찬히 들여다보시며 따고 계셨다.

굵직굵직하게 알이 든 감자를 캐어 낸다는 하지(夏至)가 아직도 십여 일은 더 남았는데 성급한 동네 개구쟁이 꼬마들이 보리밭에 보리 이삭들을 쥐어뜯어 보리 서리를 하다가 양이 덜 찼던지 성급한 마음에 쥐가 파먹은 듯 아직은 알이 덜 찬 감자 밭을 군데군데 파헤쳐 마구 흐트러 놓았다.

앞산 장지(葬地)에서 장례를 마치고 동네를 향해 내려오시다 밭자락을 둘러보시던 진식이아버지가 군데군데 파헤쳐 흐트러진 밭두둑을 바라보시고 무척이나 속이 상하신 듯했다.

“허 참,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그려. 아 그래 감자밭하고 무슨 철전지 원한이 맺혔다고 죽어라고 농사를 지어 놓았더니 달구새끼들 흙 파 뒤집듯 요렇게 헤쳐 놓았을까?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 그저 놀기 좋아 장난삼아 한두 뿌리 캤으면 그만이지. 멀쩡한 감자 밭을 발로 짓이겨 놓았으니 이를 어쩌면 좋다냐.”

화가 잔뜩 나신 듯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잘근잘근 이빨로 깨물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셨다. 그러자 허리춤에서 마른 헝겊을 빼들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시던 성격이 좀 자발스런 순태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시며 말씀하셨다.

“참 기가 막힐 일이구먼 그려. 내 팔자야 홀애비 신세라 이런 짓거리할 자식 놈도 없지만, 동네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자식들 단도리 잘해야지. 어린것들이 아무리 철따구니 없다고 해도 유분수지. 이 지경이되면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구먼 그려. 아! 그렇게 심심하면 개울가에 가서 가재라도 잡아 구워 먹고 놀 일이지, 어쩔려고 동네 구석구석 마다 골고루 찾아 다니며 오라지게 그리 말썽들을 부리고 다니는지 내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먼.”

말을 마치신 순태 아저씨가 장지에서 모처럼 공짜로 생긴 낮술에 취하신 듯 얼굴이 잔뜩 불그레한 모습으로 엄지손가락을 대고 좀 세게 코를 풀어 훔치고 손가락 끝에 묻어난 콧물을 논둑 풀이파리에 대고 쓱쓱 문대고 있었다.

휘어진 활등처럼 동네 앞을 휘어 도는 개울가에 동네 꼬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마다 뒤질 새라 철로에 뛰어가서 아래주머니가 터지도록 한가득 주워 담아 온 몽실몽실한 돌을 던져 톰방톰방 소릴 내며 그리도 좋은지 까르륵까르륵 웃어대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우현이가 ‘삐이삐’ 소릴 내며 보릿대를 잘라 만든 보리피리를 불고 있었다.

동네 앞 둥구나무에는 하늘 향해 칼날 같은 잎들이 우죽부죽하게 피어난 창포를 꺾어 삶은 물에 머리를 감은 동네 아낙들의 반들거리는 머리에서 창포의 향이 그윽이 번져나던 지난 단오날, 동네 처녀들이 그네뛰기를 하느라 굵은 나뭇가지와 가지 사이에 매달아 놓았던 그네 줄이 풀리지 않은 채 부는 바람 따라 가볍게 흔들렸다.

그리고 무더위가 아직은 먼 듯싶은데 동네 노인들이 벌써부터 그늘 아래 덥석을 깔아놓고 한가로이 앉아 놀고 계셨다.

새살스런 한낮 해는 동네 지붕 머리 위에 높이 떠 올라 크고 작은 마당마다 짠짠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닥다닥 매달려 탐실하게 익어가는 빨간 앵두 볼살을 살포시 건드리고 우현이네 집 마당 한구석에 서 있는 석류나무에 노르스름하게 달린 작은 꽃봉우리를 발그레 태우려 했다.

누런 보리 이삭 끝머리 까끄라기가 황금빛 물을 더욱 짙게 들이는 들녘 하늘에 두 덩이 뭉게구름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동네 골목길 첫들머리 진식이네 마당에는 진식이가 보릿짚 끝머리를 납작하게 펼쳐 앵두 알을 올려놓고 머리를 뒤로 제쳐 입으로 불다가 햇살에 코가 근지러운가 이내 재치기를 했다. 그러자 입에 물고 있던 보릿짚과 앵두 알이 또르르 굴러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에이’ 하고 두털거리며 땅에 굴러가는 앵두 알과 보릿대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는 진식이의 모습이 그리도 천진스럽게 보였다.

남들에 비해 살기가 좀 어려운 용구네 집 마당에는 양식이 넉넉지 못해 끼니 걱정이 앞섰나, 누렇게 익지도 못한 풋보리를 남들보다 일찍 베어 온 마당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두 내외분이 팔을 걷어붙이고 홀테질이 끝난 보리 이삭들을 펼쳐 ‘토드락 토드락’ 맞도리깨질하는 소리가 보릿짚 풋내와 더불어 담 너머로 들려왔다.

동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에 집 안에 복숭아 나무를 심으면 복사꽃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다. 그래선지 대문 밖 다보록하게 퇴비가 쌓인 두엄자리에 아직은 덜 익어 보송보송 깔끄러운 솜털이 채 가시지 않았어도 옹골지게 생긴 복숭아가 푸른 이파리 사이를 비집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방앗간 일을 하시는 순태 아저시씨네 집에는 혼자서 사는 꾀죄죄한 살림살이를 말해 주듯 단작스럽게 생긴 좁다란 쪽마루에 입다 벗어놓은 구겨진 옷가지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태가 걸려 있는 기둥에는 색 바랜 밀짚모자가 쓸쓸하게 걸려 있었다.

맨질맨질한 땅에 깊숙하게 박힌 깨어진 사기 그릇 조각이 곧게 내리쬐는 햇살에 파르스름한 빛을 번득거렸다. 좁은 고샅길엔, 겨우내 발길 뜸했던 읍내 비단 장수 아주머니가 뚱실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게 가들막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머리에 인 커다란 보퉁이 사이로 누런 삼베가 조금 내보였다. 그 사이를 비집고 우물가 집 둘째 아들 인수가 자전거 바퀴의 살을 모두 떼어낸 둥그런 굴렁쇠를 굴리며 연자방앗간 놀이터 쪽으로 달려왔다.

연자방앗간 공터 앞에서 동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큼지막한 나무 대문짝이 활짝 열린 방앗간에서는 장지(葬地)에 다녀오신 순태 아저씨가 보리방아 철이 가까워 오자 방아 찧을 준비를 하느라 둥그런 함석 통에 끝머리가 가느스름하게 뾰족한 기름통을 들고 발동기 부품 사이사이에 기름칠을 하셨다.

붉다 못해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찔레꽃이 흙 담장을 덮어 그리도 만발하게 피어난 민균이네 집 함석 대문 앞에는 민균이 아버지가 손주 녀석 엉덩이를 받쳐들고 방앗간으로 마실을 나오시는 듯해 보였다.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말고는 좀처럼 대문을 열어두지 않는 종구네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널따란 마루에는 동네 이장님을 비롯해 좀 많게 보이는 동네 어른들이 몰려 있었다. 종구네집 뒤뜰 외양간 옆에 서 있는 가죽나무 우듬지에는 아주 기다란 대나무 장대 끝에 다이아몬드형으로 철사 줄을 얼기설기 엮어 놓은 라디오 안테나가 그럴듯하게 보였다. 마루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검정 빨랫비누같이 덩어리진 대형 건전지에 건전지 뭉치의 크기보다 조금 더 커 보일 듯한 작은 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삑삑거리며 라디오에서 소리가 잘 들려오질 않아 그러시는지 종구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자꾸만 라디오의 위치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방향을 맞추려 했다.

몇 해 전 동네 사람들은 네모난 통 속에서 간드러지게 소릴 내는 축음기의 등장을 그리도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다 읍내에 장 보러 나갔을 때 투박한 나무 상자 속에 흘러 나오는 진공관 라디오 소리를 길가에 서서 귀동냥하듯 더러는 들었지만 이제는 동네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음악 소리 그리고 바깥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더듬더듬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문명의 이기(利器)인 소형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등장은 실로 동네사람들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인기 있는 일일연속극을 시청하려고 밤마다 종구네 집은 모처럼 안방에 불을 훤하게 밝혀졌다. 일찍 저녁밥을 먹은 동네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하여 종구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그리도 쓸쓸하던 집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훈김이 돌기 시작했다.

그 후 조금 지난 후에서야 동네에 떠도는 입소문으로 알게 되었지만 기와 공장 허가 문제로 온통 마음이 상해 있던 종구 아버지가 한동안 벽장 안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고장난 축음기를 고치려고 읍내 전파사에 수리를 하러 가셨다.

그런데 수리를 하시는 전파사 아저씨가 부품을 구할 수 없어 축음기 수리가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군산 미군 비행장 근처 술집 양색씨한테서 어렵게 구해 온 것이라며 값이 엄청 비싸긴 해도 아주 듣기 좋고 편한 일제 라디오라고 보여 줘 처음엔 엄청난 가격에 엄두를 못 내고 집으로 다붓이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머릿속엔 그 라디오가 자꾸만 떠올라 이럴까 저럴까 엄청 망설이다가 다 커 나가는 하나뿐인 아들자식 그나마 학교 가고 집을 비우면 커다란 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심정이 초라하고 적적했는지 며칠을 두고 고심(苦心)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좀 과장된 소린지는 몰라도 동네 사람들 말에 의하면 소달구지로 쌀가마니를 싣고 읍내 싸전에 내다 팔아 엄청스레 큰 거금을 주고 사 온 귀중한 라디오라 조상님 신주단지 모시듯 고운 헝겊으로 먼지를 털고 닦아 애지중지하신다고 했다.

방앗간 길모퉁이 이장님네 돼지우리에는 늘 팔자 좋게 벌러덩 누워 있던 암퇘지가 눈에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이번 종기형네 초상집 일을 치루는데 팔려간 듯싶었다.

이른 봄부터 눈길 한번 주질 않던 감나무의 푸른 이파리가 무성한 옥순이네 집에는 옥순이가 마루에 앉아 보릿짚으로 여치집을 엮고 있었다. 그리고 느슨한 빨랫줄에는 찹쌀 풀 걸죽하게 먹인 하복의 겉저고리가 널려 있었다.

앞 마당 텃밭에는 줄기 끝이 누릇누릇한 마늘이 튼실하게 자라 수확(收穫)을 앞두고 있었다. 밭 가장자리엔 겉으로 속내를 쉽사리 들춰내 놓으려 하지 않는 토마토가 불그레한 속살을 알차게 채우고 있었다.

담장 한구석에서 누런 살구 알이 단내를 한껏 풍기는 옥순이네 담 너머로 논산 읍내의 천주교 성당에 다닌다는 기정이 형네 집이 마주 바라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낳았다는 남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언제나 선한 마음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반갑게 맞아 주시는 수더분한 옥순이 어머니께서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어서 오너라 우리 상민이 오랜만에 얼굴 구경하는구나. 니 엄니는 장터에 나갔지? 참 그 여편네 남들 쉴 때 한 번도 못 쉬고 고생 무지하게 하네 그려. 암튼 어쪘던 간에 니 엄니한테 잘해야 혀, 그 고생하면서 뭔 낙으로 살것냐? 너 하나 보는 재미로 사는 거지, 너 땜시 그 죽을 고생 다하고 사닌께, 내 말 꼭 명심해야 한다 알아들었냐?”

그러시면서 개다리소반에 놓인 하얀 그릇에 보리 개떡을 담아 주셨다. 옥순이와 함께 달달한 맛에 몇 개를 연거푸 먹었다. 그리고 뒤뜰 장독대로 다가서니 진종일(盡終日) 지루한 낮잠에서 깨어난 분꽃이 덜 풀린 묵직한 눈꺼풀을 부시시 뜨며 다가섰다. 그래서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바라보니 분꽃에서 배어나는 향기가 내 코끝에 잔잔하게 맴돌았다.

부서져 내리는 한낮 햇살에 풀 냄새 싱그럽게 묻어오는 여름날 오후였다. 버들가지 껍질을 조심스레 벗겨 응달에 잘 말린 후 촘촘히 곱살하게 엮어 만든 둥글납작한 버들채반이 눈에 띄었다. 그 채반 안에 살이 통통 오른 햇조기가 소금에 절여 햇볕에 말려지고 있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전란에 한줌의 재로 돌아오신 옥순이네 아버지의 제사가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방 벽에 걸려 있는 군복 차림의 옥순이 아버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려니 불현듯 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 어린 몸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뼈 아픈 기억이었다. 깨어진 유리처럼 모두가 산산조각 난 처절했던 그해 여름날,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던 폭염의 날씨처럼 온몸을 태우듯 그 처절키만 했던 기억들이 다시금 선연(鮮然)하게 떠올랐다. 그로 인해 잊었던 슬픈 잔상들이 다시금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그토록 회한(悔恨)의 눈물이 흐르는데 그 여름 하루는 냉랭한 모습으로 팽팽하게 내리쪼이는 햇살 따라 성글게 영글어 가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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