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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48 조회 : 1,001




윤달이 끼어 있어 그런지 여름이 여느 해보다 더욱 길고 지루하기만 했다. 가만히 있어도 후덥지근한 날씨에 숨이 콱콱 막힐 듯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삼복더위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말복이 이삼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라도 한차례 시원스레 소나기라도 내려 주었으면 마냥 좋을 것만 같았다. 더러는 비답지도 않은 비가 시덥지않게 내리기도 했지만 땡볕에 단단하게 굳을 대로 굳은 땅을 겨우 적시는 듯 시늉만 내다 이내 멈추고 말아 더욱 감질났다.

바람 따라 묻어오는 앞 냇가의 물비린내가 콧속 깊이 스며들어 흙내음에 더욱 젖어 들게 했다.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유연하게 넘나드는 흙 담장 너머 안마당 텃밭엔 덥수룩하게 자라난 단수숫대들이 긴 목을 있는 대로 빼 내밀어 고샅길을 오가는 동네 사람들 모습을 짯짯이 살펴보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늘쩡늘쩡하게 떠 있던 한낮 해도 덩달아 느긋하게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뜰 장독대에 오그랑오그랑 매달린 검붉은 장록 알알들이 검붉은 색으로 그리도 칙칙하게만 보였다. 건듯건듯 부는 바람에 골타분한 흙먼지만 푸석푸석 일어났다. 그리고 고샅길 땅속에 박혀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깨어진 사금파리 한 조각도 찌는 더위에 마냥 지친 모습으로 뜨거운 햇살에 허연 등을 양껏 달구고 있었다.

그렇듯 8월의 그런 모습 모두가 땡볕 아래 정감 어리게 보였다.

양껏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두 귀가 멍멍해지는 둥구나무 그늘 밑에는 촌로(村老)가 살아온 세월만큼 늘어난 주름이 가득 진 얼굴로 희푸른 하늘을 말없이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바로 그 옆자리에 같은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반질반질하게 손때 묻은 헝겊 쌈지를 무릎 앞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 가늘게 썬 잎담배를 돌돌 뭉쳐 곰방대 대통 안에 꾹꾹 눌러 담아 당성냥으로 불을 붙이셨다. 그리고 싯누렇게 그을린 손가락을 바르르 떨며 곰방대를 야무지게 움켜쥐셨다. 담배 연기를 우묵 파인 두 볼에 힘을 주어 뱃속 깊이 빨아들여 마디 서린 한(限)을 토하듯 입 밖으로 내뿜고 계셨다.

종일토록 어둠 서린 유치장 안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애를 태우고 계시는 종구 아버지를 위해 동근이 아버지는 일을 보러 나섰다. 그러나 꼼꼼하기로 소문난 병막 터 정 영감님을 이해시키려니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될 듯싶질 않았다. 그래서 그래도 말이 좀 통할 듯싶은 병수네 아버지와 함께 가려는가? 분주한 모습으로 병수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앗간 순태아저씨는 아예 땅바닥을 푹 깔고 앉아 경찰서에 갔던 일로 아직도 화가 덜 풀리신 듯 동네 분들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읍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종구 아버지에게 모아지는 탓인지 막걸리 내기로 두던 장기 알 소리도 딱 멈춰 버렸다. 그리고 온통 순태아저씨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닌께 어찌 됐던 간에 나나 이녁들이나 다덜 죄는 짓지 말구 살아야 되것더라구. 나두 첨에는 그까짓꺼 낭구 몇 개 빈 걸 가지구 뭘 어쩌랴 싶어 별반 대수롭지 않게 넝겨 버렸는디, 그기 가서 보닌께 아! 글씨 내 생각과는 영 딴판으루 그게 아니더라구. ‘코에 걸면 코걸이구 귀에 걸면 귀걸이’라구 말하던 병수 애비 말처럼 운수가 드럽게 나빠가지구 재수가 옴 붙어 걸려들어 붙들려 가면 그때부터 생고생을 허야 되닌께 인생 절단나는 거지 뭐. 안 그런가? 기나저나 그 성님두 눈만 뜨면 뒷짐 지고 너른 땅 바라보고 큰기침하며 살았는디, 잘사는 부자라구 겨우 면소재지까지는 통할란가 몰라두 그기서는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두 없더라구. 또 별시리 신경두 안 쓰는 것 같드라구. 그러니 죙일토록 닭장 안에 갇힌 달구새끼 모양 찍소리 못허구 그 안에 그리 꽉 갇혀 있을려니 오죽이나 답답하구 미쳐 버릴라구 헐 것이여. 그 양반이 되게 급하긴 급했는가? 그놈에 뚝 고집 어디다 버렸는지 합의하는디 병막 터 영감이 하자는 대루 다 해주라고 신신당부를 허드라구. 그리니 똥고집 부리는 정영감을 구실러서 일은 해결을 혀야 쓰건는디 어쨌으면 좋을 란가 도통 모르것구먼.”

한동안 입 가장자리에 거품이 묻어나도록 열심히 말을 마진 순태아저씨가 담배를 피워 물려하자 옆에서 이야기를 죽 듣고 있던 상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허긴 자기네 산에서 멀쩡한 나무를 베어 갔으니 나라두 그냥 참지는 못할 일이지만, 어찌됐든 간에 사람이 그 속에 갇혀 있으니 일단 감정을 풀고 사람부터 빼내야 헐틴디, 그 영감 고집이 보통을 넘으니 그게 큰 걱정이네 그려.”

그러자 담배를 두 어 모금 빠시던 순태아저씨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그래서 읍내서 버스를 타구 오면서 나 혼자 곰곰히 생각을 혀 봤는디, 병막 터 아들 정섭이랑 기성이가 어려서부터 깨불알친구닌게 정섭이를 잘 설득시키면 될 것두 같은디, 이참에 기성이가 나서주면 일이 수월허게 풀릴 것두 같은디, ‘개똥두 약에다 쓸라면 없더라’구 그나마 멀리에 가 있으니 답답허기만 하네. 그리구 아까참에 면회를 허는디 동십이 형 모습을 보니, 작살 맞은 메기 모냥 풀이 팍 죽어 있더라구. 그런 모습을 보구 나 혼자 집으루 올라닌께 내 맴이 영 편치 않더라구.”

한동안 그리도 장황하게 말을 하시던 순태아저씨가 목이 타시는지 둥구나무 밑에서 제일 가까운 우현이네 집에 물 한 그릇 얻어 마시려 발걸음 하셨다. 그러자 동네 어른들이 지금껏 제가끔 말 한자리씩은 다 하셔도 말 한자리 없이 그저 묵묵히 듣고만 계시던 삼식이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두 숨이 콱콱 막혀 오는 이 더운 날씨에 그리 붙들려 가 고생하는 사람이야 오죽허것나 만은, 세상사 덕을 베푼대로 간다구 잘은 몰라두 내가 알기루는 병막 터 영감님헌티 지 아무리 매당구 쳐 봐두 소용 없을 끼구먼. 그게 왜 그러냐면 두 노인네 이제 다 늙어서 힘 못쓰닌께 이번참에두 일 잘허구 있는 그 뭐시냐 정섭이를 대전에서 요기까장 불러 내린거구. 정섭이두 인제는 대가리가 여물었다구 지 할 말 헐려구 고소장을 넣나 본데, 아들 말 안 들어 보구는 영감 맘대루 그리 쉽게 결정을 못 내릴 끼구먼. 니나 내나 헐 것 없이 나이 먹어 등 꼬부라지면 차차루 자식새끼 눈치를 보구 산다구, 이번 일 자물통 열쇠는 누가 뭐니 뭐니 혀두 정섭이란 놈이 쥐고 있어서 정섭이 지가 맘 돌려먹기 전에는 토끼 용궁 갔다 오는 것매냥 딥다 어려울 꺼구먼 그려.”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던 동네 분들 중에 그래도 심성이 그다지 모나지 않으신 이장님이 나서 흐트러진 분위기를 다스리려 했다.

“그래두 어쩌것는가? 그것 말구는 별다른 방법이 없으닌께 그 집에 찾아가서 죽자 사자 매당구 쳐 봐야. 어찌됐던 간에 이번 일루다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그 집이구 칼날을 쥐고 있는 건 동섭성이 아닌감? 그러닌께 그 고생 안 허구 얼른 나올라 치면 일이 잘될지 안될지는 하늘과 땅만이 알 일이니 급한 놈이 물키더라구 땅바닥에 엎드려 빌더라두 사정을 해 보는 수밖에 별도리 있건는가? 왜 말이 안 있던감? 뭐니뭐니 혀두 합의서가 그 잘난 대통령 빽보다 휠씬 낫다구. 그러니 이 마당에 동섭성님두 무신 체면이구 나발이구 다 버리구서 합의를 볼라구 하는 거지. 암튼 한동네서 있어서는 절대루 안되는 일이 일어났으니 상호지간에 일이 잘 풀려야 헐틴디, 내사 잘은 몰라두 그날 밤에두 보았지만 성섭이란 놈이 이제는 저도 클대루 다 컸다구 지 할 말 똑 부러지게 다 안 허든감? 어렸을 적부터 가만히 보닌께 지 애비 못지않게 한 고집 있더라구. 참! 나 좀 봐. 나두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네. 일이 잘되든 안 되든 뭐시냐 사정하는디 힘이라두 보탤라면 나두 같이 가봐야 쓰것구먼 그려.”

그리 말을 하면서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동근이 아버지가 걸어가신 고샅길로 향했다.

둥구나무에 매미란 놈은 이제는 지쳐서 좀 쉬어 멈출 만도 한데 한나절 햇살이 팍 퍼져 나는 것처럼 더욱 약을 올리듯 시끄럽게 쟁쟁거렸다.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동네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들을 하시는지? 전혀 개의치 않아 관심이 있을 리 없는 철부지 동네 아이들은 훌러덩 벗은 알몸으로 동네 앞 냇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수문 턱에 올라 콧구멍을 한 손으로 꽉 틀어막고 ‘텀부덩 텀부덩’ 물을 튀기며 펄쩍 뛰어내렸다. 그러다 그마저도 싫증이 난 나이가 좀 들은 아이들은 미역을 감고 둥구나무 밑으로 와 펑퍼짐한 바위 위에 크레용으로 그어 놓은 우물고누 판에 말을 옮기며 놀고 있었다.

더러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둥구나무 밑에 제일 느지막하게 마실 나오신 진식이 할아버지께서 종구네 기와집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그러구 보닌께 집은 떡 버러지게 잘 지어 놓아 눈동냥은 잘헌다마는, 결국엔 저 놈의 기와집 서까래가 멀쩡한 생사람 잡네 그려. 나두 첨 집 지을려고 산에서 낭구를 베어 내릴 때 자기네 산이 지아무리 크다구 혀두 어디서 저 많은 낭구가 구석구석 골짜기에서 나오는가 허구 내 깜냥에 의심을 더러더러 혔지만은, 원체 사람이 그래서 씀벅씀벅 말 한자리라두 붙이기 그렇구 넘 일에 밤 놔라 대추 놔라 참견헐 일두 아니라서 기러기 먼 산 보듯 했는디, 그여 일이 터져 작금에 이 상황까지 이르렀구먼, 에휴.”

그러자 지긋하게 곰방대를 입에 물고 계시던 기현이 할아버지가 말을 이으셨다.

“그나저나 동섭이두 언젠가는 저 많은 놈에 재산 다 써 보지두 못허구 북망산천 먼 길을 가야헐 긴데, 있는 사람들이사 죽어 눈감을 때두 그 재산 아까워 손안에서 놓칠 못해 손으로 빈 허공만 허우적댄다는데, 지나 내나 그렇게 썩어 한 줌 흙으루 돌아가는 거닌께 옛말에 부자 삼대를 못 버틴다구 남은 자식들이 어찌 헐련지 잘 간수혀야 될틴디.”

삼베로 새로 짠 듯 산뜻한 적삼에 바지를 입고 계셔 제법 풍채가 그럴듯하게 좋아 보이는 진식이 할아버지가 장죽을 입술에 가볍게 무시며 기현이 할아버지에게 농담처럼 말을 넌지시 건네셨다.

“아니! 그러구 보닌께 자네가 재산 간수를 뭐시 어쩠구 뭐시 어쩌네 하구 자꾸만 얘길허는 것 보면, 밥숟가락만 빼면 얼굴 맞대고 사는 나두 모르게 딱 하나 남은 금쪽같은 기현이란 놈 줄라구 어디 물자리 좋은 디다 땅섬지기라두 두더지 굴 파듯 아무두 몰르게 사둔 모양이구먼 그려. 혹시! 모를 일이지 그 뭐시냐 해마다 여름에 왕골 꽃돗자리 짜서 짭짤허게 재미를 봤으닌게 그 돈 모았다가 샀는지 누가 알기여. 참! 그러구 보닌께 뭐시냐 자네 집 옆에 사는 그 이북띠기 흥남인가 하는 그 사람두 지난 참에 돗자리 팔아 가지구 이쁜 각시 얻어서 새 장가를 간 모양인디, 자네두 어디 마땅한 할매라두 하나 있는가? 방물장수 할매 치맛자락이라두 붙들구 동섭이 매냥 매달려 통사정이라두 한번 해 보지 그랬는가?”

그렇게 우스갯소리로 말을 마치신 진식이 할아버지가 기현이 할아버지 얼굴을 바라보시고 호탕하게 웃으셔 자리를 같이하고 계신 동네 어른들이 시무룩했던 분위를 깨고 모두들 웃으셨다. 그러자 기현이 할아버지가 입에 물고 계시던 곰방대를 얼른 빼시고 동네 노인 분들 다들 먼저 세상을 뜨시고 유일하게 남은 하나뿐인 친구이자 말벗인 진식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시며 꾸짖듯이 말씀하셨다.

“예끼, 이 사람아! 농담이라두 그걸 말이라구 허는가? 참말루 내가 그런 돈 있었으면 저 불쌍한 거 홀로 남겨 두구 죽을 때 속 편허게 두 눈 딱 감구 두 다리에 발목댕이 쫙 펴구 죽건네 그려. 지 놈두 복이 그것 밖에 안되닌께 나처럼 거렁뱅이 밑에 태어난 건디지 놈이사 억울헐망정 으쩌것는가 안 그런가?”

그러면서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외동 손자인 기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셨다. 그러자 동네 어른들이 기현이 할아버지와 기현이의 가슴 아픈 사연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터라 금방 웃음을 멈추셨다. 진식이 할아버지도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조금은 부담스러운지 한두 차례 헛기침을 하시며 자글자글한 한낮 햇살에 녹아내릴 듯이 억세게 뻔득거리는 진 초록빛 산자락을 바라보셨다.

검푸른 벼 포기들이 알차게 영글어가고 있는 앞 들녘엔 조금 멀리 홀로 떨어져 있는 작은 채화역사가 눈에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그리고 뻘쭘하게 보이는 철제 시그널이 더위에 지친 모습으로 이제 곧 역사로 들어올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외롭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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