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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77 조회 : 963




한여름 불볕더위가 가마솥처럼 한껏 뜨겁게 달아올랐다. 늦여름 끝머리를 마무리하려나, 유별나게 더운 날씨에 하루해가 그토록 지루하기만 했다. 한나절 내 중천에 꼿꼿이 자릴 잡은 해가 도심(都心)의 건물에 뜨겁게 내리 쬐었다. 메마른 비포장도로는 반질반질하게 달궈져 땅 위로 솟아오르는 열기가 진종일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저녁녘이 되자 이따금씩 서늘바람이 불어와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 저녁 해도 종일토록 지친 듯 도심 건물들의 그림자를 도로 위에 기다랗게 남겨 놓았다.

얼핏 해가늠을 해보니 오후 대여섯 시쯤은 족히 된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려고 빠른 걸음으로 비좁은 시장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길가엔 하루의 훈련을 끝내고 귀대하는 훈련병들이 맨 앞 부대 깃발을 든 기수의 뒤를 따라 조교의 구령에 맞춰 군가를 힘차게 부르며 행군했다.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 외투 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 / 거뜬히 총을 메고 나서는 아침 / 눈 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 산도 높고 물도 맑은 이 강산 위에 / 이 땅을 지키려는 행군이라네.』

하루 동안 고된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귀대하는 훈련병들을 격려해주는 듯 야트막한 언덕 아래 연무대 역사에서 ‘뽀오옥뽀오옥’ 기적소리가 다정스레 울려왔다. 산을 깎아 만들어 놓은 폭이 좁아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작은 길 끝머리쯤에 연무대 역사 플랫폼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강경으로 가는 저녁막차가 역사 기와지붕에 가려져 앞부분만 조금 보였고 기관차의 화통(火筒) 위로 퍼져나는 희뿌연 연기가 기울어가는 저녁햇살에 불그무레한 빛을 띠었다. 그리고 역구내 끝머리에 외롭게 서 있는 철제 시그널이 서편으로 서서히 발길을 돌리려 하는 저녁 해를 배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외삼촌과 외숙모님에게는 인사를 드렸으나 외사촌 남매지간이라도 아직은 서먹하기만 한 정강이 누나와 정순이한테 제대로 말 한마디도 못 붙이고 그저 얼굴만 바라보며 눈으로만 인사를 나눴다.

외삼촌 쌀가게를 나와 시내 중심가 길 건너 안심리에 있는 시장 통으로 들어서니 군데군데 ‘탁탁’ 파리채로 파리를 잡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저녁때가 되자 한가롭기만 하던 장골목이 저녁 반찬거리를 사려고 몰려나온 군인가족 주부들로 다소 분잡해졌다.

생선가게에서는 손님을 끌어 모으려는 아저씨의 소리가 들려 왔고 그에 맞장구를 치는 듯이
건너편 야채가게서 소리치는 아저씨의 구성진 목소리가 한데 뒤엉켜 작은 시장 통에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비좁은 시장 골목길을 걸어가시며 이리저리 살펴보시던 어머니가 혼잣말을 하셨다.

“참! 요기는 봉급날이 대목이라구 허드니, 그 말이 맞는가 보구먼. 사람들이 이리 득실거리는거 보닌께.”

얼마쯤 걸어가시다 고무신 가게 앞에 발을 멈추시고 앞에 진열되어 있는 여자고무신을 만지작거리셨다. 그 중에서 곱게 꽃무늬가 둘러진 고무신 한 켤레를 골라 신으시고 발에 힘을 주셔 신발이 발에 편안한가를 살피시며 손가락으로 고무신 코배기를 눌러 보셨다.

“순덕이 에미 신발이 다 닳은 것 같던디, 나온 김에 순덕 에미 신발이라두 한 컬레 사가지구 가야 쓰것다. 나랑 발 크기가 엇비슷허닌께 이놈으로 허면 쓰것구먼. 그리구 큰에미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허면서 그 어린 게 지딴에는 눈 빠지게 기다리구 있을 건디, 그것두 맴에 걸리닌께 아예 사는 김에 순덕이 꽃고무신두 한 컬레 더 사가지구 가야것다. 그리구 널랑은 이리루 바짝 와봐라? 니 신발두 어쩐가 함 볼랑께.”

나를 향해 손짓을 하시여 어머니 옆에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운동화를 골라보라고 하셔 검정색 운동화 한 켤레를 사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오늘 따라 어머니께서 식구들에게 생각보다 후하게 마음을 쓰시고 계셔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외삼촌으로부터 약간의 돈을 받으신 것 같이 보였다.

조금은 시끌벅적거리는 시장 통을 빠져나와 기차를 타고 집에 가려고 연무대역으로 향했다.
역사의 규모가 내 고향 마을 채운역보다는 조금 크고 강경역보다는 작게 보였다. 대합실 안에 기차를 기다리는 손님이라고 겨우 몇 사람 밖에 보이질 않아 단출한 역사의 건물만큼이나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서 어머니가 승차권을 사려고 매표소 쪽으로 걸어가셨다.

“어메, 이게 누구랴? 들메댁 아닌감? 참! 조선 땅덩어리 넓고두 좁다구 허드니만 우리가 요기서 이렇게 만나 부리네 그려. 아니! 그런디 요기 까치말 삼거리(연무대의 옛이름)는 어짠 일루 왔는감?”

나이가 오십대 중반쯤이나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텅 비어 있는 생선 비린내가 나는 양은 대야를 앞에 내려놓으시고 나무의자에 앉자 말씀하셨다. 강경 읍내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시다 어머니를 만나 무척이나 반가워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자 차표를 끊으시려던 어머니가 매표소 앞에서 얼른 몸을 돌리시며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구 아줌니들 안녕하셨어유. 한동안 읍내서 통 얼굴을 못 보것더니 이쪽으루 장사를 댕기시는 모양이구먼유? 기나저나 날 한질라 오라지게 더운디 이 집 저 집 돌아댕기면서 장사를 하시느라 참! 고생들 많이 하셨네유. 어찌! 장사는 잘 되던감유?”
“어디, 날이 이리 더우니 생선이 쉽게 상할까 봐 그러는지 봄가실매냥 여편네들이 선뜻 사지두 않구 디게 까닥시럽게 굴면서, 혹시나 상했나 싶어 그라는가? 강아지매냥 코를 바짝 들이대구 뭔 놈의 냄새는 그리 맡아대고, 생선을 들었다 놨다 허면서 죄 헌틀어놓구 애를 먹이는지 모르것더라구.”
“그래두 어쩌것어유. 아줌니나 지나 다 자식 새끼허구 안 굶어죽을라닌께 배운 도둑질이 이것 뿐이라구. 꾹 참구 견디다 보면 하루 해 훌쩍 넘어가지 않던감유?”
“그려. 그건 들메댁 말이 맞는 말이구먼. 그래두 어찌됐던 간에 팔라고 가지구 온 맨큼은 해거름녘까장은 그럭저럭 다 치우고 가닌께 쪼까 고생스러워두 견딜 만은 혀.”

생선 냄새 땀내 찌든 하얀 저고리 깃 사이로 내비치는 목덜미까지 뙤약볕에 검게 그을리신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대합실의 둔탁한 나무의자에 앉아계시던 함께 생선 장사를 하러 다니시는 또 다른 아주머니 한분이 말씀하셨다.

“성님! 사거리 모탱이를 지나서 솥단지허구 사기그릇 파는 집이 있지 않는감유? 그 그릇 집 뒤쪽에 있는 양철집에 세 들어 산다는 군인가족 여편네가 자기 서방 봉급날 월급타면 준다구 혀서 꼬장꼬장허게 말린 서대기를 한 열흘 전에 외상으로 줬는디, 어제가 봉급날이라 받어볼까 싶어 장사 끝마치구 다 저녁참에 찾아갔는디, 여편네는 집을 비우구 어디루 볼일 보러 나갔는가? 코빼기두 안 보이구, 송아지만 허게 생긴 쎄빠또란 놈이 담 너머로 내 키만큼 펄쩍펄쩍 뛰면서 어찌나 소락떼기를 큼지막허게 질러대는지 겁이 덜컹 나서 똥매려운 강아지매냥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서 이제나 올란가? 저제나 올란가? 허구 기달리다가 막차시간에 늦을 성 싶어 그냥 와번졌는디 영 서운하구먼유.”
“응, 그것 땀시 오늘 자네가 느즈막허게 왔구먼 그려. 그기사 오늘 못받으면 냘 받아두 되지 뭔 걱정을 그리허는가?”
“기나저나 그래두 성님은 이제 고생 다했지유 뭐. 동네 들리는 소문에 작년에 상업학교 졸업한 큰애가 은행 취직시험에 합격을 해서 은행에 들어간다구 허든디 암튼 잘 돼번졌지유 뭐. 경사 중에 큰 경사가 난 것 아닌감유? 그런디두 성님은 국시 한 그릇두 안 내구 입 싹 딱아 부릴 모양인감유.”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을 추켜세워 기분이 아주 좋으신 얼굴로 말씀하셨다.

“아이구 동상두 내 말만 헐 것이 아니던구먼 그려. 뭐시냐? 동상네 큰딸래미 이름이 뭐더라? 갸는 어려서부터 담박질을 그리 잘허드니 커서두 그리 잘허는지, 무신 대회 시합만 있으면 선수로 뽑혀 가지구 사방 간디루 댕기면서 일등을 혀 가지구 상품을 그리 많이 타온다구 허던디 뭘 그려.”
“에고 성님. 지집애가 담박질 잘 혀서 뭐시다가 쓴당가유? 죄다 쓰잘데기없는 짓이지. 지 에미는 뙤약볕에 그나마 가르켜볼 것이라구 이 고생을 허는디, 밥 처먹구 허라는 공부는 죽어라 하질 않구 속을 태우는구먼유. 내사 잘은 모르겄지만 지 깜냥에는 올림삐꾸라나 뭐시라나 허는디 그기까장 나갈려구 허는 모양이던디, 뭐시 어떻게 될라구 그러는지 이제는 나두 잘 모르것구먼유.”

말을 마치신 아주머니가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시며 은근 슬쩍 자기 딸 자랑을 한 것 같아 쑥스러우신지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고 웃으시며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참! 그건 그렇구. 그 뭐시냐? 언젠가 얼핏 허는 소리를 들어보닌께 읍내 젓갈 도매 집 허는 조씨 여편네 친정집이 요기 어디쯤이라구 허든디.”

그러자 나무의자에 앉아 차표를 만지작거리시며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말씀을 하셨다.

“아니구먼유. 요기 까치말이 아니구 쪼매 더 가야 되는 채운면이구먼유. 그라구 저랑 하냥 국민학교 댕겼구먼구먼유”

그렇게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시고 계시는데 ‘드르럭’ 나무 문짝을 여는 소리가 나면서 역무원아저씨가 나오셨다. 검표기를 손에 들고 손님들이 내미는 차표를 눌러서 ‘찰칵찰칵’ 소리를 내었다. 출구를 통과한 손님들이라야 겨우 예닐곱 명에 어머니와 나까지 합쳐도 열 명도 않 되어 승객들이 별로 없었다.

플랫폼에 하얀 수증기를 내뿜어 흩트리며,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객차 두 칸에 수화물 칸 한 칸을 합쳐 겨우 세 칸을 꼬리 끝에 매달은 단작스러운 기차가 더욱 허전하게만 보였다. 그리 작달막한 기차에 승객들이 오르자 길이가 짧은 플랫폼 기차의 후미에 서 계시던 역무원이 손에 들고 있던 파란 깃발을 뒤를 돌아보고 있는 기관사를 향해 두서너 차례 가볍게 흔드셨다.

그러자 역무원의 신호에 답을 하듯 ‘뽀오옥뽀오옥’ 기적소리를 텅 빈 역사에 내어지르고 ‘쿵쿵쿵쿵’ 요란스레 소리를 내며 불그레하게 타오르는 노을빛 속에 역구내를 서서히 빠져나와 철제 시그널을 가볍게 뒤로 밀쳐내어 강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막 신설(新設)된 철로라 그런 탓도 있겠지만 기관차가 노후(老朽)되어 동네 앞을 지나가는 호남선 열차만큼 시원스레 속도를 내어달리지도 못했다. 그래도 다리 아프게 걸어가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나는 객차 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 친구 석란이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는데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에 앉았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니 그냥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동네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에 여자들 셋만 모이면 묵직한 산도 들썩거린다고 하시더니 행상으로 몸이 다져지신 분들이라 입심 또한 좋기만 하여 조금 전 대합실에서 나누시던 이야기를 못다 하셨는지 열차 안에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뒤에 어머니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읍내 생선 도매상에서도 입심이 좋아 웬만한 남정네들 뺨을 치신다는 나이가 지긋하신 생선장수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아! 뭐시냐? 들메댁은 조씨네 마누라랑 같은 학교 댕긴 동창이라구 허닌게 아무래두 요목조목 잘 챙겨주것네 그려.”

그러자 창밖을 바라보시며 무엇인가? 생각을 하시던 어머니가 얼굴을 돌리셔 아주머니들을 바라보시고 가볍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디유? 다 지 먹구살기 바쁘다 보닌께 넘 사정 돌아다볼 겨를 있던감유? 그리구 어디 도맷집라구 돈 안 받구 물건 거져 퍼주기라두 허든감유?”

어머니가 말을 끝마치시자 아주머니들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뭐시냐? 그 집두 맨 첨엔 장사에 장자두 몰라서 고생 무지허게 했구먼. 그러닌께 시방 그 한약방 자리 앞 전봇대 있는 디서 큰딸애 등 뒤에다 업구서 두 내외가 비바람 맞으면서 사과 궤짝 몇 개 펼쳐놓구 생선 쪼금씩 떼다 팔았는디, 그 한약방 영감이 냄새가 난다구 그리 치우라구 소락떼기를 질려대며 난리를 떨어대면 그 순진해 터진 애 에미가 파리 모양 두 손바닥을 싹싹 빌며 장사를 했지. 그런저런 눈물겨운 한 세월 넘겨 이제는 고생한 보람으로 내 가게 하나 장만해서 떡 버티구 장사를 허구 있으니 모다덜 보기에 안 좋던감?”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읍내 분토골에 사신다는 아주머니가 말을 거드셨다.

“아이구 성님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그때 당시 나는 재수가 있을라구 그랬나? 전파사 옆 골목길 입구에다 다라이 하나 놓구 서루 맞바라보구 장사를 해서 서로 속맴을 주구받아서 알지만서루, 뭐시냐? 조씨네 두 내외가 그 자리 안 뺏길라구 그 한약방 영감태기에게 남모르게 담배 보루도 설찮케 갖다 바쳤구, 꼴난 영감 비위를 맞출려구 명절 때마다 그 비싼 말린 조기도 두어 두릅씩 갖다줬는디, 난중에 영감이 사람들한테 하는 말이 자기는 절대루 안 받을려구 했다지만 아 조선천지 땅덩어리 아래 공짜루 준다는디 안 받아먹을 놈 있던감유?”
“허긴 아, 그 영감태기 생긴 걸 보라구. 안 그러것는가? 대머리 훌떡 벗겨진데다가 그놈의 안경 한질라 콧등 아래로 내려쓰고 사람 쳐다보는 눈초리를 보라구. 보통이 넘어두 한참 넘게 안 생겼던감?”

말씀을 마치신 아주머니가 큰소리를 내어 웃으시자 어머니도 함께 웃으셔 차내가 조금은 소란스러운 듯싶었다. 그러자 한쪽 자리에 앉아있던 차장아저씨가 설핏 바라보시고 기차는 약간 둥그스름하게 굽어진 길을 따라 채운역사로 진입을 하려했다.

그 무렵 동네 앞을 달려오는 목포로 가는 완행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철교를 지나려 하자 달려오는 기차에게 선로를 양보하려는 듯했다.

그런데 기차가 내리막길로 내려서 달리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는지 ‘타다다당’ 소리를 요란스럽게 내며 느슨했던 객차의 이음새 고리를 바싹 끌어당기느라 객차가 요란스레 흔들려 몸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저절로 앞으로 기울려 하여 객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몸을 추스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이가 드신 아주머니가 걸쭉하신 목소리로 소리를 치셨다.

“오메! 나 죽것네. 어디 싸구려 똥차 아니라구 헐까 봐서 그러는가? 배 창새기가 땡기게 부레끼는 사정없이 잡았쌌구 지랄을 허는지 모르것네 그려.”

불쑥 말을 해놓으시고는 문득 차장아저씨 생각이 났는지 얼른 뒤쪽을 살펴보시며 멋쩍게 실실 웃으셨다.

서로 간에 좌석의 거리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차장아저씨가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을 충분히 들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차장 아저씨가 매일매일 서로 얼굴을 마주치며 사는 체면이 있어 차마 싫은 소리를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저 들은 대꾸도 않으시고 천천히 달려가는 차창 밖을 바라만 보고 계셨다.

남쪽하늘 멀리 국토 최서남단 목포로 향하는 완행열차가의 줄을 이어 늘어선 차창유리에 황금빛 저녁노을을 탐스럽게 받으며 역 구내 입구에 있는 시그널의 신호에 따라 먼저 역사로 진입을 했다.

그제서야 우리들이 타고 있는 기관차가 제 속도를 내며 역사로 진입을 알리려나, 기적을 한차례 큼직하게 울렸다. 그리고 기차가 내뿜는 검은 연기가 노을빛 듬뿍 받고 서 있는 시그널 위로 너울거려 어둠이 서서히 깃들려 하는 저녁 하늘로 흩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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