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회색 비구름에 잔뜩 몰려와 흐리게만 보이던 하늘이 찾아드는 어둠살에 더욱 어둡게만 보였다. 그리도 쉽게 눈에 띄던 새치름한 눈썹달도 구름 속에 숨었나, 도무지 보이지 않아 온 주위가 어둠의 늪으로 점점 더 빨리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거무스레하게 바라보이는 앞산 자락 우묵골 갈참나무 숲에서 소쩍새 한 마리가 가뜩이나 갑갑한 마음을 부추기는 듯 지지리도 청승맞게 울어댔다.
그 산기슭 어둠침침하게 보이는 면소재지 마을 어귀에 세워 놓은 가로등의 녹슨 양철 갓을 쓴 둥그런 전구 알이 마치! 충혈된 산짐승의 눈알처럼 불그스름하게 비췄다.
쪽마루 기둥의 벽에 걸어놓은 남포등 불빛이 산자락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가물거렸다. 가느스름한 불빛이 말끔하게 닦아 놓은 둥그런 유리 등피 밖으로 새어 나와 마루에 앉아 있는 식구들의 얼굴에 흐릿하게 어른거렸다.
읍내를 항해 트여진 기다란 신작로가 희끄무레하게 보여 허한 마음 더욱 고적하기만 했다. 이따금씩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산자락을 타고 내 작은 초가집 울타리 위로 번쩍거리는 듯싶더니 이내 빛을 잃어 사라지고 말았다.
어쩌면 굴곡 심한 삶은 한없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긴 여정인 것만 같았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내 의사가 이치에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리 섣불리 내 의사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서로가 얽히고설킨 그 모든 관계를 고려(考慮)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혈연적인 관계를 이루었을 경우엔 더욱 그런 것 같았다. 그런 경우는 비단 나뿐 만은 아닌 듯싶었다.
한동안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놓았던 모든 일들에 대하여 꼭 속 시원히 알고 싶었기에 어머니에게 꼭 묻고 싶었지만 그 말 한마디 하기가 그리도 힘이 들었다. 성격이 너무도 강경하신 어머니가 온 집안의 분위기를 송두리째 싸늘하게 뒤집어 놓아,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을 알고만 싶었던 내 욕구가 편협(偏狹)적이었나 하는 생각 속에 후회도 해보았다.
허나! 이미 입 밖으로 꺼낸 말이라 다시 담을 수도 없어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보다는 어머니의 노여움이 더욱 심하신 것 같아 마음에 커다란 부담감을 느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내가 바라는 대로 원만하게 끝맺음을 하기엔 무겁게 내려앉은 집안 분위기로 보아 이미 늦어버린 듯싶었다.
막바지 여름이라도 모기는 여전히 극성스럽기만 하여 마당에 마른 쑥을 놓고 모깃불을 피우려 했다. 거무스름한 앞산 언덕바지로부터 시원스런 바람이 한차례 불어오는 듯싶더니 ‘후두득후두득’ 싸리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온통 뒤덮은 호박잎 위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마당에 펼치려 했던 모깃불을 얼른 토방 위로 옮기려 마른 쑥대를 두 손으로 움켜 들고 토방 위로 막 올라서는데 오랜 침묵을 깨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야 이놈아! 뭣하구 있는 기여? 그리 에미 얼굴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어볼 것이 있다구 했으면 무신 말을 꺼내야 헐 것 아니여? 으째! 쇠 잡아먹은 물귀신매냥 말 한자리 않구 엉뚱하게 모깃불만 필려구 혀. 헐 말이 뭔지는 몰라두 어여 싸게 혀 봐. 그래야 집식구들 배들 고풀 건디. 서둘러 저녁을 먹을 틴게 다덜 니놈 땀시 기다리구 있잖냐? 그러닌께 바지에 똥질헌 것매냥 우물쩍거리지 말구 그 말이 도대체 뭣인지 속 시원허게 싸게 혀봐!”
내 태도가 그리도 섭섭하셨는지? 좀처럼 틈새를 주지 않으시고 심하게 다그치셨다.
비가 오려고 해서 그러는지 눅눅하고 꿉꿉해서 모깃불이 쉽게 잘 붙으려고 않아, 연기에 눈물이 나도록 납작 엎드려 입으로 ‘훅훅’ 불어 겨우 모깃불에 불을 붙여 놓았다. 매캐한 냄새 속에 나지막하게 펴져나는 희뿌연 모깃불 연기를 바라보며 쪽마루에 앉아 자꾸만 미안스럽고 부담스런 생각이 들어 어머니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겨우 입을 열었다.
“엄니헌티 버르장머리 없이 말한 건 엄니가 속이 상하시더라두 용서를 해주세유. 내가 왜? 버리장머리 없는 줄 알면서두 그런 말을 했냐면유. 아래께 수박밭에서 엄니랑 동근이 아버지가 허는 말 들어서 인제는 다 알아 번졌지만, 이번 가실에 종구네 아버지허구 옥순이 엄니가 같이 살려구 허는 모양인디, 뭐땀시 엄니가 새중간에 끼시는 바람에 옥순이헌티 애매한 나만 오해를 잔뜩 받게 해서 그 일루 잔뜩 화가 나서 서루 말 안 허구 지낸지가 벌써 근 두 달이 다 되가는구먼유. 그리구 먼젓번에 아랫목에 갔다 놓은 쌀 한 가마니두 엄니는 나한티 읍내 젓갈전 재숙이 엄니헌티 빌려온 돈으루 종구네 집에서 돈 주구 사 온 거라구 했지만, 내 생각엔 절대루 아닌디 엄니는 끝까장 나를 속일라구 혀서, 엄니헌티 뭐라구 말 한자리 꺼내지두 못허구 이적까지 나 혼자서만 끙끙 앓다가 이참저참 하두 답답혀가지구 그랬으닌께 엄니가 한번만 용서를 혀 주세유. 내가 엄청나게 잘못을 혔구먼유.”
너무도 착 가라앉은 숙연한 분위기에 기세가 푹 눌려 조금은 쑥스럽게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존댓말로 모든 것을 다 말씀드렸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나더라도 가슴에 꽉 막혀 있던 오랜 체증(滯症)이 쑥 내려가는 것처럼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바람에 너불너불하는 남폿불에 언뜻언뜻 빗줄기가 보이고 ‘후두득후드득’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쪽마루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듣고 나신 어머니가 비가 내리는 밤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남포등의 불꽃 심지를 더욱 세게 올리셔 불을 좀 더 환하게 밝히려 하셨다.
“그려! 니놈이 대가리가 영글었다고 헐 얘기 다 했으닌게, 시방부터는 내가 말을 헐랑께 두 귀 똑바루 뜨구서 내 말 끝까장 잘 들어야 혀.”
어머니께서도 이미 내 의중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채신 듯 작심한양 단호한 어조로 말씀을 하셨다.
“니가 아까참에 종구네 아버지허구 옥순이 에미가 재혼을 헌다구 했는디, 그건 두 사람이 서루 간에 맘이 맞아 그렇게 허기루 결정이 난 거구. 동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헐라나 모르것지만 내가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디 참말로 두 사람 일에 첨부터 내가 팔소매 걷어붙이구 나선 건 절대루 아니여.”
어머니께서도 무엇인가? 동내사람들로 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영 못마땅하신 듯 목소리를 더욱 높여 말을 이으셨다.
“그러닌께 금년 늦은 봄 어느 날인가? 동근이 엄니가 옥순이네 집에 와서 옥순이 에미헌티 허는 말이 종구네 애비가 그 동안 옥순이 에미를 맘에 두구 있었다구 허면서, 옥순이 에미두 평생토록 혼자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닌게. 이참에 저쪽에서 먼저 말이 나왔으닌게 옥순이 엄니 맴은 어떠냐구 물어서 옥순이 에미가 펄쩍 뛰면서 당췌 말두 되지 않는 소리 마라구 하면서 되돌려 보냈단다.”
토방에 피워 놓은 모깃불에서 쑥 타는 매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마루 위로 서서히 번져나 가끔씩은 눈이 매웠다.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를 상세하게 이야기 하시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고요한 늦저녁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옥순이 에미가 그 소리를 듣구 나서 부터는 뒤숭숭해서 통 잠이 오질 않더란다. 그래서 이모저모로 생각을 혀 봤는디, 니놈두 그 집 사정 잘 알다시피 겨우 논이라구 꼴난 닷 마지기 짓구 사는디, 그나마 서 마지기는 하늘만 빼꼼 바라보는 비석골에 있는 천수답이라, 일년 내 죽도록 농사를 져 봤자 이것저것 제하구 나면 남는 건 별루 없구 뙤약볕에서 죽을 고생만 허는거지 뭐. 그기다 옥순이 할머니허구 다 큰 옥순이 고모가 따루 살아 그쪽 집에 먹는 양식두 보태줄라닌께 늘 궁색한 살림에 허덕이는데, 그저 동내사람들은 속타는 줄두 모르구 그럭저럭 사는 줄 알지만 참말루 옥순이 에미 혼자 죽어나는디 누가 그걸 알긋냐?”
이심전심이라고 내 어머니 역시 너무도 간고한 삶에 짓눌려 사는지라 그 누구보다도 옥순이 어머니가 처한 삶의 고통스러움을 속속들이 잘 이해하고 계신 듯했다.
“그리고 지난봄에 옥순이 중학교 입학헐 때 등록금 마련한다구, 생전 넘헌티 혀 짧은 소리 않구 살던 그 여편네가 허는 수 없이 중택이네 아버지한티 논문서를 잡히구 쌀 몇 가마니를 장리 빚으로 낸 모양이더라, 에이구.”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옥순이네 집이 그토록 어렵게 보이질 않았는데 옥순이의 중학교 진학 문제로 논문서를 담보로 영택이네 집에서 장리 빚을 냈다는 말은 어머니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얘기였다.
“그 일루다가 자나 깨나 빚 걱정하고 살면서, 을마 안 있으면 옥순이란 년 고등학교도 보낼라구 허닌께 엄두가 나질 않아 날마다 속으루 걱정을 태산 같이 허는디, 동근이 엄니헌티 그런 소리를 듣구 나닌께 이러면 좋을까? 저러면 좋을까? 오만 궁리를 혼자서 날이 훤히 새도록 혀 봤는디 도통 모르것다구 날보구 어쩌면 좋것냐구 하면서 묻더라.”
그토록 나와 동네사람들로 부터 오해를 받기만 했던 어머니께서 자상하게 전후 사정을 말씀하시니 그제서야 서서히 모든 오해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니놈이나 옥순이는 으찌 생각헐라나 모르것지만, 솔직허게 말해서 종구네 아버지 인간성을 보구는 천번 만번 반대를 혀야 마땅허지만, 씻구 벗구 하나밖에 없는 자식새끼가 배운다구 허닌께 지가 배울라구 허는디까지는 갈켜 볼라닌께 돈이 있어야 혀서, 옥순이 에미가 몇 날 며칠을 두구 생각을 혀서 결정을 내린 것이구. 그리고 막말루 중 제 머리 못 깎는다구 나헌티 중간에 기별을 넣어 달라구 혀서, 아침에 읍내 장사 나가는 길에 종구네 집에 잠깐 들러 얘기를 전해준 것뿐이여. 그리고 두 사람이 상견례를 헌다구 기별이 와서 읍내 중국 요리집에서 만나자구 하는디 부끄러워서 도저히 저 혼자는 못 나가것다구 혀서, 강경 읍내에 옥순이 에미랑 같이 간 건디 그게 그리 죽을죄를 지었다냐?”
마루 기둥에 걸어 놓은 남포등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날파리들이 답답한 내 심정만큼이나 등불 앞에서 어지럽게 유회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원인이 결국에는 가난으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그저 무기력한 마음에 한숨만 가늘게 새어 나왔다.
“코딱지만 한 동네에 헐 일들이 되게 없으닌께 다 덜 비싼 밥 쳐먹구 넘 말들이나 씀벅씀벅 혀대구덜 그러지. 그리구 뭐시냐 옥순이란 년두 갑자기 그런 말 듣구서 첨에는 당황두 되것지만, 그렇다구 지에미 깊은 속사정두 모르구 그렇게 나쁜 쪽으로만 지 에미랑 나를 막 몰아붙이면 못쓰는 법이여.”
어머니께서 한동안 장황하게 말씀을 하셔 후덥지근한 밤의 열기와 더불어 속이 무척 타오르시는지, 저녁 밥상 옆에 놓인 노란 양은 주전자를 아예 주전자 채 들고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시고 벌컥벌컥 소리가 나도록 정신없이 한참을 마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무척이나 신산스럽게 보여 차마 말로서는 이루 다 표현치 못할 정도로 가슴이 아려왔다.
그런 마음을 달래나 주려는지 한차례 소나기가 내렸다. 제법 굵어진 빗방울이 울타리에 서 있는 풀과 꽃나무들을 호졸근히 적시며 거침새 없이 내렸다.
입에 대고 계시던 주전자를 마루에 내려놓으신 어머니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그리구 방에 있는 저 쌀가마니는 니놈 말대루 종구네 애비가 보낸 것이 맞는디, 내가 왜 너헌티 그짓말루 둘러댔냐면 니놈이 사실대로 알게 되면 속이 언짢을까 봐 애터지는 에미 심정에 그렇게 헌 것이란다.”
어머니의 짙은 한숨소리와 더불어 등불에 비친 어머니의 얼굴에 눈물이 보여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그리구 나는 전혀 생각두 안 했는디 옥순이 에미가 종구네 애비헌티 어떻게 말을 혔는지는 모르지만, 뜬금없이 쌀을 한 가마니 우리 집으루 보낸다구 혀서 지난날에 두 집 사이에 얽힌 껄끄러운 일들이 생각나서 절대루 받지 않을려구 했단다. 그런디 여름 장마는 닥쳐와서 그나마 장사두 못 나가 하루 벌어서 목구멍에 풀칠허구 살라닌게 양식은 바닥이 나구 남은 세 식구 나 하나 얼굴만 빤허게 바라보구 있으니, 굶길 수는 없어 이 집 저 집 눈치를 살피며 양식 꾸러 다니는 것두 솔직허게 인제는 낮 부끄럽고 진절머리가 나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구 두 눈 딱 감구 받아버린 것이다.”
어깨를 들먹이시며 끓어오르는 아픔을 억제 하시려는지 아랫입술을 꽉 깨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 눈물은 가난에 대한 애석함과 내 어머니의 깊은 심지를 미처 간파하지 못한 자책감 보다는 내 주변에 처해진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에 대한 일종에 분노였다.
“그리구 니놈이 알란가는 모르지만, 내가 죽어나더라두 장사를 혀서 갚는다구 그새 중간에 동네 이 집 저 집에서 둘러다 먹은 남네 집 양식 빚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허니, 어설프게 하루 쪼끔씩 벌어 봐야 밀린 넘네 쌀 빚 갚기 바쁘구, 윗턱 빼서 아랫턱 막구 살려니 속된 말루 니 에미 가지랑머리 찢어질라구 허드라. 그런데 아무리 어려서 철이 없다 치더라두 어짬 그리 야박스럽게 나를 몰아붙이냐? 그러니 니놈이나 옥순이란 년이나 매냥 한가지루 죽도록 키워놔 봤자 말짱 헛고생만 허는 것 같으니, 내가 누굴 붙들구 신세타령을 혀야 쓰것다냐? 서방 복 없는 년이 자식 복이사 있을랴만은 어디 잘난 니놈이 말 좀 혀봐라.”
그런 어머니의 속 깊은 마음을 모르고 곡해를 했던 내 자신을 원망하듯 거침새 없이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눈물어린 얼굴을 차마 똑 바로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리구 니놈은 나보구 엄니는 맨날맨날 비만 오면 등불을 훤허게 밝히냐구 허는디, 내가 왜 그랬는가? 이제 니놈헌티 똑바루 알려줄틴께 잘 들어! 자구 나서 눈만 뜨면 앞으로 이 식구덜 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허나 걱정을 허다 보닌께, 에미 속은 새까만 숯댕이처럼 타들어 가구 그렇다구 누구헌티 말할 자리두 없어 청승맞게 비까지 내리면 마음이 심란해져, 진종일 그리 시달렸는디두 잠이 어디루 달아나 통 잠을 못자것더라구 이 놈아.”
참으로 견디기 힘든 적막감이 팽팽한 긴장 속에 너무도 답답하리만큼 흐르고 있었다. 두어 번 추녀 끝에 불빛이 번쩍 이는 듯싶더니 이내 면소재지 산모랭이를 돌아 나오는 밤열차가 기적 소리를 큼직하게 내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죽은 니 애비 혼이라두 찾아올라나 싶어, 찾아오기라두 허면 니 애비 가슴팍이라도 뚜드리면서 내 애간장 녹아 내리는 소리라두 혀 볼려구, 비까장 오는 어둔 밤길에 길이라두 잘 찾아오라구 불을 훤하게 밝히는 것이여. 글구 니놈은 얼굴두 모르는 니 누나지만, 그 놈에 가난이 원수지 돈 없어서 큰 병원에 한번 가 보지두 못하구 불쌍하게 죽은 그 어린 게 자꾸만 눈에 밟혀 어린 거시 에미가 보구 싶으면 혼이라두 밤길에 잘 찾아오라구, 찢어지는 에미 가슴에 등불을 훤하게 밝히는 기여.”
복받치는 설움에 더는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 두 손을 부르르 떠시며 애써 눈물을 참으려 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듯 마구 떨려와 설음을 도저히 가눌 수 없었다. 그러다 그만 울음을 터트리며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비를 맞으며 사립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옆에서 순덕이 밥을 먹이시던 순덕이 어머니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내 뒤를 따라 나오셨다. 그리고 나를 붙들고 울먹이는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며 울지 말라고 손짓으로 표현을 하셨다.
부슬부슬 내리는 밤비는 내 짧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두 볼에 흐르는 눈물과 뒤범벅이 되어 아려 오는 아픔만큼 젖어들어도 그 무엇에게도 단 한차례 항의(抗議)조차 할 수 없는 미력한 어린 나는 그렇게 처절한 빈한(貧寒)의 세월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