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글, 사진 등의 저작물에 대한 무단복제를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들메로 가는 길 - 284 조회 : 1,752




광명한 아침 해는 동녘 대둔산 머리에 실로 장엄한 모습으로 떠올라 드넓은 황산벌을 활기 넘치게 내달렸다. 찬연한 햇살은 풍요한 곡창지대를 이루는 논산평야의 첫들머리 채운면 들녘에 희슥하게 떠도는 실안개를 살포시 걷어내 주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들메 마을 옆에 찰싹 붙어있는 있는 원목다리를 사뿐하게 건넜다.
올곧게 쏟아지는 햇살은 온 사방으로 방만하게 펼쳐진 들녘 논배미에 누르스름하게 영글어 가는 벼이삭들을 살갑게 어루만져 주고 다시금 줄달음을 쳤다.
미내다리에 이르러 잠시 숨 고르고 이내 금강둑을 사뿐하게 넘어서 강경 읍내 전역에 고루 내뻗쳤다.

서남쪽으로 뻗어난 소읍(小邑)의 정기를 알맞을 만큼 솟아오른 채운산(彩雲山)이 가슴을 활짝 펴 가로막아 야무지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동북쪽으로 성동면 부람산을 거친 산바람이 어득한 들녘 밑자락에 부는 쌩한 바람과 만나 힘을 더욱 키워 때론 거세게 불어오기도했다.
그러나 강경읍내에 봉긋하게 자릴 잡은 옥녀봉은 듬직한 방패막이가 되어 북풍한설(北風寒雪)에 얼어붙으려 하는 읍내 땅의 온기를 두루 지켜주었다.

그렇듯이 금강평야의 중심을 이루는 강경(江景)은 자연의 사랑을 듬뿍 받아 은혜가 충만한 고장이었다.
읍내 남녀 중고등학교가 여름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하여 모처럼만에 거리가 활기차게 보였다. 읍내 외곽 서쪽으로 외떨어져 있는 우리 학교는 규모가 제법 컸지만 읍내로 부터 멀리 동떨어져 있어 다소 호젓하게 보였다.

학교로 향하는 신작로엔 자동차들의 소음과 매연 속에 솟아오르는 뿌연 흙먼지가 시야를 잔뜩 흐려 놓았다. 행여 눈에 모래라도 들어갈까 싶어 길가로 바짝 비켜서 등 돌려 덜컹대는 자동차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길가엔 철이 조금은 이른 듯싶게 듬성듬성 피어난 코스모스가 가녀린 몸짓으로 한들거렸다. 오롯하게 떠오른 아침 해는 선명하게 보이는만큼이나 후덥지근한 열기를 욕심껏 몰고 와 미간(眉間)을 잔뜩 찌푸리게 했다.

‘쐐애앵, 쐐애앵’
대로변에서 움푹 들어간 골목길 끝머리에 있는 제재소에서 통나무를 켜는 듯 날카로운 쇠톱 소리가 들려와 늘쩡거리는 늦더위를 더욱 부추겼다. 길가 자전거포에는 개학으로 자전거를 수리하러 오는 학생들로 여법 붐벼 모처럼만에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목에 수건을 두르신 주인아저씨는 장사가 잘 되어 기분이 좋으신지 두어 군데 기름때가 묻어난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학교 앞 널따란 연못엔 여름의 전령사 개구리밥과 노란머리연꽃, 그리고 물달개비 꽃과 벗풀 등의 수생식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차 있었다. 잘름잘름한 물결 위로 납작납작 엎딘 물옥잠을 빼놓고 저마다 뾰조롬하게 푸른 목을 내밀어 짜증스런 늦여름 날씨에 생기를 넉넉하게 불어넣는 듯했다.

그리고 쑥돌(화강암)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육중한 교문이 눈에 박힐 정도로 보아왔던 탓인지 그리 새삼스럽게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여름 방학 동안 보지 못했던 교우들의 잘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서 힘찬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느낌들이 이곳이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일궈내는 배움의 터임을 다시금 절감케 했다.

교무실로 향하는 비교적 폭이 넓은 통로에는 멀리 대전에 있는 체육사에서 새로 구입해왔다고 하는 페인트 냄새가 성큼하게 묻어나는 탁구대 몇 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원래 탁구를 쳐본 일이 없어 탁구대가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학교 안에 그런 새로운 운동기구가 설치되면 으레 3학년 상급생들이 그들만의 전유물인 양 독차지했다. 나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들에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켜 서서히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저마다 교문을 들어설 때부터 운동장에 볼썽사납게 자라난 잡초들을 보고 제초작업을 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측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인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의 판에 박힌 듯 지루한 훈시가 끝나자 반질반질하게 질이 잘 난 대나무 뿌리를 들고 다니시는 ‘짜리몽땅’ 학생과장 선생님이 큰소리로 각 학급별로 제초작업을 할당하셨다.

그런데 ‘짜리몽땅’이란 별명이 붙여진 사연은 대략 이러했다.

교내 선생님들 중에서 유난스레 키가 제일 작으면서도 맡으신 직책이 그렇다 보니 우리들에게 표독(慓毒)스럽게 대하셔 이미 학교 선배들이 그렇게 불러왔다. ‘소리치는 원님보다 앞에서 촐싹대는 이방이 더 밉더라.’고 실업선생님이 가만히 계셔도 될 일을 제초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성가시게 참견을 하시며 부산을 떨고 다니셨다. 그런 밉살맞은 실업선생님 모습에 우리들은 선생님 눈에 띄지 않게 머리를 숙여 키득거리며 서로 뒤질 새라 흉을 보고 있었다.

천여 명에 육박하는 수많은 전교생들이 널따란 운동장을 가득 메워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뽑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마치 해거름 녘 마을 앞산 소나무에 수없이 몰려와 새하얗게 내려앉는 두루미 무리처럼 보였다. 연박하게 보이시는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풀을 뽑고 있는 우리들 사이를 고루 도시며 한동안 보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고 계셨다.

그렇게 개학 첫날은 학교 운동장 제초작업과 교실 청소로 오전 수업을 충당했다.

저마다 나름대로는 개학 첫날이라고 신경을 써 하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등교했다. 하지만 등굣길에 뿌연 흙먼지로 윗저고리 목둘레 부분이 거무스름하게 때가 묻어나 있었다. 그리고 운동장 잡초제거와 교실청소를 하다 보니 하복바지는 흙과 풀물이 군데군데 묻어났고 손바닥에는 푸릇푸릇하게 풀물이 들었다.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는 제초작업이 그리 싫지 않았던 것은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애교심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군내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학교의 학생이 되었다는 나름대로의 자긍심 때문이었다.

한낮 늦더위는 가만히 서있기만 하여도 얼굴은 물론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속에 입고 있는 러닝셔츠가 등짝에 달라붙으려 하는 쨍쨍한 정오 무렵 성구와 나는 교문을 벗어나 시내 쪽으로 향했다. 눈 안에 가득 차오는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늡늡한 도시의 전경이 걸어가는 발걸음에 맞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늘 그래왔듯이 세월은 숱한 변화를 추구하려고 지난 시간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을 너무 쉽게 지우려고만 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고연하게 남아 있는 옛것들에 대한 의미를 느껴볼 겨를도 주질 않았다.그저 오로지 생소하게 다가서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상세한 의미 파악도 못한 체 낯선 새시대의 범주 안으로 거침없이 끌고 가려고만 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 하류 들녘에 오붓하게 자리한 작은 도시 강경(江景)은 내포평야의 중심지로 자릴 잡아 농산물이 풍부하고 서해 바다에서 나는 풍족한 해산물이 중심축을 이뤄 상업이 활달한 비교적 작은 읍소재지였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한때나마 외형상으로는 도시의 형태가 상업 거점도시로써 이름이 전국에 잘 알려질 정도로 융성했었다

그런 변모의 과정을 이루는 동안 우리들의 선조들은 그 대가를 참으로 록독하게 치뤘다.또 다른 이면엔 힘없는 민초들이 실로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일본인들로부터 유형무형으로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악랄하게 착취를 당하며 살아왔었다. 이는 민족사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부끄럽기만 한 치욕의 역사 였다.그런 탁류가 평화롭기만 한 은혜로운 이 고장 강경을 무참하게 휩쓸고 지나갔다.

가슴 가슴마다 피멍으로 얼룩진 통한의 아픔들이 그 시대를 살았던 선인들의 몸에 뼛속 깊이 배었건만 저마다 해방의 기쁨에 온통 들뜬 나머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었다. 암울한 한 시대의 늪에서 벗어나 조국 광복에 기쁨을 느끼려 할 즈음 전혀 예기치 못한 천인공노할 공산주의자들의 불법침략으로 전쟁의 화마에 찢기고 할퀴어 수많은 것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이제 겨우 추스르려 발버둥 치던 그리 안타깝기 더할 나위 없는 암울한 시기였다. 더불어 소리 없이 우리네 생활 속으로 거침새 없이 스며드는 개화의 바람이 작은 소도시에도 어김없이 불어와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여파로 도심의 군데군데에 생경한 모습의 새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수난의 때가 얼룩진 붉은 벽돌로 지어진 관공서 건물과 초라하게 쇠퇴해져가는 전산가옥 건물들이 신문명의 부산물인 건물들과 한데 어울려 어설프게나마 도시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작은 소도시가 아침저녁으로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자못 생기롭게도 보였다. 하지만 짜증스런 한낮 더위 탓인지 도시 균형에 걸맞지 않게 어쩌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보일 뿐 썰렁하게 텅 빈 도로는 한산하다 못해 사뭇 쓸쓸해 보였다.

그리도 한가롭게만 보이는 도심 한복판 청잣빛을 그리도 잘 빼어 닮은 하늘엔 새하얀 목화솜처럼 양껏 부풀어 오른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런 도심의 고요를 깨려는 듯 강경역을 무정차로 통과하는 화물열차가 북상을 하느라 기적소리를 크고 작은 건물에 맞부딪쳐 날카롭게 들려왔다.

신작로 위엔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자전거의 행렬이 긴 꼬리를 도심을 향해 잇고 있었다. 길가 양쪽으로 늘어선 논배미에 다붓하게 고개 숙여 익어가는 벼이삭을 바라보니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길섶 따라 선명한 색조로 피어나는 코스모스 향기가 습기에 잔뜩 젖은 흙냄새와 어우러져 콧속으로 상큼하게 스며들어 들었다. 그 신선한 내음이 한낮 더위에 찡그려지는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띠게 했다.

황산동 나루터로 접어드는 골목 입구에 닿아 곧장 버스정류장으로 갈까 아니면 성구네 집에 가서 조금 더 놀다 갈까하는 생각에 주춤거리는 나를 향해 성구가 말을 건넸다.

“상민아 모처럼만에 만났는디 그냥 헤어질랑께 기분이 좀 서운허다 너는 안그러냐? 방학 동안 너랑 떨어져 있을 때는 너랑 만나기만 허면 할 말이 무진장 많을 거 같았는디, 막상 만나구 보닌께 바보 멍충이처럼 너헌티 할라구 했던 말을 다 까먹어번졌다. 그런디 니가 장날에는 니네 엄니허구 읍내루 장보러 나올까 싶어 혹시라두 널 만날까 해서, 몇 번 장터를 돌아 댕겨봤는디 니가 읍내에 한번두 안 나와서 그랬는가 볼 수가 읍더라. 나는 그래두 니가 나오면 시원한 아이스깨끼라두 사줄라구 했는디.”

격 없이 웃는 성구의 얼굴에서 무엇이라 표현키 어려운 뜨거운 감정이 온몸으로 번져 내가 먼저 환하게 웃고 있는 성구의 팔목을 덥석 잡아 끌어당겼다.

가뜩이나 느슨한 전깃줄이 한낮 더위에 더욱 축 늘어지게 보이는 신작로를 걸었다. 그리 우리 집에 놀려오고 싶어 했던 성구의 청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스러움에 마음 한편으로는 무거운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성구는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나에게 다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성구에게 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기는커녕 그 잘나터진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숨기려고만 하였으니 진실하지 못한 내 행동에 죄책감을 크게 느끼며 걷고 있었다.

작은 철도관사는 언제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정감 속에 물씬 묻어나는 비릿한 석탄 냄새도 그다지 싫지만은 않았다.

역사 입구 철제 신호등 위에는 누가 심술궂게 빗자루로 쓸어놓은 것처럼 얇게 흐트러진 구름 두서너 겹이 나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가로수 그늘 밑에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철도원 성구 아버지의 모습에서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근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화창했던 봄날 성구와 함께 사온 염소란 놈도 보지 못한 사이 제법 듬직하게 자랐다. 귀염성스런 모습에 풀을 뜯고 있는 철로 변에 가까이 다가섰다. 그런데 방학 동안의 헤어짐 속에 기억에서 지워졌는지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이 썩 달갑지 않은 듯 매우 서먹한 눈빛으로 슬슬 경계를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염소란 놈이 조금은 가파르게 경사진 철둑에서 느슨하게 늘어진 기다란 줄을 끌어당기며 펑퍼짐한 땅 아래로 내려섰다.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풀을 뜯어 연신 우물거리던 턱의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유난스레 툭 튀어나온 두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여차하면 구부러진 두 뿔로 공격할 듯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으로 불과 한 달 정도의 헤어짐이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려는 애틋한 우정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것 하나라도 살뜰하게 챙겨주고 싶은 것 같았다.

관사에 도착하자마자 성구가 봉창을 뒤덮을 것처럼 추녀 끝을 타고 오르는 포도나무에서 아직은 덜 익어 포도송이 군데군데에 푸른빛이 보이는 시크름한 맛이 나는 포도를 두어 송이 따서 선뜻 건넸다.

한낮 해가 철도관사의 검정 기와지붕 위를 지나 서편 금강 하구 쪽을 향해 비켜서자 그토록 야무지던 한낮 더위가 한풀 꺾인 듯 몸이 가뿐해지는 것 같았다.

“야, 상민아! 참말루 더워 죽것는디 우리 소화다리 금강당에 아이스케키나 먹으러 가자. 얼른 일어서라.”

그렇게 말을 하면서 성구가 자랑이나 하듯 바지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돈을 얼핏 내보이며 자꾸만 서둘렀다. 아무리 흉허물 없는 친구지간이라도 나는 성구에게 아무 것도 못해 주면서 자꾸만 얻어먹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러워 몇 차례나 거절을 했다. 그런 내 태도를 아랑곳하질 않고 막무가내로 내 책가방과 도복을 챙겨 들고 나보다 먼저 방문을 나서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시내 중심부를 가로질러 소화다리 앞에 있는 빙과점에 도착하여 ‘덜컹덜컹’ 빙과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오는 빙과점 안으로 들어갔다. 성구와 나는 사각 나무탁자를 사이에 두고 빡빡머리를 마주한 채 차가운 허연 김이 서리는 빙과를 먹었다. 그때는 어찌 그리 차디찬 빙과도 빨리 잘 먹었는지 납작한 대바구니 안에 적지 않게 담겨 있는 빙과를 잽싸게 먹어 텅 빈 대바구니만 남겨 놓았다.

얼마 후 서늘키만 한 금강당 빙과점에서 밖으로 나오니 다시금 오후 늦더위가 반질반질해진 메마른 도로를 양껏 달궈 땅에서 솟아오르는 열기로 다시금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차디찬 빙과를 먹은 탓으로 조금은 기분 좋을 만큼 얼얼하게 찬기가 남아 있던 입 안이 주변의 열기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금 텁텁해졌다.

길가에 들붙어 있는 논바닥에 흙을 돋아 새로 지은 이층 건물 은성극장 앞을 지나 황산동 사거리에 닿았다.

성구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도복을 바짝 치켜들며 자기네 당수도 도장에 가서 운동하는 것 구경도 하고 더 놀다 막차를 타고 가라며 자꾸만 졸라댔다. 그러나 더 이상 성구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집에 가서 저녁나절에 꼭 해야 될 일이 있다고 에둘러대자 성구가 하는 수없이 서운한 눈빛으로 그런 내일 만자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자 성구는 도장으로 가는 좁다란 골목길로 들어섰고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덜덜거리는 고물 선풍기 하나 없는 대합실은 허름한 시설만큼이나 찌든 담배냄새와 땀에 젖은 시큼한 냄새가 뒤엉켜 더없이 늘쩍지근하게 보였다. 그래도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진 곳에 딱딱한 나무의자라도 편히 앉을 수 있어 각자의 행선지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두서너 명씩 띄엄띄엄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소 서늘한 느낌만큼 쾌쾌한 냄새가 조금씩 번져나는 대합실 안으로 들어서자 매표소 앞에 놓인 기다란 나무의자에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 한 분이 장죽을 입에서 떼시며 말씀하셨다.

“아! 입추 지난 지가 설차니 됐구 낼모레가 백로인디, 뭔 놈에 날씨가 사람을 이리 들볶아 대는지 모르것구먼 그려!”

노인분이 짜증스런 얼굴로 혀끝을 차시자 아마도 행선지가 같아 한동네에 사시는 것 같은 아저씨가 그늘진 대합실 안이라도 후덥지근한지 밀짚모자를 벗어들고 연신 얼굴에 대고 부치시면서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 글쎄! 날이 어지간히 더워야지유. 암튼 사람들이사 등짝에 허물 벗어지게 들볶일지라두 어찌됐던 간에 금년 벼농사는 틀림없는 풍년인 거 같네유. 이리 푹푹 삶아대니 논배미 나락 모가지는 탱글탱글 잘 익어가긋지유 뭐.”

방금 전 노인께서 하신 말씀에 서둘러 말을 이으시자 역시나 같은 일행인 듯 보이는 체구가 작달막한 아저씨 한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으셨다.

“아, 풍년이 들어본들 뭣 헐 것이여! 땅 섬지기나 지니고 내놓으라 허구 사는 집들은 몰러두, 지지리 복두 읍는 우리네처럼 넘네 땅에 소작 붙여먹고 사는 우리들에게는 말짱 소용없는 일인디 뭐. 일 년 내 그 뙤약볕에 허리 부러지게 엎드려 얄궂은 보리밥 한 덩이 먹은 거 징그럽게 양쪽 종아리에 달라붙는 거머리란 놈 좋은 일 시키구. 한 해가 다가도록 입에 단내 나게 고생해서 가을 바심 해본들, 그 잘나 터진 땅주인허구 반타작하고 남은 디서 종자 값 빼구 봄에 모낼 때 사람 불러다 쓴 품삯 제하구 비료 값에 농약 값 빼구 나면 겨우 쌀 몇 바가지 남으니, 죽어라 농사랍시구 져봐야 있는 놈 좋은 일 시키는 거지 읍시 사는 놈은 지아무리 용을 써봤자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지 뭐. 에이구 썩을 놈에 세상 언제나 허리 한번 쫙 피구 살랑가 모르것네 휴우!”

그동안 속에 담고 있던 소리를 한바탕 시원스레 하시고 나서 그런지 아니면 소변이라도 보시려고 공중화장실로 가시려는지 대합실을 벗어나셨다.

다른 동네에 비해 유난스레 소작농이 많은 동네에서 그동안 동네 어른들의 탄식소리를 누누이 들어온 터라 방금 전 그분이 하신 말씀이 그리 생소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그냥 모른 채 하며 두 귀로 듣고 넘길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기에 기분이 씁쓰름하기만 했다.

논산 읍내를 출발하여 채운면 들 주막을 거쳐 종점인 강경읍내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온 버스가 잠시 숨을 돌려 다시금 왔던 길을 되돌려 논산읍내로 향하려고 ‘부릉부릉!’ 엔진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버스에 올라 그늘이 드리워진 차창 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 후 버스는 몸을 가볍게 기우뚱거리며 읍내 버스정류장을 빠져나와 길 양쪽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를 서서히 뒤로 밀치며 도심을 홀가분하게 벗어났다.

낡아빠진 시골버스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털털거리던 버스가 읍내외곽으로 벗어나려고 금강 개어귀로 흘러들어가는 샛강 콘크리트 수문 다리 위에 오르자 차창 밖으로 내보이는 샛강 물은 금강과 합류를 하려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끝없이 드넓은 저 들녘이 은혜롭게만 바라보이는데 그 은혜의 틈새에 어울릴 기회마저도 잃어버린 허전함이 마음 가득하게 차올랐다. 그런 저런 복잡한 생각에 들녘 한곳에 호젓하게 자리 잡은 고향마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버스는 면소재지 들 주막에 닿아 홀가분하게 차에서 내렸다.

맑은 하늘이 자혜롭게 품에 안고 있는 마을 앞산이 손끝에 곧 닿을 것처럼 상큼하게 다가서 버릇처럼 바라보았다. 장구한 세월을 과묵하게 버텨온 저 산은 겉으로 보기엔 우직하게 보일지라도 단 한 점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작은 내 가슴속 깊이 실로 형언키 어려운 뭉클한 감동을 늘 주었다. 그리 소중하게 얻어진 감동은 주위에 처해진 각박한 환경의 영향으로 점점 고갈되어가는 내 삶의 메마른 정서에 신선한 물꼬를 터주는 기폭이 되었다.

질서정연한 자연의 섭리 따라 푸른 이끼 가득 낀 어웅한 돌 틈 사이 피어난 작은 야생화도 제 나름대로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또한 이름 모를 작은 뭇 새들도 저마다의 소리를 제가끔 내며 살아가는데 나와 옥순이는 언제나 마음속 깊이 담겨 있는 소리를 제대로 내지도 못한 채 실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 이유가 절대적 빈곤에서 오는 소외감 내지 허탈감만은 아니었으니 그런 암담한 환경을 원천적으로 부여해준 그 시대를 막연하게나마 탓할 수밖에 없었다.

사계(四季)의 변화 속에 산자락은 거짓 없는 자세로 늘 살갑게 다가섰다. 연초록 신록의 파릇파릇함이 온통 번져나는 봄이 되면 늘 산보다 먼저 내 마음이 가볍게 들뜨기 시작했다.
그런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멀리까지 은은하게 풍기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초여름의 입목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짙다 못해 검푸르게 보이는 녹음이 절정을 이루어 온 산자락이 반질거리면 세월은 한 해의 절반인 6월의 문턱을 넘어섰다.
그리고 나른함을 동반하는 여름 장맛비 내리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여름 무더위가 전신을 더욱 뜨겁게 달궈 온통 짜증이 났다. 잔뜩 달아올랐던 대지를 식혀 주려는 듯 서늘바람이 계절의 틈새를 소리 없이 비집고 찾아들면, 길고 지루한 여름 홍역을 치루고 난 산자락에 슬금슬금 가을빛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후 9월로 들어서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서늘해지면 한여름 열기로 마냥 지쳤던 심신을 차분히 가라앉게 했다.

눈앞에 내 사는 작은 마을 모습이 가직하게 내려다보이는 서낭당 고갯마루에 올랐다. 그런데 아침나절 그리도 소란하게 우짖던 까치는 오간 데 없었다. 그와 더불어 낮 동안 나무 등을 그리 바지런히 오르내리던 다람쥐도 보이질 않아, 무릇 한산하게만 보여 고즈넉했다.

그 어느 것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고 산과 들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산바람이 마냥 부러워 산 밑으로 눈을 돌려 보았다. 잘 익은 홍시처럼 불그레하게 물들여진 낙조가 어느새 산봉우리에 슬그머니 자릴 잡아 어둠이 깔리는 오솔길에 오가는 사람 하나 없어 더욱 허전해 보였다.
저녁연기 희뿌옇게 피어오르는 마을로부터 외떨어져 있는 산기슭에 저녁연기 희뿌옇게 피어오르는 작은 초가집의 조촐한 모습이 살갑기만 했다. 그리고 어느새 찾아든 어둠살이 주춤대는 등을 슬며시 떠밀어 삶에 찌든 가난 또한 슬픈 만족으로 치부하고 실타래처럼 늘어진 밋밋한 오솔길을 내려 걸었다.
목록으로

 

Copyrigt By 들메로 가는 길 All right reserved.
Webpage Administrator dooris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