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성가시게 들볶아대던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여 물러간다는 처서(處暑)가 되었다. 하지만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 늦더위는 여름의 발목을 야물딱지게 붙들고 늘어져 이른 아침부터 온 대지(大地)가 차오르는 열기로 후덥지근했다.
더없이 넓은 앞 들녘엔 푸름이 넘쳐 나던 벼이삭들이 잠시인들 구름사이 얼굴 가린 햇살에 커다랗게 그늘이 드리워져 어두침침하게 가라앉았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시원스럽기만 하니 늘쩡거리는 여름의 등 뒤에 가을이 소리 없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들녘에 비해 계절의 변화가 일직 일어나는 산골의 새벽은 싸한 공기 속에 가을 내음이 성큼 코끝에 닿았다.
동네 사람들이 좀 이른 아침부터 저마다 손에 농기구를 들고 갈아엎어 놓았던 감자밭에 밑거름을 넉넉하게 넣고 밭 흙을 골고루 깨부수어 좁다랗게 골을 타고 가을 김장 채소인 배추, 무와 갓을 그리고 빛깔이 곱기로 인근은 물론 멀리까지 소문이 난 붉은 황토빛깔이 맛깔스럽게 묻어나는 알타리(총각무) 씨앗을 정성 들여 파종하고 있었다.
등이 굽어진 계단식 밭에는 맥고지(麥藁紙) 모자를 눌러쓴 영호네 아버지가 귀에 들릴 듯 말 듯 진양조 한 자락를 구성지게 부르시며 밭에 씨앗을 뿌리고 계셨다. 그 옆에 단작스레 들러붙은 자그마한 뽕밭 자락에서 부지런히 가을 누에뽕을 따시던 영호 어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청승맞게 노래를 부르시는 영호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떨떠름하신지 지청구를 하시는 듯했다.
집안 식구들 중에 제일 먼저 잠자리에서 일어나신 어머도 읍내로 장사를 나가기 전에 무, 배추 씨앗을 뿌리시려나, 텃밭에서 쇠스랑으로 흙덩이를 두드려 깨부수고 계셔 얼른 달려가 쇠스랑을 뺏어 들고 밭에 흙을 두드렸고 어머니는 호미로 간조롬하게 골을 타고 씨앗을 뿌리셨다.
원두막 밭에서는 동근이 아버지와 방앗간 순태아저씨가 읍내 논산 장날이라 더욱 서두르시는지 밭에 있는 수박들을 하나둘씩 따서 조심스레 지게 위에 얹어놓으시며 동근이 아버지가 못내 못마땅하신 심정으로 순태아저씨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육시랄 놈의 거, 지아무리 수박 농사 떡 벌어지게 지어 놓아 본들 뭐한뎌. 귀 어둡구 길 멀어 수박 사갈려구 찾아오는 사람 코빼기두 안 보이구 어쩌다 귀찮게시리 만만한 참외나 사러 오니, 마른 가실에 감나무 꼭대기에 매당구친 홍시 떨어지길 바라는 거나 진배읍지 뭐.”
동근이 아버지가 무척이나 서운 하신 듯 말을 끝내려 하시자 순태 아저씨가 이내 말을 받으셨다.
“왜 이니래유? 그러니 저놈의 하늘이 홀라당 뒤집어지기 전엔 몸 편허게 앉은 자리서 장사허기는 이미 다 글러 터진 일이구. 글타구 입에 단내 나게 혀 빠지게 농사진 거 밭에 내번져 둘 수는 없은께. 죽으나 사나 읍내루 들구 나가 싸게라두 팔아 치워야 허니 보기에 맴이 좀 그렇네유.”
그러자 지게 바작에 한 짐 가득하게 올린 수박을 바라보시며 동근이 아버지가 다시 말씀을 하셨다.
“아! 그런 장사두 혀본 사람이나 허드라구 나같은 사람은 비위짱머리가 없어 죽어두 못헐 것만 같으니 이저리 죽을 맛이네 그려. 글구 지아무리 생각을 혀봐두 내년부턴 수박 농사를 집어 쳐야될 것 같네 그려.”
말을 끝내신 동근이 아버지께서 애꿎은 담배로 가뜩이나 심난한 마음을 달래시려나, 밭 가장자리로 걸어 나가셨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순태아저씨가 동근이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려는 듯이 한 말을 거드셨다.
“아따! 성님 지가 이리 허실허게 뵈두 장사 하나는 딱 부러지게 하닌께 큰 걱정일랑은 말드라구유. 이빨이 읍스면 잇몸으로 산다구, 세상바닥 어디다 내놔두 말 잘하는 성님허구 바지런 떠는 지가 가는디 설마헌들 이까짓 것 다 못팔구 오겄남유? 그런디 뭐시가 그리 겁이 난다구 지리 겁부터 집어먹구 난리다유.”
그러자 밭둑길에 나가 앉으셔 담배를 한 대 피워 무신 동근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자네사 어떨란가는 몰라두 나는 통 안해본 짓이라 아직까장두 자신이 안 서네 그려.”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근이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며 수박이 가득 쌓인 지게를 지고 밖으로 나오며 순태아저씨가 답답하신 듯 말씀하셨다.
“뭐시냐? 팔자 좋아 부모 잘 만난 지놈들은 허연 쌀밥 배 터지게 먹구 사는지는 몰러두, 어디 읍내 사는 사람이라구 어디 대갈빡에 뿔이 두 개씩 난 것두 아니구 사람 생긴 거 그기서 그기던디. 성님! 정이나 용기가 나질 않으면 텁텁한 탁배기 한잔 딱 걸치구 냅다 소리를 질러대면서 장사를 헐면 될 꺼 아닌감유?”
다소 힘에 부치듯 지게를 지고 나오신 순태 아저씨가 동근이 아버지 뒤를 따라나서 밭두둑에 앉아 아랫주머니를 들척여 담뱃갑을 꺼내 땀이 배어 눅눅해진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무셨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옆 자리에 앉아 담배를 빨아 연기를 피우시며 천연덕스럽게 설쳐대는 순태아저씨 말씀이 밉지는 않으신지 설핏 웃으시며 동근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참! 말 허는 거보면 저리두 태평헌디, 으찌 몸뚱아리에 살은 안 붙어 요로콤시루 피골이 상접인지 모르것네 그려. 야! 이 사람아. 글구 내가 으디 그걸 모르것는가?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지들이나 내나 똑같은 밥, 입으루 먹구 똑같이 가랭이 벌려 똥을 싸는디 무엇이 다를까 마는, 도통 안 혀본 장사라 막상 나서 볼라닌께 용기가 나질 않아서 어물쩍거리는 거지 뭐. 자네 말마따나 막상 닥치구 보면 못헐 것이사 뭐가 있건는가? 그래두 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내 돈으루 맹기는 것이 장사인디, 그거 아무나 허는 거 아니라구.”
그래도 다소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장사라 정리가 잘 안되시는 듯 동근이 아버지가 입에 물고 계시던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 애꿎게 발로 비벼 문대셨다.
“성님, 장사가 어려운 건 지두 잘 알지맨서루. 그래두 칠팔 년 전 보리 흉년 들어 집집마다 먹구살 것이 읍서 하늘만 멀건히 쳐다보구 있을 때, 시방은 서울에 가 있는 주현이 애비랑 대소쿠리 등판때기에 무너져 내리도록 짊어지고, 가진 돈 읍시 배 쫄쫄 굶어 가면서 기차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구 그 험해 터진 강원도 산골짜기 고개를 수두 읍시 넘구 넘었다구유.”
“음 맞어. 그때 그무렵에 자네가 장사하려 간다구 어디루 훌쩍 가번졌지.” “아이구 성님 말두 마시유. 뭐시냐, 하늘 빼놓구는 온통 쌔까만 먹물을 냅다 부어 놓은 것매냥 온 사방간디가 시커먼 껌정 석탄뿐인 탄광이라는 데루 장사를 허러 갔을 때, 그 많던 소쿠데미 누가 다 팔았는지 모르지유? 워낙이 말수가 적어 터진 주현이 애비는 비위짱머리가 약해 터져서 소쿠데미만 멍청허게 들구 길 지나가는 사람들헌티 사라는 소리두 못허구 멀건히 서 있다가 나헌티 한마디 듣구 나면 그제서야 모기만한 소리를 내더라구유.” “그려 그랬을 것이구먼. 그 사람두 원체 성격이 유순혀서 쉽사리 그런 말 못했을 거시구먼.” “글구 으디 그뿐이던감유? 한푼이라두 아껴 모을라닌께 밥이사 하루 겨우 두 끼 사 먹는다구 혀두, 넘집 문간방이라두 얻어서 하룻밤 거처를 정혀야 허는디, 잠 좀 재워달라는 그 말 한 자리두 못허니 그리저리 죽어난 것은 지 뿐이었지유.”
그러니까 내 나이 겨우 7살 나던 해인 그해 봄이었다. 오랜 가뭄에 땅이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져 보리 모가지도 좀처럼 영글지 않았다. 닥쳐온 기근에 폐농(廢農)이 되어 들녘과 산으로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을 때 그라도 천우신조(天佑神助)로 뒤뜰에 큼직한 대밭 하나 가지고 있던 주현이네는 어린 자식들하고 그대로 주저앉아서 죽을 수는 없었기에 대바구니와 소쿠리를 들고 타관 땅으로 나섰다.
사는 형편이 가난하여 ‘못 배워 머리는 안 돌아가도 눈치는 빠르다.’고 그새 중간에 읍내에서 물건을 가지러 오는 거간꾼들한테서 주워들은 정보를 응용(應用)하여 수효가 비교적 많고 값을 후하게 받을 수 있는 산간 외지인 강원도 땅 그 먼 곳으로 대소쿠리 장사를 하러 가셨다.
억척스런 주현이 어머니와 주현이 아버지가 밤을 새워가며 크고 작은 대소쿠리를 만들어, 먼 길에 장사를 나서며 혼자 갈 수 없어 붙임성이 좋아 남 앞에 낯가리지 않는 방앗간 순태아저씨와 함께 그 멀고 멀다는 강원도 땅에 근 보름이 넘도록 장사를 하고 마을로 돌아오셨다.
그때 주현이가 자기네 아버지가 소쿠리를 다 팔아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어 와서 자기네 집도 부자가 되었다고 으스대었다. 그래서 중택이네 집에서 보리쌀 두 가마니를 사다 아랫방에 쌓아 놓았고 늘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주현이 어머니가 가위로 볼품사납게 깎아 주던 머리도 면소재지 이발소에서 예쁜 상고머리로 깎고 빨간 풍선도 하나씩 사 들고 와서 연자방앗간 앞 공터에서 그리도 자랑을 많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지게 위에 한가득 실려 있는 수박덩이를 간추리고 손바닥에 침을 한번 뱉으시며 가느다란 두 다리를 흔들거리시며 지게를 지고 일어서던 순태아저씨가 종구네 소달구지가 받쳐 있는 동네 큰길가로 가시려다 걸음을 멈추셨다.
“성님 시방 저기 거북바위 앞 모텡이 돌아가는 것이 뭐시냐 준섭이 애비 아닌감유? 엊저녁 느지막헐 때 고샅길에서 만났을 때는, 오늘 장날에 우리덜 허구 하냥 간구 실컨 떠벌려 놓구막상 때가 되닌께 지 혼자서만 쑥구렝이 담 넘어가듯이 쓱 빠져나가는구먼유.” “아! 이 사람아 자기두 무신 볼 일이 급하닌께 서둘러 가것지. 그걸 가지구 트집을 잡구 난리당가? 늦었네, 어여 짊어지구 가더라구.” “성님 지 말은유, 꼭 도와줘야 맛은 아니지만 바쁜 거 뻔히 알면서 요기 와서 지게루 한 짐 져다 주면 어디 덧나는가? 인정머리 없이 머리 싹 돌리구 이른 아침부터 텅 비어 있는 장바닥에 뭐시 줏어 먹을 것이 있다구 서둘러서 지 혼자서만 스리슬쩍 먼저 장터루 나갈라구 허니, 읍내 소전에서 일하는 용철이 애비 말마따나 그 저잣거리에 있는 ‘옥천집’에 이번 참에 새루 왔다는 술집 시악시 치맛폭에 푹 빠져서 허벙대느라구 그러는지? 당췌 모르것네유.” “아따 그 사람 참 승질머리하구는 뭘 그리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감? 그럼 그러려니 하구 말면 될 것을.” “암튼 이번 일은 그렇다 치구 참 상호지간에 의리라구는 좁쌀맨큼두 없으니, 앞으로 두고 보라구유. 그래두 성님 자유당 시절 잘나갔을 때는, 지들 아쉬운 일 생길 때 기댈라구 실실 눈치나 보든 것들이, 이제 지 세상 만난 듯 등 돌리는 거 보면 참 세월이 야박하게만 느껴지네유.”
순태 아버지가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시자 동근이 아버지가 서운하신 어투로 말씀하셨다.
“왜 아니것는가? 속된 인간들 달면 삼키구 쓰면 뱉는 것을 이치루 알구 사니 으쩌것는가? 요즘 동네 돌아가는 꼬락서니 보닌께 참 가관(可觀)이던구먼 그려. 이건 으찌된 심판인지? 고을 원님보다 앞에 서 가는 풍각쟁이가 더 설쳐댄다구. 병수 애비사 심성이 어질어서 그럴 일이 읍지만서루, 병수네 애비가 면 의회 의장 감투를 쓰구 나닌께 그 뭐시냐 몇몇 사람들은 그 밑에 붙으면 콩고물이라두 떨어지는 줄 알구. 아침저녁으로 찾아가 바짝 붙어 댕길라구 허면서 언제부터 인사성들이 그리 밝았는지, 죽은 지 고조할애비헌티 절을 하듯이 디딜방아처럼 깍듯이 절을 해대는 꼴이라니 내 원참! 기가 차서.”
동근이 아버지가 못내 씁쓸하신 표정으로 마을을 한번쯤 휙 둘러 쳐다보셨다. 그러자 방앗간 순태 아저씨가 다시 말을 거드셨다.
“말이사 바른 말이지 자유당 정권 무너지구 그 놈에 권력 손아귀에 거머쥐게 된 게 죄 없는 학생들 귀한 목숨허구 바꾼거지. 으집지 않은 제깐 놈들 때문이던감유? 그리 어렵게 정권을 잡었으면 나랏일이나 잘 혀야지. 잔뜩 배고팠던지 떡 조각 하나 놓구 서로 못먹어서 안달이나 허구 헌날 쌈박질이나 혀 대구 있으니 나라 꼬라지가 이 모양이지유 뭐. 아! 읍내만 나가 보세유 법은 이등이구 주먹 센 놈허구 목소리 큰 놈이 왕노릇을 허니, 세상 꼬라지 으찌 될라구 이러는지 도통 모르것네유.”
동근이 아버지와 순태 아저씨 두 분 모두 무척이나 껄끄름한 얼굴로 수박 지게를 지시고 소달구지가 있는 동네 큰길로 향하셨다.
평상시에는 그리도 한적하게만 보이던 동네 앞 큰길이 닷새 걸러 한 번씩 들어서는 장날만 되면 동네 큰길과 철로 양쪽 갓길에는 말쑥하게 차려입으시고 읍내 장터로 가시는 동네 어른들의 모습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순아네 소달구지도 면소재지 앞 가파르게 비탈진 철로 건널목을 부지런히 오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김장 채소인 배추와 무 씨앗을 심고 나오시며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둥그런 배를 훌떡 내밀고 있던 수박 대여섯 통 중에서 농숙(濃熟)된 것으로 세 덩이를 따서 밭두둑으로 하나씩 들고 나오시며 나에게 말씀 하셨다.
“너는 뭣허느라구 뻘쭘허게 서 있기만 허냐? 싸게 밖으루 들구 나가지 않구? 한 통은 읍내 도매집 재숙이네 집에 갔다 주구, 또 한 통은 그래두 꼴나게 농사졌다구 우리 식구들 수박 맛이라두 보면 될 꺼구. 나머지 한 통일랑은 이따가 동네에 내려갈 때 옥순이네 집에 갖다 주거., 그래두 옥순이 애미가 내 친구라구 뭔 일만 있으면 발 벗구 나서 도와줄려구 허는디, 어찌 됐든 귀한 거닌께 같이 나눠 먹어야 쓰지 않것냐?”
그렇게 말씀을 하시며 어머니가 내 눈치를 살살 살펴보시는 것 같아 종구네 아버지와 옥순이 어머니 일을 트집 삼아 옥순이네 집에 아예 가지 않을까 보아 다짐을 하시듯 재차 말씀하셨다.
“증말로 딴 생각허지 말구 꼭 갖다 줘야 헌다. 이것두 생물이라구 꼭지 말라 비틀어지면 수박 맛 변하닌께. 기새라 갖다 주는 거 성의 있게 보일라면 그나마 꼭지 싱싱헐 때 갔다 줘야 허닌께 아침밥 먹구 내가 장사하러 나가구 나면 그때 서둘러 갔다 줘라 알았지?”
어찌 보면 옥순이와 나 사이에 서먹함이 가득 차 서로 말문을 닫고 있는 줄 익히 잘 알고 계시는 어머니가 하루 장사를 마치시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신 후 옥순네 집에 잠깐 다녀오셔도 되는데 굳이 아침나절에 수박을 따서 꼭 나를 심부름 보내시려 하시는 의도를 내 자신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같은 동네에 그리 오랫동안 돈독한 우정을 쌓으며 살고 있는 옥순이와 나 그런 우리들의 우정에 균열이 가게 한 그 상대성을 띄고 있는 집이 다름 아닌 종구네 집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꺼림칙했다.
그리고 그런 거북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시는 어른들의 심사가 그때의 어린 우리들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 조금도 마음에 받아드릴 수 없었다.
비록 처해진 삶이 더없이 궁핍할지라도 그렇게 불운(不運)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어린 우리들이 그토록 갈구(渴求)하였던 작은 바람은 아무런 마음의 거리낌 하나 없는 순수함 속에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그런 삶의 바탕이 마련되길 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