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글, 사진 등의 저작물에 대한 무단복제를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들메로 가는 길 - 296 조회 : 2,244




산자락에 온통 희뿌연 안개가 얄브스름하게 펼쳐져 있었다. 지루하리만큼 연일 찌푸린 날씨에 강추위가 계속되더니 이제 뒤늦게나마 한낯이되면 모처럼만에 날씨가 포근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후듯해졌다.

아롱져 오는 실안개 속에 온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녘의 옥토는 안빈(安貧)하게 살아 온 선조들의 자애로운 손길에 의해 알차게 가꿔졌다. 그렇듯 광활한 들녘의 비옥한 땅엔 숱한 선조들이 각고(刻苦)로 흘린 땀이 땅속 깊이 배어 있었다. 그런 탓에 그 어느 한 곳인들 그 분들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을까 싶어 차분해지는 마음에 자못 경건해졌다.

잘 다듬어져 평평하게 펼쳐진 넓디넓은 들녘의 웅장함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그 무엇으로도 표현키 어려운 감동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제 그 터를 우리들이 뒤를 이어 더욱 기름지게 가꿔야할 것 같았다. 그것을 후세들에게 다시금 물려주어야 하니 끊임없는 순환의 반복이 실로 무궁(無窮)하기만 했다.

주변의 산들은 경사가 가파른 산악지역에 있는 여느 산들처럼 크고 높지는 못했다. 그저 바라보기에 아담스런 야트막한 야산들이 태반(太半)을 이루었다. 그중 유난히 수려하게 돋보이는 등뫼산이 오랜 풍상을 견뎌 의연한 모습으로 마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핏 바라보기엔 그저 여느 야산들과 별다를 바 없이 보였다. 허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려 사려 깊게 바라보면 별유선경(別有仙境)이 따로 없는 듯했다.

비선봉 아래 우묵한 골짜기마다 부연한 안개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산자락을 가볍게 내려선 안개는 면소재지 메꽃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높다랗게 보이는 교회의 십자가가 실안개 속에 아물아물하게 보였다. 그저 얼핏 바라보기엔 늘 보아 온 터라 별다름이 없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바라보면 또 하나의 색다른 느낌 속에 그윽한 운치을 느낄 수 있었다.

산모롱이를 유연하게 끼고 돌아 나온 실안개는 호남선 철길을 유유히 건너 내 사는 곳 들메마을에 끝자락을 펼쳤다. 더불어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는 샛강물 위에도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눈 시린 아침햇살에 안개가 오색의 영롱함을 발해 그 빛의 신비로움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더불어 주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사물들이 심지 깊은 자연의 이치 속에 그 모습들을 담결하게 드러냈다.

그렇게 정겨운 마을의 아침 풍경은 세상 그 어느 것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 탐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을 볼 적마다 가슴이 설레도록 까닭모를 감성에 깊이 빠져 들었다. 그토록 모든 것들이 눈에 탐스럽게 보이고 풍성함이 넘쳐나건만 현실은 더 없이 뒤쳐져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지치도록 간고한 생활은 극도의 강박감을 수반하여 마음이 그지없이 침울해지기도 했다.

허나! 이토록 축복받는 땅에 맑은 공기를 듬뿍 마시며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계기를 부여 받은 그 자체에 순응하려 했다. 그것은 내가 지향하고자하는 목적이 뚜렷하게 엄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삶이 고될지라도 생존의 의미를 나름대로 각인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다.

그런 저런 잡다한 생각에 서서히 빠져들려는 나를 바로 잡아 주려는 듯 산모롱이를 휘어 돌은 한줄기 찬바람이 지각을 일깨우듯 두 볼을 싸늘하게 스쳐 지났다.

하나의 인연이라는 것이 운명의 순리적인 수순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저 얼떨결에 옥순이 손을 딱 한번 잡아 보았을 뿐인데 또 하나의 색다른 감정이 뉘 모르게 싹터 두근대는 가슴속에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그런 감정에 젖어들라치면 왠지? 모르게 갑자기 심장이 요동을 쳐 가슴 벅차게 두근거렸다. 그런 속내를 혹여! 누구에게 들킬까 싶어 두 볼과 귀밑이 뜨겁게 달아올라 때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제하기 힘들었다.

불과 삼십여 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동네에 그리 말도 많았고 허튼소리들이 많은 만큼이나 크고 작은 탈도 많았다.
몇 해 전에는 종구 누나인 정희누나와 군에 가 있는 기성이형이 연애를 한다고 연자방앗간 대문짝에 큼지막하게 낙서해놓은 것을 한두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기에 그냥 피식 웃고 지나쳤다.

그런데 바로 어제 마을 안에 그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났다. 마을 우물가에 물을 길으려고 정미소 앞을 지나려는데 연자방앗간 허름한 대문짝에 큼직하게 써 놓은 낙서가 퍼뜩 눈에 띄었다.
철이 들락말락한 어느 짓궂은 동생 녀석이 빨간색 크레용으로 제 딴에는 아주 큼직하게 써 놓았다.

‘상민이랑 옥순이는 연애대장,

그 낙서를 보고난 후 무척 부끄러웠고 온 동네에 헛소문이 날까봐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든 일의 결과에는 원인이 필수적으로 뒤따르듯 사실의 진위 여부야 어쨌든 간에 어찌 보면 나와 옥순이가 그런 빌미를 제공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옥순이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동네 사람들은 그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동 편하게 잘 타고 다니던 버스를 마다하고 십여 리가 넘는 꽤나 먼 길을 아침저녁으로 옥순이와 함께 단 둘이서 어깨를 마주하고 걸어서 통학을 하는 것이 동네사람들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것 같았다.
그런 의아심으로 입 가벼운 동네 사람들 몇몇 분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나눈 말들이 어린 동생들 귀에까지 흘러들어간 것 같았다. 이미 동생들끼리는 어떤 유형이든 이런 저런 말들이 그럴싸하게 떠돌고 있는 듯했다.
사실이 맞건 틀린 건 간에 그런 유형으로 번져나는 소문 자체가 싫었고 부담스러워 기분은 씁쓰레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솔직히 그런 소문 자체가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짓궂은 생각일는지 모르지만 당사자인 옥순이가 그 낙서를 보았는지? 만일 보았다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돌변할지? 그것이 더욱 궁금해졌다.

아직까지는 두 분께서 낙서를 미쳐 못 보신 듯 어머니와 순덕이 어머니께서 그 일에 대하여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그리고 두 분의 얼굴 표정에서 별다른 변화를 못 느껴 다소 안심이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일 마을에 볼일을 보러 가시는 어머니나 마을로 물 길러 다니시는 순덕이 어머니께서 그 낙서를 보셨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창피한 생각이 앞섰다. 또한 옥순이 어머니가 마을에 볼일이 있어 내려오셨다 그 낙서를 보셨으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마주쳐야할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했다.

그래서 벌건 대낮에는 오가는 동네 사람들의 눈에 띌까 싶어 온 주위가 어둑해지는 늦저녁 고샅길이 한산해지면 얼른 호주머니 칼로 글씨를 박박 긁어 낙서를 지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야만 더 이상 나와 옥순이에 대한 헛소문이 덜 퍼질 것 같고 그로 인해 마음에 부담도 빨리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다음 어차피 소문은 퍼졌지만 방학을 해서 시간이 나름대로는 넉넉하니 한동안 소원했던 마을 동생들과 어울려 주면서 누가 그런 낙서를 했는지 나름대로 탐문해 보려 했다.

그리고 몇 해 전 낙서 일을 당했던 기성이형이 그토록 노발대발 하면서 낙서를 한 주인공을 찾으려 했던 그 심정을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결국에는 기성이형이 끝내 누구인지 밝히지도 못하고 그냥 어물쩡하게 넘어갔기에 이번 일은 좀 더 차분하게 풀어 나가려고 마음먹었다. 정말로 마음 같아서는 이쯤에서 떠도는 말로 그냥 멈춰주길 바랐다.

좁은 동네에 막말로 방귀만 뀌어도 똥을 쌌다고 온통 부풀려져 헛소문이 났고 그저 남에 일이라고 여과 없이 함부로 입소문들을 냈다.
어제 그 낙서를 보고난 뒤로는 벌건 대낮에 마을로 내려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고샅길에 오고가다 말 많은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쩌다 서로 얼굴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내심 이럴까? 저럴까? 한참을 망설였다.

날이 추워지자 북녘에서 겨울을 나려 찾아온 청둥오리는 날이 갈수록 그 개체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가을걷이 때 흘러 떨어진 낱알을 주워 먹으려 떼를 지어 들녘에 내려앉았다. 그 시각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논들 한 부분을 가득하게 메워 불가형언(不可形言)의 장관을 이뤘다.
그렇듯 해마다 빠짐없이 찾아드는 철새들은 더없이 넓은 논산평야의 논들이 지상의 낙원으로 느껴져 천혜의 도래지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땅 한 평 없이 사는 간고한 나에게 해마다 돌아오는 겨울은 실로 삭막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런 아린 느낌은 비단 우리 집뿐만이 아니었으니 대다수의 집들이 그저 곁으로는 다들 헤벌쭉하게 웃고 사는 듯싶지만 모지락스럽게 찰싹 들려 붙은 가난을 떨치지 못한 죄로 잔뜩 조여진 가슴을 활짝 펴고 살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장마철에도 억척스럽게 장사 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러나 한설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 날 기온이 빙점 아래로 치닫는 강추위에는 밖으로 나가셔 행상을 하실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일정한 소득이 없어지자 가뜩이나 여유가 없는 살림은 눈에 띄게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는지라 어머니께서 겨울이 지나 날이 풀리면 젓갈 장사를 하여 다음에 갚기로 하고 남의 집 눈치를 살피면서 혀 짧은 소리를 내어 양식을 빌려 오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남에 집에서 빌려다 먹은 양식을 어찌? 갚아야할지 참으로 암담하기만 했다. 그저 이리 재고 저리 재어 한 집 한 집 양식을 빌리다 보니 어느새 그 숫자가 늘어나 마치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늘어만 갔고 그에 대한 강박감에 식구들이 한시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나또한 마을에 내려가면 길가에서 우리 집에 양식을 빌려주신 동네 분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괜스레 그분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은연중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더러는 빌려다 먹은 양식을 제 때에 갚질 못해 약속을 못 지켜 기일을 넘기게 되면 집으로 받으러 오시는 분도 있었다.
양식 빚을 갚지 못하시는 어머니나 받으러 오신 양쪽 분 모두가 극히 열약한 사정을 익히 잘 아는지라 그저 비좁은 방 낮은 천장만 애꿎게 바라보시며 의미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정이 그리 어렵다 보니 천형으로 실어를 하여 말씀을 못하실 뿐이지 누구 못지않게 눈치 빠르신 순덕이 어머니께서도 더욱 좌불안석을 하셨다. 타고난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하신지라 봄가을로 앞산에 오르셔 부지런히 산나물과 버섯을 따 모아 읍내 장에 내다 팔아 꼬깃꼬깃한 돈을 한푼 두푼씩 알뜰히 모으셨다. 그런데 그 눈물겨운 돈을 살림에 보태시려는 갸륵한 마음에 어느 날 어머니 앞에 돈을 꺼내려 하시다 어머니에게 심한 책망을 듣고 말았다.

먼 훗날 순덕이를 위해 쓰려고 다람쥐 알밤을 주워 모으듯 땀 흘려 모은 소중한 돈임을 식구들 모두가 알았기에 그런 순덕이 어머니의 소중한 마음을 차마 받아드릴 수는 없었다. 그 돈에는 순덕이 어머니의 못다 이루신 한이 서렸고 그 어느 것 보다 더 값진 뜨거운 모정에 숨결이 담겨 있었다.

집안 사정이 그러했기에 힘든 살림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려고 읍내 젓갈 도매상을 하시는 재숙이 어머니가 주문을 맡아 주시는 남에 집 뜨개질감을 가져와 온몸이 쑤시고 어깨가 아프시도록 밤늦게까지 힘들게 뜨개질을 하셨다. 그런 연유로 어머니께서 겨울철에는 집에 계시게 되자 자연스레 옥순이 어머니와 만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런데 전에는 그러지 않으셨는데 종구 아버지와 재혼을 하신 뒤로는 유난스레 화장을 짙게 하셔 때론 거북스럽기도 했다. 옥순이 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마실을 오시면 탕내 서린 흙냄새 가득 차오르는 비좁은 방안에 지분 냄새가 그리도 가득했다. 그렇게 옥순이 어머니의 몸에서 짙게 풍기는 화장품 냄새에서도 은연중 삶에 대한 열등감을 느꼈다.

그러나 말이 좋아 부잣집으로 개가를 하셨지만 남 말하기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몸에 비단 옷을 걸치고 사는 옥순이 어머니를 그리 썩 달가운 눈초리로 보질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는 알게 모르게 온갖 비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전쟁의 화마 속에 동네 몇몇 집의 어른들이 종구 삼촌의 몰지각한 행동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아픔을 당한 쪽에서는 골 속 깊은 원한이 맺혀 좋던 싫던 간에 종구네 집일이라면 적개심부터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활이 간고한 동네 대다수 집들이 피할 수 없는 가난으로 어쩔 수 없이 종구네 집으로 부터 소작농을 얻어서 짓고 살았다. 그런데 종구 아버지는 부를 축적한 지주라 지체 높은 티를 내려고 그랬는지? 괜스레 거들먹거리며 안하무인격으로 소작농들을 함부로 대했다.
또 한편으로는 몇몇 소작농들에게 부당한 조건으로 장리변을 놓아 턱없이 높은 이자를 받아내어 원성이 잦았었다. 그리고 어쩌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원금과 이자 상환기간을 넘기게 되면 가차 없이 낯과 밤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심한 욕설을 하며 숨을 못 쉬게 졸라댔다.

그런 가슴 아린 피해를 본 대표적인 집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한 때는 동네 우물가 근접한 곳에 그런대로 번듯한 초가집을 가지고 살았었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셔 뒷산 우묵골에 영면해 계신 아버지가 한국전란으로 전쟁터에서 다리를 잃으셔 그 병구완을 하려고 종구네 집에서 장리변을 얻어 썼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 칠 못해 제때에 갚질 못해 종구 아버지로부터의 빚 독촉에 허구한 나날을 지독스럽게 시달렸다. 어머니께서 견디시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들녘에 있던 논 서마지기를 남에 손에 팔아넘기고 말았다. 그마저도 부족해 살던 집마저 빼앗기다시피 하여 이곳 산골로 온지도 벌써 수해가 지났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좀처럼 삭아 내리질 않는 분노가 턱 밑을 치고 올랐었다. 그러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함에 부대끼며 살다보니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미워하는 감정마저 메말라 버린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다 송두리째 빼앗기고 나니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허나 그 무엇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고 그저 자조 섞인 아픔의 고통만을 되씹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던 중 옥순이 어머니의 개가 문제로 종구 아버지가 얼굴 두껍게 어머니에게 먼저 말문을 열었다. 지난날에 자기가 우리 어머니에게 했던 혹독한 짓은 까맣게 잊은 듯 옥순이 어머니와의 혼사 문제로 중간에 말 전달을 부탁했다.
우여곡절 속에 재혼이 성사되자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옥순이 어머니로 인해 두 집 사이에 겨우 말문이 트였다.

허나 그 일로 인해 옥순이가 극심한 마음에 상처를 얻어 지금껏 치유가 되질 않아 고통스럽게 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두 분 사이에 있었던 이유야 어째든 간에 종구 역시도 옥순이 어머니를 새 어머니로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이 썩 내키질 않는 눈치여서 찬물에 기름 돌듯 늘 서로 마지못해 거북스럽게 얼굴을 대하고 사는 듯싶었다.

그렇다 보니 받아드리는 옥순이 어머니의 입장도 난감하기는 매일반인 것 같았다. 겉으로는 남들 보기에 부족할 것 없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서 호의호식을 할런지는 몰라도 마음만큼은 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사실 속사정이 그렇다 보니 옥순이가 자기 어머니의 뜻에 따라 종구네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산다는 것은 실로 부합되기 어려운 일이고 옥순이가 그리 고집을 부리는 이유도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전후사정을 누구보다 먼저 간과한 약삭빠르신 옥순이 어머니께서도 동네 사람들의 눈치를 얼른 알아차리신 듯 꼭 필요한 일 빼놓고는 가급적 아랫마을로 나들이를 자제하시는 것 같아 발길이 뜸해지셨다.
그래서인지? 그래도 믿고 의지할 친구라고는 내 어머니뿐이기에 낮으로는 뜨개질감을 가지고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 우리 집으로 곧잘 마실을 오셨다. 그런 탓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옥순이 어머니를 통해 종구네 집 속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날이 더 저물기 전에 마을로 내려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야 될 것 같은데 그 낙서 때문인지? 막상 가려고 하니 평상시에 나답지 않게 썩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저녁 때 물을 길러 가면 저녁밥을 지으려 물을 길러 나오는 동네 사람들이 여법 모일 것 같았다. 그리 되면 틀림없이 방정맞은 누구의 입에서 농담 비슷하게 듣기에 거북스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왠지 꺼림칙했다. 그래서 한참을 골몰한 끝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보려고 내 딴엔 조금 일찍 서둘러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 앞 냇둑에는 동네 아이들이 제철을 만난 듯 썰매를 타며 놀고 있었다. 둑 위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잘 마른 잔디에 불을 붙여 불놀이를 하며 그도 좋은지? 제가끔 무엇이라 귀에 들릴 듯 말 듯 소리를 질러대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무다리를 건너 정자나무를 지나 고샅길로 들어서니 바깥 날씨가 싸늘해 다행스럽게도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마음이 놓였다.

마을 입구에 이르자 조금 시끄럽게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곰방대를 만드는 공방에 겨울철인데도 일거리가 많은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보려는 마음에 고샅길에서 평소와는 달리 발길을 서둘렀다. 이윽고 연자방앗간 앞에 이르자 버릇처럼 자연스럽게 눈길이 방앗간 대문짝으로 모아졌다. 그리고 큼직하게 서툰 글씨로 써진 낙서가 눈에 띄자 껄적지근한 마음에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마을 이장 댁 대문 앞을 지나려는데 이장님께서 동네에 볼일을 보러 나가시는 듯 큰 기침을 하시며 대문 앞을 나서고 계셨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피하고 싶었지만 그리 할 수 없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자 반갑게 웃으시며 인사를 받아주셨다.
아직은 낙서를 못 보셨는지? 아니면 진작 보시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시려는지? 얼굴에 별다른 표정을 느낄 수 없어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구장댁과 맞바라보이는 경수 아저씨네 집 앞을 지나려 하자 마당을 쓸고 계시던 경수 아저씨와 서로 눈이 마주쳐 인사를 드리자 경수 아저씨께서 싱긋 웃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얼레, 상민이 아니여? 그새 몇 달 못 본 새에 무지허게 커번졌네 그려. 이젠 튼실한 장정이 다 됐구먼. 야, 읍내 어디서 널 보면 잘 못 알아 보긋다. 그래 엄니는 잘 계시지? 암튼 늘 허는 말이지만 니네 엄니헌티 잘해 드려야 한다. 그 양반이 누굴 믿구 살긋냐? 알긋지?”
“네!”

더 이상 머물렀다가는 혹여? 낙서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든 나올까 싶어 그저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가삐 그 자리를 피해 우물가로 향했다.
목록으로

 

Copyrigt By 들메로 가는 길 All right reserved.
Webpage Administrator dooris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