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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91 조회 : 1,719




가물가물한 지평선에 겨울 저녁 해는 느적느적 기울고 있었다. 일몰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남아 있는 듯싶었는데 어느새 밀려오는 어둠살이 노을이 남긴 여운(餘韻)마저 알뜰하게 지우고 있었다. 더불어 삐뚜름한 고샅길에 어슬어슬하게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좁다란 고샅길엔 찬바람만 흉흉하게 불어 달갑지 않은 외로움만 덩그러니 나뒹굴었다.

동네 마을에 오붓하게 자릴 잡고 있는 초가집들이 고태의연하게 보였다. 한 그루 감나무가 언제나 묵묵히 자리지킴을 하고 있는 녹 슨 함석 대문 앞에서 몇 차례나 옥순이 이름을 세차게 불러보았다. 그러나 대답은커녕 인기척조차 없어 허연 방문만이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낮 동안 지속되었던 잡다한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때 고샅길의 고요를 깨는 내 목소리가 귀에 들렸는지 옆집 루시아 아주머니께서 부엌문 밖으로 나오셨다.

“아니 난 누군가 했더니 등메골 사는 상민이 학생이구먼. 근디 그 집에 뭔 일이라도 있는감? 그리 소릴 질러대게.”
“아니에유 아줌니. 아침나절에 학교 가는디 옥순이가 통 안 보여서 으디 몸살이라두 났나 걱정이 되서 그냥 찾아왔구만유.”
“음 그랬구먼. 근디 집에 아무도 없는가 보네 통 대꾸가 없는 거 보닌께. 아침나절에 내가 샘에 물 길러 가면서 얼핏 보닌께 책가방 들고 학교에 가는 거 갔던디, 아마 쪼매 더 기달리면 집에 오겠지 뭐. 그나저나 날씨한질라 오라지게 추워 밖에서 기달릴라면 꽤나 추울긴디 어쩌면 좋을란가 모르긋네.”
“괜찮혀유. 기달린 김에 쪼깨만 더 기다리면 오겠지유. 뭐 암튼 신경 써 주셔서 고맙구먼유. 저 때문에 괜히 추우실 건디 어여 안으로 들어가세유.”

루시아 아주머니께서 하신 말씀 중에 ‘아침나절에 샘에 물 길러 가면서 얼핏 보닌께 책가방 들고 학교에 가는 거 갔던디’라는 말이 귀에 선뜻 와 닿았다. 그제서야 한시름을 덜 수 있어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더불어 온종일 그리 번거롭게 이 걱정 저 걱정을 했던 것이 한낱 기우였음에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 어느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때론 다소 주체스럽더라도 애틋한 기다림이 있어 그도 좋을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 물을 깃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마저도 우물터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고샅길엔 오가는 사람들은 물론 그리도 눈에 자주 띄던 동네 강아지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작은 기척 하나 없이 칙칙하게 내려앉은 어둠살에 어둑어둑해지는 텅 빈 고샅길이 더할 나위 없이 황량하게만 느껴졌다.

그저 말이 좋아 겨울 동복이지 그리 두텁지도 못한 원단을 잘라 만든 교복이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기엔 어설프기만 했다. 겉옷 하나 걸치지 못한 얇은 교복 옷깃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어 두 손은 물론 검정 운동화를 신은 발가락까지 시리게 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어도 위턱과 아래턱이 맞닿아 저절로 덜덜거렸다.
변덕스런 심성은 그리 덜덜 떨면서 무작정 옥순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인가 하는 생각도 가끔씩 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비록 퀴퀴한 탕내(곰팡내)에 석유 그을림 냄새가 짙게 배어난 비좁은 방이라도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졌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아랫목 이불 속에 온몸을 푹 파묻어 몸을 녹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만큼 바깥 날씨가 코와 손발이 시리도록 매섭기만 했다.

바싹 마른 감나무 우듬지에 동짓달 초이렛날 상현달이 처연하게 걸려 있었다. 달도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렸나 구름 속에 겨우 얼굴을 반쯤만 내밀고 있었다.

어스름한 달빛에 옥순이네 집 텃마당이 얼핏얼핏 보였다. 텃밭에 쑥수그레하게 자란 대파가 냉한의 추위를 끄떡없이 견뎌 그 강인한 푸름에서 비록 작을지라도 무언의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마를 남쪽 고샅길 끝머리와 이어진 동네 어귀에 키가 자랄 만큼 자란 대나무 숲이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울창하게 늘어선 대숲이 어둠만큼이나 침침하고 답답하게 시야를 가려 가뜩이나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이따금씩 세차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멋스럽지 못하게 대나무가 서로 부대껴 온통 소란스럽게 소리를 냈다.

고샅길 남쪽 끝머리쯤에 아주 작달막한 사람의 형체가 어둠에 쌓인 채 어릿어릿하게 바라보였다. 이내 직감으로 옥순이인지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십여 리 밤길을 걸어오느라 지쳤는지 어둠살에 가려진 옥순이 모습이 그날 밤 따라 더욱 작게만 보였다.

한동안 그토록 추위에 떨고 기다렸는데 옥순이가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자 그리 기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끈끈한 우정이었는지 아님 티 없는 인정이었는지 아마도 둘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워메, 난 누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얼쩡거리는가 혔드니만 상민이 너구나? 근디 깜깜해지는디 니네 집에는 안 가구 뭣 땀시 여기 있냐?”

대문 앞에 다가선 옥순이가 제 딴에는 내 모습을 보고 반가웠는지 불쑥 말을 뱉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급변하는 거칠어진 옥순이의 태도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파에 시달린 인성이 옥순이 자신도 모르게 후천적으로 변모될까 싶어 적이 걱정이 됐다.

“야, 옥순아! 넌 뭔 말을 정나미 읍시 쌀쌀맞게 허냐? 뭣 땀시라니, 난 니가 아침나절 학교 갈 때 내둥 보이다가 안 보이닌께 어디 아픈가 싶어 와 봤는디, 니가 없어서 이 추운디 여지껏 오들오들 떨면서 기달렸는디 그렇게 말해야 쓰것냐?”

그러자 얼른 뒤돌아 나를 바라보며 그제서야 미안한 듯 말을 했다.

“아니, 나는 전혀 생각두 못했는디. 니가 우리 집 대문짝 앞에 서 있으닌께 그냥 혀본 말인디 니가 기분이 나빴으면 내가 사과헐게, 응? 그나저나 오라지게 날씨한질라 춥네. 추분디 밖에서 청승맞게 떨지 말구 얼른 방으로 들어가자 내가 뜨끈뜨끈허게 군불 땔 테닌께 쪼매 몸 좀 녹였다 가라. 외진 산길에 혼자 걸어갈라면 무지허게 추불테닌께 그렇게 혀.”

말을 끝낸 옥순이가 마루 한쪽에 놓여 있는 네모난 성냥갑을 찾아 마루기둥에 걸어놓은 남포등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있는데 남색 운동화 끈이 마음 아픈 만큼 잘끈 동여매져 있었다.
그리고 찬바람에 까칠해진 옥순이의 초췌한 얼굴에서 번민의 빛이 역력하게 배어나 퍽이나 연민스럽게 느껴졌다.

옥순이가 방으로 서둘러 들어가 교복을 갈아입고 밥을 지으려 나와 함께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 아궁이에 삭정이를 꺾어 넣고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 오붓하게 나란히 앉았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 앞에 그리 얼마쯤 앉아 있으니 온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슬며시 옥순이 얼굴을 바라보니 옥순이도 그제서야 몸이 풀리는지 불그레해진 얼굴 모습이 퍽이나 곱살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평소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야, 옥순아! 그런디 왜 아침나절에 버스는 안 타구 그 먼디서 여기까장 걸어오느라 생고생 했냐? 너 그러다 원목다리에서 몽달귀신이라두 나오면 으쩔라구 그러냐?”
“에이 바보야, 귀신은 무신 놈에 귀신이 나온다고 그러냐? 그리고 앞으로는 버스 안타고 걸어 댕길라구 혀. 그 집구석 앞으루 안 지나가면 눈에 안 띨 거시구 내 발 성성허닌게 차라리 걸어다닐려구 마음을 모질게 먹었어. 울 엄니는 그놈에 집구석에서 같이 살자구 그리 들볶아대지만, 다덜 두고보라구. 내가 저 도구통(절구)에 머릴 처박구 죽는 한이 있어두 절대루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닌께.”

조금 흐릿한 아궁이 불빛에 비친 옥순이가 그도 억울한 마음이 복받쳤는지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저 아무런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옥순이가 하는 말을 그저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그런 침묵은 애타게 갈구하는 만큼 그 어느 작은 것 하나도 마음대로 이루지 못함에서 오는 목마른 갈증이었다.

“상민아 배고푸지? 내가 건건이(허술한 반찬)는 그렇거니 얼른 밥상을 차릴 틴께 밥 먹구 가라. 그리구 내가 장꽝(장독대)에 댕겨 올틴께. 널랑은 아궁이에 솔낭구 좀 더 뿐지러서 넣어라.”

옥순이가 밥에 뜸이 들었는지 살피려 부싯땅(부지깽이)에 불을 붙여 가마솥 뚜껑을 슬그머니 열고 솥 안을 살펴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구, 상민아! 너한티 한 가지 부탁이 있는디, 읍내서 혹간에 석란이라두 만나게 되면 석란한테는 절대루 우리 엄니랑 종구 아버지가 같이 산다는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두 말어야 헌다. 허긴 면소재지 사는 그 여시 가시네들은 차마 내 눈치 보느라 입을 다물고 있지만 얼쯤 눈치를 채는 거 같은디. 참 그런 것만 생각해두 내가 챙피해서 나짝(얼굴)들고 못살긋다.”

마냥 높고 커다란 삶의 벽을 허물기는커녕 근접도 못하니 더욱 내 자신이 그리 초라하고 왜소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모처럼만에 친구가 찾아 왔다고 장꽝(장독대)에 시원한 동치미라도 떠 오려고 갔던 옥순이가 손에 무엇인가를 한 움큼 들고 와서 내 앞에 내밀며 말을 했다.

“상민아, 그리구 이거 지난 가실에 곶감 만들라구 울 엄니랑 감 깎었던 감껍질허구 곶감이닌께 기지구 가서 순덕이 엄니랑 하냥 나눠 먹어라. 죽어라구 깎은 거 말리면 뭐하냐? 인제는 먹을 사람이라구 나밖에는 읍는디 말짱 소용없지 뭐, 안 그러냐?”

옥순이가 밥상을 차려 들고 방으로 들어가 나도 뒤를 따랐다. 옥순이가 흐릿한 등잔불 심지를 머리에 꼽았던 실 핀 끝으로 밀어 올리니 어둑했던 방안이 조금은 환해지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추위에 떨었고 배가 고팠던지라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도 없었다. 된장을 풀어 넣고 끓인 무청 시래깃국에 옥순이가 팔을 걷어붙이고 쭉쭉 찢어주는 포기김치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떠 마시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바깥바람이 조금은 거센지 더러더러 문풍지가 가볍게 떨렸다. 그런데 그때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열어보니 언제 오셨는지 옥순이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지체 높은 부잣집 마님같이 두툼하고 화사한 비단옷을 차려입으시고 향긋한 지분 냄새를 온통 풍기며 토방 위로 오르셨다.

“옥순아, 너 학교는 갔다 왔냐? 으쨌냐? 아침나절에 통 코빼기두 안 보이길래 어디 아픈가 싶어 아까 점심나절에 니 고모헌티 물어보닌께 학교는 갔다구 하면서 원목다리 쪽으루 걸어서 갔다구 허든디, 뭐시 그리 불만이 많아서 버스두 안 타구 걸어서 갔냐? 어디 에미헌티 속 시원허게 말 좀 혀봐라.”

그래도 빈집에 홀로 남겨두고 간 어미의 심정이었는지 걱정스럽게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어림짐작은 했지만 옥순이가 자기 어머니에게 과격하게 대들면서 가슴에 맺혔던 울분을 털어내고 있었다.

“흥, 그래두 내가 쪼매라두 불쌍허게는 보인 모양이구먼. 이 밤중에 요기까장 찾아온 걸 보닌께. 근디 나는 엄니가 생각허는 거모양 하나두 안 불쌍허구 두 눈 똑바루 뜨고 사닌께 걱정일랑 아예 붙들어매라구. 글구 독하게 맘먹구 그 집에 살려 갔으닌께 그 집헌티나 잘허라구.허구헛날 텅 빈집에 혼자서 밥 먹고 몸 웅크려 자는 내 모습을 단 한 번이라두 생각해 봤남? 인제 이 세상 어느 누구 하나두 필요 읍스닌께, 그렇게 알으라구.”

자기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는지 아니면 잃어버린 모정에 가슴 아파 흘리는 것인지 등잔 불빛에 비친 옥순이 얼굴에 눈물이 보였다.

그러자 옥순이 어머니께서 감정조절이 잘 안되시는 듯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면서 말씀을 하셨다.

“저 지지배 말하는 버르장머리 좀 봐! 내참 기가 막혀서 죽 긋네. 그려 니 말마따나 인제는 아무도 필요 없으닌께 나허구두 끝낼 모양이구먼. 말이사 바른말이지. 내가 어디 팔자에두 읍는 호의호식하며 부귀영화를 누려볼라구 그 집으루 간 것두 아니구. 에비 읍시 불쌍허게 큰 니년 하나 똑바루 갈쳐볼라구 그런 건디, 니깐년이 내 속을 으찌 알거시여. 참말루 내 속 터지는 거 생각허면 지금 당장이라두 부엌칼루 내 배를 가르구 속 창새기까장 다 보여주고 싶다, 이년아.”

옥순이 어머니께서 격분을 못 참으시는 듯 몸을 바르르 떠시며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그리구 느그덜이 아무리 나이가 어려 철이 읍다손치더라두, 벌건 대낮두 아니구 아닌 밤중에 머스매허고 지집애가 한방에 같이 밥상까장 차려놓구서 있는 거 동네사람들 누가 보기라도 하면 큰 흉잡힐 건디 으짤라구 그러냐? 글구 상민이 너는 학생복두 안 갈아입구 책가방두 그대루 들구서 온 거 보닌께 이적까장 집에는 안간 모양이구먼 그려. 암튼 니 엄니두 늦으면 걱정을 헐 껀게 싸게 느그 집으루 가거라, 어여.”

옥순이 어머니의 말씀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웬일인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얼굴이 한없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척 쑥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없는 자리에서 두 모녀가 나름대로 더는 할 말이 각자 가슴 아린만큼은 많이 남은 듯싶어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그보다는 숨이 꽉 막히는 그런 분위기에 더 이상 머물기가 부자연스러워 옥순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얼른 나섰다.

마당으로 내려서니 모처럼만에 밤하늘엔 크고 작은 별들이 높다랗게 떠있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다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찬 공기가 코끝에 스며들고 얼굴 시리도록 차갑게 부는 밤바람이 답답하게 조여 왔던 가슴을 조금이라도 트여주는 듯했다.

고샅길로 들어서니 집집마다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자유롭게 넘나들고 끈끈한 인정이 오고가는 낮은 토담 너머로 머릴 맞댄 식구들이 밥그릇에 부딪는 숟가락 소리가 정감 있게 들려왔다. 그리고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희읍스름한 등잔 불빛이 마을의 정취를 더해 주는 동네 고샅길을 자박자박 걸었다.

인적이 끊긴 동네 어귀를 벗어나니 어둠이 잔뜩 도사린 산기슭에 내 사는 작은 집이 더욱 작달막하게 보였다. 그리고 조금 멀리 면소재지의 전등 불빛들이 게슴츠레하게 보여 고적한 심경(心境)에 쉽게 젖어들었다.

그런데 머릿속엔 아직도 들끓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흐느껴 울고 있을 옥순이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울러 그런 기분 속에 옥순이에게 그 어느 것 하나도 뚜렷하게 도움을 줄 수 없는 냉엄한 현실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언뜻 그런 애처로운 옥순이 모습이 갈 길을 잃어버린 채 앙상한 나뭇가지에 몸을 웅크려 추위에 떨고 있는 한 마리 쑥꾹새처럼 느껴졌다.

앞산 가름재 그 어디쯤에서 밤부엉이 소리가 들려오는 방죽가 길모퉁이에 닿았다. 늘 그 무렵이면 어둠을 꿰뚫어 마을 앞을 스쳐 지나는 밤열차의 외마디 기적소리가 가뜩이나 무거운 마음에 썩 달갑지 않게 들렸다.

그리고 잘름잘름 방죽물 위를 흔적 없이 걸어가는 상현달이 우리들의 애잔스런 아픔을 품에 안아 홀로 보듬고 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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