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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87 조회 : 1,978




국토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태백산맥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차령산맥은 국토의 서남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렸다. 그 끝자락 부분에 곡창지대인 논산평야가 드넓게 자릴 잡고 있었다.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광활하고 기름진 옥토에 예부터 사람들이 제가끔 삶의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지형의 형세에 따라 적당한 지근거리를 두고 크고 작은 마을을 아담스럽게 이뤘다. 더불어 조상들로 부터 내려 받은 농사 짖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비록 간고한 삶일지라도 자손 대대로 오손도손하게 살았다.

드넓기만 한 들녘 한 곳에 내 사는 작은 마을은 햇살이 올곧게 찾아드는 정남쪽에 소담스레 자릴 잡고 있었다. 그런 마을 모습이 들꽃처럼 아름답다 하여 마을 이름을 들메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 모두는 마을 이름만큼이나 심성이 순박하기 이를 데 없어 서로 정겹게 감싸 안으려 했다. 그런 후덕함은 때론 가슴 뭉클한 설렘도 주고받았다.

허나 그 중에는 옥에 티처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도 더러는 끼어 있었다. 사상과 이념에 대한 정석도 모르는 순박한 그들은 동족상잔의 전쟁 속에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휩쓸려 그들의 앞잡이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빚어진 그들의 만행은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마을사람들에게 모질게 남겼다. 그로 인해 천추의 한을 남긴 뼛속 깊은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도 못한 채 그저 세월의 흐름에 묻혀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혼란스런 역사의 격동기에 내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의 힘으로 잘 자라 이렇게 내 육신이 버티고 있으니 다시금 머릴 숙여 감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삶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티끌 같은 깨달음이 서서히 몸에 와 닿았다.

마을엔 다른 집성촌과는 달리 같은 성씨를 지니고 사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각기 성씨가 다른 사람들이 들메 땅에 발을 붙여 살았다. 그런 탓에 우리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삶의 외로운 이방인들이었다.

그렇기에 서로 의지하고 타협하며 살아가야 하거늘 저마다의 실리를 쫓아 서로 아옹대며 사는지 내 어린 나이엔 실로 간파(看破)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무리 속에 한데 어울려 살아가야할 나는 이 길이 내가 진정 바랐던 길이 아니었기에 너무나 힘들게 살아온 날들이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삶의 내면 깊숙이 옹골지게 자릴 잡고 있는 가난의 아픔을 밖으로 쉽사리 드러내지도 못했다. 또 지극히 불투명한 앞날을 예측하기도 어려워 어찌 보면 살아나갈 길이 참으로 아득하기만 했다. 더불어 내가 간절하게 추구하는 삶이 냉엄한 현실의 높은 벽을 넘질 못했다. 여실히 느껴지는 삶의 거리감에 그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럴 때마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은 늘 뇌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계절의 흐름 따라 겨울 초입으로 들어서는 하늘은 더없이 높고 창백하게만 보였다.
이른 아침 산모롱이를 도는 바람에 코끝을 스치는 들국화의 향이 마냥 상큼하게 느껴졌다. 새 아침의 장을 여는 아침 공기가 조금은 싸늘하면서도 폐 속 깊이 스며드는 신선함이 있어 무릇 상쾌하기만 했다.

늦가을 날씨답게 산마루턱을 내려선 찬바람이 냇가에 짙은 물안개를 잔뜩 안겨 시야를 흐려놓았다. 동구 밖 원목다리 너머 들녘을 비켜서는 안개 틈사이로 크고 작은 읍내 건물들과 상업고등학교 언덕 위에 팽나무가 모처럼만에 산뜻한 모습으로 눈앞에 소롯하게 와 닿았다.

저마다 잔뜩 들떠 있던 추석 명절이 지난지도 보름 가까이 되어 마을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들녘 논에선 가을걷이로 벼를 베고 밭에선 곡식을 걷어드리느라 저마다 여념이 없었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온 식구들이 달려들어도 모자랐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말 못하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추의 빛이 짙게 묻어나는 산마루에서부터 시작한 단풍은 어느 참에 산기슭까지 내려와 온 산자락을 불그레하게 휘감았다. 쉽사리 식상해 지는 짙은 빨간 단풍나무 보다는 그저 수더분하게 물드는 갈참나무와 싸리나무 잎사귀가 바라보기에 부담이 없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동네 방앗간에서 자발스럽게 쿵쿵거리며 돌아가는 발동기 소리와 더불어 온 동네가 풍성한 가을 분위기에 한껏 들뜨기 시작했다. 더불어 마을 군데군데에 탈곡을 끝낸 볏짚더미가 성루(城樓)처럼 높다랗게 쌓여 바라만 보아도 풍만함이 절로 넘쳐났다.

그러나 더없이 가난한 내 입장에서는 그런 풍성함이 신으로부터 선택된 그들만의 몫인 양 커다란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덧없는 세월이 벌써 십일월 초입으로 치달으니 이제 한해도 두 달여밖에 남질 않았다. 가늠키 어려운 가파른 미래를 향해 그렇게 또 한 해가 묵묵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는 들녘에 나가 저마다 씨앗을 뿌려 일 년 내 피땀 흘려 가꾼 곡식을 모두 거둬들여 포만감에 잔뜩 차 있었다. 허나 그 넓은 들녘에 땅 한 평 없는 내 처지는 그런 풍요로움으로부터 더욱 멀리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서릿발이 여법 굵어지니 옥순이 어머니와 종구 아버지가 부부의 연을 맺는 재혼날짜가 목전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러나 옥순이는 그런 늦가을이 그리 달갑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 탓이었던지 가뜩이나 작은 옥순이 얼굴의 입언저리가 군데군데 부어올라 물집 잡힌 모습이 수심이 더없이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그런 모습에 휑한 마음은 마치 길바닥에 버려진 막돌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해 버릇처럼 앞산에 오르려 집을 나섰다.

좀처럼 속심을 드러내질 않는 저 산의 깊은 의미를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늘 달갑게 맞이하는 미덕이 있어 스스럼없이 산을 찾았고 또다시 그 산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려 했다.

이른 아침부터 칙칙하게 내려앉은 안개는 잦은 바람에도 그다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잠이 없는 기현이 할아버지는 밭은기침을 심하게 하시며 아침 일찍부터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한곳으로 끌어 모아 태우고 계셨다. 낙엽 타는 냄새가 온 사방으로 구수하게 퍼져났다. 그리고 냉기를 가득 담은 촉촉한 이슬을 밟으며 걷는 좁다란 밭두렁에는 쌓아둔 들깻대 더미에서 고소한 냄새가 심심찮게 풍겼다. 더불어 제철을 비켜서려는 들국화 무리에서도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났다. 무릇 그 모든 냄새들은 알찬 결실에서 얻어지는 농숙한 가을의 모습 그 자체였다.

거듭되는 일상 속에서 이따금씩 서투른 쓸쓸함이 감당키 어려운 한 덩이 외로움을 낳았다. 이미 내 마음속엔 돌돌 뭉쳐 자릴 잡고 있는 내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무덤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그 어디쯤에 잠들어 있는 내 누이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끝없이 밀려왔다. 이따금씩 솔바람 소리만이 고요를 깨는 고적한 산골짜기에서 더없이 열약하게 살아가는 내 작은 몸뚱이는 그렇게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소해질지라도 굳건히 버티려했다.

언제나 칠흑 같은 어둠 너머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첫새벽 닭울음소리를 마음 편히 들을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진정 행복할 것 같아 삶의 작은 굴레가 고맙다 못해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쉽사리 떨구지도 못하는 가난의 굴레 속에 삶이 마냥 힘들지라도 언젠가는 연초록빛 소롯한 희망의 싹이 움트리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혹한의 날들을 참고 견디다보면 아픔의 시련 속에서도 봄의 생동이 깃들 것이라 믿었다.

회색빛 움츠림이 있었기에 봄날의 훈풍이 언 가지를 깨워 여린 움을 틔워 눈부시게 푸른 날을 이루어 놓듯이 자연의 순리 따라 순응하며 나름대로의 꿈을 가져 보았다. 희부연 물안개 낀 이른 아침 흐릿한 회색빛 하늘위에 포물선을 그리며 어디론가 날아가는 산새들의 향방을 쫓으며 그렇게라도 마음을 다잡아 가누려했다. 그런데 멋대가리 없이 키만 멀쑥하게 큰 미루나무의 가지 위에 아침나절부터 소갈머리 없이 울어만 대는 까치가 괜스레 얄밉게만 보였다.

언덕바지에 올라 숨을 돌린 후 산 밑을 내려다보았다.

마을엔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 초근목피(草根木皮)로라도 억척스레 삶을 이어온 조상님들의 한 서린 숨결이 담겨져 있었다. 초가집 지붕들은 그 아픈 흔적을 등 언저리에 잔뜩 인 채 다보록하게 머릴 맞대고 있었다. 그리고 산기슭 아래로 펼쳐지는 금강줄기의 물은 의연하게 흘러 생명을 이어주는 젖줄 노릇을 언제나 충실하게 했다.

‘금강에 살으리랐다. 금강에 살으리랐다. 운무 데리고 금강에 살으리랐다. 홍진에 썩은 명리야 아는 체나 하리요. 이 몸이 시어진 뒤에 혼이 정녕 있을 진대, 혼이나마 길이길이 금강에 살으리랐다.’

자욱하게 내려 갈린 그 물안개 속에서 어느 선인(先人)이 불렀을 노랫소리가 귓가에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날이 차가워짐에 아침안개는 오전 내내 동안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그나마 한낮이 되어야만 햇살이 넉넉하게 퍼져 멀리 바라보는 시야가 환해지기 시작했다. 갈참나무 잎사귀에 내려앉았던 눅눅한 물안개가 방울져 머리위에 떨어졌다.

산 너머 우묵골 가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골짜기에는 붉고 노란 단풍이 화사하게 물들어 곱기만 하고 골짝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는 더욱 청량하게 들려왔다. 마을을 둥그스름하게 감싸고 흐르는 잔잔한 강물에 젖빛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점차 날이 추워지자 행동반경이 좁아진 송사리 떼들이 더욱 맑아진 개울물에 떼를 지어 놀고 물풀들이 하느작거리는 모습이 시원스레 들여다보였다.

그맘때쯤이면 해마다 멀리 북쪽에서 날아와 살갑게 앞 들녘 개어귀에 내려앉는 청둥오리는 날이 갈수록 그 개체 수가 늘어났다. 새까맣게 떼를 지어 군무를 이루니 바라보기에 그 모습이 웅장했다. 더더욱 해질녘 불그레하게 타오르는 노을빛에 떼 지어 나는 모습은 가슴이 벅차올라 말로다 표현 못할 정도의 몽환적(夢幻的)인 장관이었다.

그리고 샛강 갈대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늪에서 ‘구욱구욱’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잔잔히 퍼져났다. 어쩌다 사람이라도 그 근처에 다가서려하면 자맥질을 하다 화들짝 놀라 두 날개가 떨어져나갈 듯 물장구를 치고 나서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

지루하리만큼 좀처럼 변화를 모르는 골짜기에 그렇게라도 눈요깃거리가 하나 생겼다. 요 며칠 전 면소재지로 이어지는 개울가에 섶다리가 하나 간조롬하게 놓였다.

푸릇푸릇한 생솔가지를 아무렇게나 꺾어 얼기설기 엮어 놓았다. 채 마르지도 못한 생 솔잎에서송진 냄새가 지긋하게 풍겨났다.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 덮어 놓은 황토가 아직은 덜 다져져 푸석한 흙냄새가 콧속으로 산뜻하게 스며들었다.

막말로 한여름 장마 때 물살에 그냥 떠내려가도 아무런 부담이 없을 만큼 임시적으로 만들어 조금은 허접하게 보이는 작은 다리였다.

여름에는 격 없이 아랫도리에 걸친 바지를 무릎까지 훌훌 걷어 올려 두 손에 신발을 거머쥐고 맨발로 시냇물을 건넜다. 그러나 겨울 들어 시냇물이 차가워지자 발이 깨어질듯 시려와 섶다리를 놓아 건너야만 했다. 우선 다리를 건너는 데는 새로 놓인 섶다리가 편할는지는 몰라도 그래도 홀가분하게 마음이 닿는 것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듬성듬성 돌덩이가 놓였던 징검다리가 더욱 친근감이 갔다. 이는 각박한 삶 속에 서두름을 멈춰 차분하게 살아갔던 선조들의 느긋한 흔적이 담겨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리 폭이 좁다보니 겁이 많은 황소가 덩치 값도 못하고 겁이 나는지 멀쩡한 섶다리 길 위로 오르려하질 않고 버티었다. 그러자 촌부는 몇 차례 어여 가자고 고삐를 잡아끌어 ‘워워’하며 애꿎게 소리만 질러댔다. 무던히도 버티는 황소란 놈 고집에 촌부가 하는 수 없이 바짝 거머쥐었던 줄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말았다. 그러자 억세 터진 황소는 기다렸다는 듯이 ‘툼벙툼벙’ 물방울을 가볍게 튕기며 물로 뛰어들었다. 제 딴에는 예법 서두는 양 물을 건너고 좁은 섶다리 위에는 촌부가 바지게를 어깨에 걸머지시고 곰방대에서 뿜어 나오는 담배연기를 흩트리시며 말을 했다.

“그놈 참! 고집 한번 세네 그려.”

이른 아침 부지런한 촌부의 손에 이끌려 냇가에 매어 놓인 검은 염소의 울음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둔덕머리에 머리칼이 새하얗게 센 억새는 가볍게 부는 바람의 부대낌에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알맞게 일렁이었다. 격하게 불어대는 바람에도 동요치 않고 적당히 넘길 줄 아는 것 같아 아마도 세월의 연륜이 묻어난 지혜인 것 같았다.

뒤뜰의 늙은 소나무도 밑자락에 묵은 잎을 수북이 떨구었다. 아궁이에 넣어 불쏘시개로는 제격이라 요긴하게 쓰려고 갈퀴로 알뜰하게 긁어모아 부엌 나뭇간 한 편에 잘 쌓아 두었다. 그리고 한낮에는 햇살이 온후하리만큼 따스하다가도 해가 떨어져 밤이 되면 기온이 쭉 내려가 싸늘해졌다. 그런 탓에 새벽이면 무 배추 잎에 하얗게 무서리가 내려앉고 앞마당 오목하게 파인 물구덩이에는 살얼음이 얼 듯 말듯 했다.

그리 알뜰하게 텅 비워진 밭에 김장을 앞두고 양껏 자란 무와 풍성하게 알이 꽉 차오른 배추를 바라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느긋하게 든든해졌다.

산을 내려서 집에 닿아 쪽마루에 걸터앉았다.
동쪽머리 먼 산을 바라보니 되새김질을 하듯 다시금 찾아드는 까닭 모를 외로움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침저녁으로 낮아지는 기온에 하늘은 점점 더 맑아 청명하다 못해 옅은 잿빛을 보기 좋을 만큼 띄웠다.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의 소나무는 더욱 검푸르게 보였다. 눈 밑을 파고드는 따스한 햇살은 찬연하고 영롱한 색채로 이 세상 그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빛을 발했다.

한여름 내 그리도 지긋지긋하게만 하던 햇살이 싸늘한 기온에 움츠려드는 몸에 따스함을 살갑게 느끼게 했다. 자연스레 햇볕이 잘 내리쪼이는 양지바른 곳이 그리워지니 참으로 변덕스러운 것이 인간의 심성인 듯싶었다.

그리고 부엌에서는 순덕이 어머니가 청국장을 끓이시는지? 냄새가 온 마당으로 구수하게 퍼져나고 있었다.

밤사이 시들하던 무나 배추는 아침햇살이 쪼이면 다시 싱싱하게 되살아나지만 밭에는 김장을 위한 무배추만 남고 모두 비워지니 또 한 해의 농사가 마무리되어 긴긴 겨울을 날 준비만 남은 듯했다. 텃밭에 어머니가 재를 섞어 겨울 상추와 시금치 씨앗을 뿌리고 두툼하게 왕겨를 덮어 봄마늘도 심으셨다.

군내에서 비교적 낙후된 면소재지도 세월 따라 아주 더디게라도 변화를 하려는지 조산원이 새로 생겼다. 그래서 이제는 산모가 위급할 시에 달구지나 손수레에 실려 그 고생을 하며 허겁지겁 읍내 병원으로 가는 일은 없을 듯싶었다.

그런데 분명 병원인 듯싶은데 동네 사람들은 그 조산원에 계신 아주머니를 의사라고 부르질 않고 산파라고 불렀다. 세상 태어나 처음으로 들어보는 단어가 너무도 생소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분의 성을 딴 듯 사람들은 그분을 일컬어 오산파라고 불렀다.

그렇게 비록 작은 점방 수준의 규모이지만 성균이 형이 하는 사진관이 면사무소 앞에 생겼다. 털보 엄씨 아저씨네 점방 옆에는 담뱃대 만드는 공방집 외동딸이 차린 미용실이 자릴 했다. 그리고 약방 옆에는 조산원이 새로 들어서니 마냥 단출하게만 보였던 면소재지 모습이 어설프게나마 읍내의 요소요소를 본떠 축소시켜 놓은 듯했다.

나와 옥순이 그리고 종구도 한 마을에서 같은 해에 태어났다. 밭두렁에 태를 묻어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여야 하건만 속내가 드러나지 않게 서로 반목하는 현상은 계절이 뒤바뀌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어쩌다 동네 길가에서 서로 눈이 마주쳐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종구와 나 그리고 종구를 대하는 옥순이의 태도 또한 냉랭하기만 했다. 그렇게 우리들 세 사람 사이에 지속되고 있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는 나 자신은 물론 옥순이 그리고 종구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좁다란 쪽마루에 앉아 서남쪽 동네 어귀로 눈길을 돌려 보았다.
둥그렇게 굽어진 철길을 따라 얼마쯤 가다보면 마을 밖 어귀에 반쯤 허물어진 ‘원목다리’가 초췌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샛강을 가로질러 건너는 원목다리 입구엔 외 그루 아카시아나무가 서있었다. 아카시아나무 우듬지 위로 몸집 작은 겨울철새 몇 마리가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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