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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 조회 : 2,255




내 고향은 그지없이 광활한 금강들녘 한구석에 외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그 곳을 일컬어 들꽃뫼 라고 불렀다.
하늘에 은혜가 충만한 땅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대자연은 작달막한 마을을 제 살붙이처럼 품안에 한껏 끌어 안았다.
비옥한 땅에 사계의 구분이 너무도 뚜렸해 온갖 곡식들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우리들 모두에게 풍요로운 삶을 이룰 수 있는 근간을 부여해주었다.

동구 밖 언덕배기엔 마을의 수호신인양 아주 오랜 세월을 버텨 온 느티나무 한 그루가 버텨 서 았었다.
겨우내 봄을 그리 기다리던 노목이 굽어진 몸을 하늘 향해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이내 풍성하게 하품을 하면 어느새 봄은 목전에 와 있었다.

마을 곳곳에 봄의 전령사인 노란 산수유꽃이 눈망울을 터트리면 앞 들녘에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거려 봄을 한껏 승화(昇華)시켰다.

채운들녘 한가운데에는 작달막한 역사가 있었다.
텅 빈 역사를 홀로 빠져나와 마음이 언짠한가 북녘으로 향하는 화물열차가 한차례 애틋하게 기적소리를 남겼다.
그리고 연초록빛이 실팍하게 돋보이는 너른 들녘을 양쪽으로 가르며 마을 앞을 잽싸게 스쳐지났다.
아마도 따뜻한 남녘의 꽃 소식을 그리 급히 전하려 힘차게 내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 위로 뿜어 올린 검은 연기가 바람결에 흩어지다 마을 방앗간 뒤켠의 가죽나무 우듬지에 걸려 이내 쓸쓸히 사라졌다,
실타레처럼 흩어져 흔적조차 사라진 검은 연기는 옥빛 가득 찬 하늘에 잔잔한 허전함만 가득 남겨 놓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사방으로 펼쳐진 넓은 들녘 논배미엔 자운영과 독새풀이 저마다 알록달록하게 꽃을 피워 나름 봄을 찬미했다.
더불어 시오리길 읍내로 향하는 금강 둑길따라 하얀 크로버 꽃이 후드러지게 피어나 또 하나의 꽃길을 장대하게 이뤘다.
오일마다 어김없이 찾아드는 읍내 장날엔 그 꽃길 위에 형형각색의 옷을 걸친 사람들이 읍내 장터에 가려고 심심치 않게 행렬을 이뤄 친근감을 더해주었다.

그무렵 마을엔 삼진날을 전,후로 하여 봄의 전령사처럼 제비들이 잊지 않고 찾아 왔다.
우리집에도 예년처럼 제비 부부 한 쌍이 찾아들었다.
한동안 사이좋게 추녀 밑에 흙과 지프라기를 섞어 동그랗고 오목하게 열심히 집을 지었다.
아담한 둥지 안에 알을 낳아 알들살들하게 품어 얼마 후 주둥이가 온통 노란 어린 새끼들을 예쁘게 거느리고 있었다.
들녘으로 나갔던 어미가 먹이를 물고 둥지 부근에 나타나기만 하면 한동안 온 집안이 시끄러워졌다.
어린 새기들이 서로 먼저 달라고 입이 찟어져라 크게 벌려 온통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어린 제비새끼들의 모습에서 투철한 생존본능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때론 어린 제비새끼들의 배설물이 마루 위에 너절하게 떨어져 참으로 지저분하게 보였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해마다 잊지 않고 그 먼 길을 달려 찾아 오는 제비를 그도 반갑고 기특하게 생각 하시는 것 같았다.
하루 몇차례씩이나 거듭하여도 좀처럼 짜증을 내지 않으시고 배설물을 치우셨다.
그무렵 자주빛 제비꽃들도 봄이 왔음을 알리려는가 군데군데 소곳소곳 피어났다.

뒷뜰 장독대 뒤엔 청록빛 대나무 숲이 보기 좋을만큼 알맞게 들어차 있었다.
봄비가 한 두 차례 실팍하게 내리고 나면 대밭에는 샛노란 죽순들이 여기저기서 땅을 뚫고 뾰족하게 솟아 올라 자뭇 생동감을 불러 일으켰다.
반투명하게 보이는 댓잎들이 부는 바람따라 한쪽으로 쓸리면 저마다 크고 작은 소리들을 바지런하게 냈다.
얼핏 듣기엔 비슷하게 들리는 듯하면서도 제가끔 소리가 달랐다.
그렇듯 차분한 마음으로 귀를 기우려 듣다보면 각기 다른 소리가 들렸다.
불어오는 바람의 강약에 따라 나는 댓잎 소리가 각기달라 색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반쯤 트인 봉창문엔 봄 햇살이 끈덕지게 찾아들어 흡족할만큼 온 방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 창문 틈사이로 앞뜰 텃밭이 아주 단작스럽게 내다 보였다.
그 곳에 노란 유채꽃이 알맞을 정도로 소담스럽게 피어 올랐다.
그리고 한구석엔 하늘 향해 치켜 선 대파의 잎들이 생기 발랄하게 보였다.
더불어 혹독했던 지난 겨울 추위를 잘 견뎌낸 풋마늘들도 검푸른 빛의 잎사귀들을 쫑긋하게 세워 봄을 맞이하려 했다.
앞마당엔 알에서 갓 깨어난 샛노란 병아리들이 아직은 바깥 세상의 모든 것이 낯 설기만 한듯하게 보였다. 어미 품 안으로 자꾸만 파고드는 모습이 퍽이나 다복하게 보였다.
더불어 푸른빛 시치름하게 돋아나는 이끼 낀 돌담가엔 샛노란 개나리꽃이 호젓하게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길섶 가장자리에 호젖하게 자릴 잡은 노란 민들레도 덩다라 앙증맞게 꽃을 피웠다.

흙담장 너머로 실안개가 가득 뒤덮힌 매화산이 아슴푸레하게 바라보였다.
바라볼 수록 생기가 가득 넘쳐나는 앞산자락이 고연한 모습을 드러내어 봄의 연정을 더욱 짙게 자아냈다.
언제나 듬직하게 다가서는 모습에서 비록 구겨진 삶일지언정 나름대로 굴하지 않으려는 자긍심을 얻으려 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기성이 형네 초가집 흙담장 위에는 줄기에 가시가 많은 찔레나무 넝쿨이 온통 뒤덮고 있었다.
그 줄기 끝마다 귀하디 귀한 붉은 꽃망울을 이내 곧 터트릴 것만 같았다.
그와 함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백목련도 수줍은 듯 순백의 꽃망울을 고결하게 터트리려 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종달새의 밝고 쾌활한 울음소리가 온 들녘으로 퍼져 나갔다.
그 하늘 아래 청록빛 들녘의 논배미에는 못자락을 만드는 농부들의 손놀림이 퍽이나 바쁘기만 했다.

뒷산 뻐꾸기의 느긋한 울음소리 따라 진달래꽃이 분홍빛으로 짙게 물들면 붉은 철쭉도 뒤따라 피어 올라 아름다운 군락을 이루었다.

따스한 봄 햇살이 깃드는 산자락과 들녘 밭두렁엔 마을 여인네들이 다소곳이 앉아 봄나물을 뜯었다.
쑥과 냉이도 캐어 씀바귀와 벌금자리도 뜯고 더러는 산자락에서 달래도 캐었다.
그 시절 어김없이 찾아오는 보릿고개에 산나물과 들녘에서 나는 온갖 나물들은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구황식물이었다.

일 마치고 돌아오는 지아비에게 싱그런 봄나물로 저녁밥상을 차려주려고 나물 캐는 아낙네의 모습이 정겨웁기 그지없었다.

동네 꼬마녀석들은 냇가에서 이제 막 물이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비틀어서 호뜨기를 만들어 불며 나름 봄을 즐기려 하였다.
그리고 냇둑에서 속살이 하얗고 달작지근한 삐비를 무척이나 많이 뽑아 먹었다.
삐비를 얼마나 뽑아 먹었던지 입가장자리에 푸르스름하게 풀물이 들 정도였다.
그모습이 마치 싫것 풀을 뜯고 나오는 시푸르딩딩한 염소의 주둥이와 똑 같았다.

들녘 청보리밭에 가던 길 쉬어 가는 작은 산새들의 가녀린 울음소리 속에 해마다 봄은 그렇게 무르 익어갔다.
마을에는 살랑이는 봄바람 타고 앞산 소나무에서 황금빛 송화가루가 싫지 않을 만큼 날아왔다.
송화가루는 진한 송진 냄새를 풍기며 코끝을 꽤나 간지렵혔다.
그럴 즈음 산자락 어디선가 어미를 찾는 어린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애잔하게 들려왔다.

마을 앞 등메산으로 가는 좁다란 사잇길을 걷다보면 그 중간쯤에 얕트막한 언덕배기가 있었다.
해마다 그 청라언덕 위에는 새하얀 아카시아 꽃이 독특한 향기를 가득 품고 후드러지게 피어났다.
옆집에 사는 딸고마니 귀분이와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함께 언덕 위에 올랐다.
조막만한 손으로 아카시아 꽃을 부지런히 따서 깨어진 사금파리 조각에 담아 소꼽놀이를 하였다.
귀분이는 항라저고리 소매끝으로 코를 쓱 문질러 딱아 소매 끝이 유별나게 뻔질뻔질했다.
더러는 까만 머리카락에 하얀 서캐가 달라붙어 드문드문 보였다.
그래도 귀분이는 나에게는 없어서는 않될 유일한 동무였다.
더러더러 소꼽놀이를 할때는 언제나 나에게 예쁘기만한 꼬마각시가 되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귀분이를 딸고마니라고 불렀다.
그렇다 보니 딸고마니가 귀분이었고 바로 그 귀분이가 딸고마니였다.
귀분이네 집에는 아들이라고는 단 한명도 없이 그져 딸만 네 명씩이나 우글우글 하였다.
귀분이 아버지께서는 내심 목메이게 아들을 기다리셨다.
그런데 역시 귀분이가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고 말았다.
귀분이 아버지께서는 귀분이가 태어나자마자 화가 잔뜩 나 이젠 제발 딸 좀 그만 낳으라고 하여 귀분이 이름을 딸고마니라고 지으셨다.

미려한 신록이 선연하게 펼쳐진 오월의 뜨락에 영롱한 아침 햇살이 온유한 빛으로 온누리에 고루 퍼져났다.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한 그루 뿐인 모과나무가 옆집 귀분이네 울안 뒷뜰에 여법 높다랗게 서 있었다.
온몸에 알록달록한 무늬를 고르게 두루고 있었다.
아침 이슬에 흠뻑 젖은 수피가 햇살에 반사되어 상큼하게 빛났다.
어렵사리 눈에 띈 곱살한 연분홍빛 모과꽃이 환한 눈망울로 쪽빛 하늘을 조심스레 훔쳐보고 꽃잎을 하나둘씩 뉘 몰래 펼치려 하였다.
그러자 어느 틈에 진녹색 동박새가 가뿐하게 날라들어 청청한 울음소리로 서둘러 여름을 불렀다.

계절은 떠나길 못내 아쉬워 하는 늦은 봄과 자발스러울 정도로 성급하게 찾아드는 초 여름이 서로 교차되는 시점인 것 같았다.
그즈음 집집마다 서둘러 모내기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모내기 철에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 품앗이로 서둘러 농삿일을 도왔다.
일년 중 그 때가 가장 바쁜 계절이였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말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마냥 피어올라 풍성함을 더했다.
햇살은 장글장글하게 내리쏟아 냇둑엔 하얀 개망초 꽃들이 앞을 다퉈 무수히 피어나 장관을 이뤘다.
비스듬하게 기운 냇둑엔 어미 염소를 따라 나들이 나온 아기염소가 제멋대로 뛰어 놀고 있었다.
그때 푸른 들녘을 양쪽으로 가르며 마을 앞으로 질주해 오는 증기기관차가 기적소리를 하늘 높이 울렸다.
깜짝 놀라 허둥지둥 어미를 찾는 아기 염소의 울음소리가 자뭇 애처럽게 들렸다.
풀밭에 느긋하게 엎드려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오수를 즐기려던 누런 황소가 느긋하게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기 염소를 향해 아무 일도 아닌데 그리 자발을 떠느냐고 꾸짓듯이 한차례 멋쩍게 울어댔다.

그맘때쯤이면 동구 밖 느티나무엔 매미와 쓰르라미가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 온 동네가 떠내려가라고 목청껏 울었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 그늘에는 촌로들이 모여앉아 담배쌈지를 펼쳐놓으셨다.
풍년초 가루를 기다란 장죽에 꾹꾹 눌러 담아 입에 물고 피우시며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와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셨다.
다른 한쪽에서는 소나무로 만든 장기판에 박달나무로 깎아 만든 장기 알이 부딪치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귀따갑게 번갈라 울어대는 매미와 쓰르라미소리가 한데 어울려 시골마을의 정취를 여실히 드러냈다.
전원의 아늑함 속에 풋풋한 정감이 가득 묻어났다.

동네 아낙네들은 땡볕을 가리려 머리에 수건을 둘러 쓰고 뒷들녘 밭으로 나갔다.
뜨거운 훈김이 치솟아 오르는 콩밭에 허리를 굽혀 호미로 풀을 멨다.
시나브로 연한 콩잎과 들깨잎을 정성스레 따모아 된장에 묻어 잘 삭혀 이듬해 식구들의 여름반찬으로 활용하려 하였다.

그렇게 마을 어른들은 논배미에 김을 매러 가시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뒷들녘 밭에 길쌈을 매러 나가셔 모든 집들이 텅텅 비우게 되었다.
텅 빈 마당에는 빨간 고추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발랫줄에 걸쳐있는 기다란 대나무로 만든 바지랑대 끄트머리엔 놀이에 지친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앉을락 말락 하며 바라보는 눈을 감질나게 했다.

우리들 모두는 그때를 노려 평소에 마을 길을 오가며 눈여겨 보아두었던 집에 몰래 들어가 서리를 하였다.
분남이 누나네 노랗게 익어 먹음직스런 살구와 상두네집 앵두나무 가지에 당글당글하게 매달린 빨간 앵두를 욕심껏 따서 주머니가 터져나오도록 가득 넣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겨우 붉으레한 빛이 들려고 하는 영준이네 복숭아까지 따서 연자방앗간 뒤켠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고샅길을 오가는 마을 어른들의 눈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서리를 해 온 열매들을 나누워 먹으며 철없이 놀았다.

해마다 여름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면소지지로 향하는 달구지 길에서 비켜 선 벼랑바위의 등을 타고 능소화가 치렁치렁하게 뻗어났다.
줄기마다 주황색 꽃들이 부족하지 않을 만큼 곱게 피어났다.
온유로운 꽃 능소화는 길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멈춰 잠시라도 쉬어 가라고 눈빛으로 전하려는 것 같았다.

빛바래져 가는 싸리나무 울타리 밖에는 여름내 뉘를 그리 애태워 기다리나 해바라기가 목을 길게 빼어 내밀고있었다.
바로 밑자락엔 키 작은 채송화가 땅바닥에 납작하게 들붙어 높디 높은 해바라기를 목 아프게 치켜 보고 있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색깔로 가녀린 모습을 드러내어 어렵사리 계절을 음미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그 시점이되면 뜨락 밭에 밑이 틈실하게 든 하지 감자를 호미로 조심스레 캐었다.
여름을 버텨낼 양식으로 삼으려는 기대에 가득 찬 마음으로 삼태기에 담았다.
또한 황금빛으로 잘 익은 보리를 베어 도리깨질로 타작을 해서 보리바심을 끝냈다.
그렇게 여름을 버텨낼 양식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저마다 한 시름을 덜고 있었다.

마을 앞 등메산 기슭에는 다랭이밭들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에 수 해 동안 땀을 흘려 비옥하게 일궈 놓은 널다란 도라지 밭이었다.
하얀색과 하늘의 색깔을 꼭 빼닮은 보랏빛 꽃들이 무수히 피어나 하나의 커다란 군락을 이루었다.
보랏빛 도라지 꽃은 밤하늘에 유난스레 빛을 환하게 밝히는 초록별과 모양새가 그리도 똑 같았다.

뒷뜰 마늘 밭에선 알이 탱글탱글하게 영글은 마늘을 조심스럽게 캐어 묵은 볏짚으로 매깔스럽게 엮어 바람이 잘 치는 추녀 밑에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앞들녘 밭에서 붉게 익은 고추들을 골라 따기 시작했다.
마당에 펼쳐 놓은 멍석 위에 고추를 널어 따끔따끔한 한낯 햇볕에 잘 말려 태양초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런데 때를 노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었다.
하늘 가득하게 들어 찬 시커먼 먹구름들이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어김없이 몇차례씩 요란스레 천둥 번개를 치며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장마철로 접어들기 때문이었다.
기분은 온통 짜증스러움 속에 장마가 멈출 때까지는 하루하루가 그리 지루하기도 하였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일곱빛깔 영롱한 무지개가 앞산 능선에 홀연히 떠올랐다.
그러면 동네 꼬마들은 너나할 것 없이 좀더 가까히 다가서려고 서로 앞서거니 디서거니 하면서 앞산 능선을 향해 줄달음질 쳤다.

장마가 그리 길지는 않아 길게는 한 보름동안을 끌었고 짧으면 거의 십일 정도에 머물렀다 끝맺음을 하였다.

동네 개구쟁이들은 주전부리 삼아 풋열매라도 따보려고 부산스럽게 온산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보면 산자락 풀숲 어딘가에 숨어 밀월의 정을 나누던 수꿩인 쟁끼가 인기척에 놀라 두 날개가 떨어져 나가라고 용을 쓰며 하늘 낮게 어디론가 날아갔다.
이내 암꿩인 까투리도 혼비백산하여 풀숲을 박차고 냅다 도망을 쳤다.

그토록 짜증이 날 정도로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더욱 신간(身幹)을 달달 볶아대는 것이 있었다.
온 대지를 용광로 처럼 뜨겁게 달구는 폭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그리 견디기 힘든 땡볕이 있어야 들녘에 있는 모든 곡식들이 틈실하게 익어간다고 심심찮게 말씀을 하셨다.

그런 어른들의 말씀을 우리들이 받아드리기에는 별스런 의미가 없었다.
막말로 그러니 너희들 모두가 설령 덥더라도 칭얼대지 말고 그럭저럭 더위를 잘 버텨 견뎌내라는 덕담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했다.

마치 흙담장 위에 호박이 둥그런 배를 하늘 향해 포만스럽게 내어 밀고 땡볕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는 것처럼 빼닮으라는 것같이 느껴졌다.

우리들 모두는 그런 말씀을 시큰둥하게 받아드렸다.
그저 애꿋게 한낯 햇살에 번쩍거리는 헌 수레바퀴로 만든 굴렁쇠를 굴리며 비좁은 고샅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애꿋게 집안 마당 가장자리에 하늘 향해 쭉쭉 벋어 난 단수숫대를 부억칼로 잘라 토막을 내었다.
단단한 껍질을 이빨로 벗겨 씹으면 그렇게도 달기만 하여 기분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고 했다.

앞 마당에는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저마다 둥그렇게 선을 그으며 쉴새없이 노닐고 있었다.
그러다 지치면 하늘 향해 힘껏 뻗어 난 단수숫대 우듬지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더러는 빨랫줄을 받히고 있는 대나무 바지랑대 끄트머리에 몇차례나 앉을 락 말락 여유를 부리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달달한 단수숫대로도 양이 차지 않으면 어머니께서 종이로 꼭꼭 접어 부엌 시렁 어딘가에 몰래 감춰 놓으신 일제 사카린을 찾어 내려고 몰두 하였다.
얼마 후에는 어머니 말씀대로 고망쥐처럼 구석구석을 뒤져 그리도 잘 찾아냈다.
사카린을 물에 타서 마시면 물이 비록 시원하질 못해 미지근하여도 혀 끝에 달달하게 와닿아 그라도 감지덕지 하였다.
때론 어머니께서 일제 사카린을 넣고 완두콩을 섞어 보리개떡도 쪄 주셨다.
간식거리가 별로 없던 그시절에는 달달한 그 맛이 정말 별미였다.

그무렵 유난스레 수줍움을 많이 타는 동네 누나들이 저녁밥을 먹고 봉선화 꽃이 많이 피어 있는 집으로 모여 들었다.
장독대 옆에 피어난 봉선화 꽃잎을 따모아 백반을 넣고 곱게쪄서 손톱에 불그레하게 봉선화 꽃물을 들였다.

밤으로는 마당에 생쑥을 넣고 모기불을 놓아 매캐하게 연기를 피워 극성스럽게 달라드는 모기들을 쫒았다.
더불어 앞 들녘 풀숲에 개똥벌레인 반딧불이의 새초롬한 빛을 바라보며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밤의 열기를 잠시나마 달랬다.
초가집 지붕 위에 기다랗게 드리워진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딱 한 번 오작교에서 만나는 칠석 날을 헤아려 보기도 하였다.

우리들 저마다의 속마음은 칠석이 빨리 지나야 그토록 기다리는 추석인 한가위가 오기 때문이었다.
추석 명절이되면 고깃국에 흰쌀밥과 송편도 먹을 수 있고 부모님께서 새옷에 새 신발도 사주시기 때문에 너나할 것 없이 그토록 기다렸다.

금강은 태고적부터 우리들 모두의 삶에 젖줄이었다.
고로 서해바다의 만조와 간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그런 영향으로 금강과 맞닿은 논산천 지류인 샛강에 썰물 때가 되면 강물이 쑥 빠져 강바닥이 거즘 드러났다.

물 때를 맞춰 마을 어른들은 물론 동네 꼬마들까지 샛강으로 몰려 들어 온통 법석을 떨었다.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 민물고기를 잡느라고 온몸이 그을렸다.
얼굴과 양 팔은 물론 등짝까지 벌겋게 달아 올랐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밀물이 밀려 들어 올 때까지 열심히 물고기를 잡았다.
저마다 강바닥에 납작 엎드려 양 손으로 더듬어 붕어와 가물치를 그리고 두 개의 앞 발가락에 털이 무성한 참게를 잡았다. 더불어 커다란 말조개도 심심치 않게 건져 냈다.
어쩌다 운이 좋을라치면 팔둑만큼이나 아주 굵은 메기와 뱀장어도 잡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강렬한 햇볕에 등을 태우다 보면 따금거리다 못해 허옇게 허물이 번져났다.
그 때에 의료 사정은 극도로 취약하여 상처 난 부위에 바를만한 제대로 된 연고 하나가 있을리 없었다.
그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빨간약인 아까징끼를 발랐다.
약을 바른 상처 부위가 무척이나 쓰라리고 아파도 구할 수 있는 약이 그 뿐이였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징끼가 상처 난 부위에 만병통치약 정도로 알고 살았다.
그것 마져도 없을 경우엔 동네 이 집 저 집으로 아까징끼 와 요도징끼 약을 구하러 다녔다.

그무렵 짓궂은 동네 형들은 달빛이 흐린 어두운 그뭄날 밤이나 검은 먹구름이 가득 낀 늦은 밤을 골라 수박과 참외서리를 하였다.

등메산 다랭이밭에 여름내 공을 드려 탐스럽게 키워 놓은 동균이네 수박을 주로 노렸다.
마을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집은 동균이네 딱 한집 뿐이었다.
원두막에서 동균이네 아버지가 밭을 지키시다 그만 잠에 드시면 그 때를 노려 수박밭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기어가서 수박을 훔쳤다.
이틑날 날이 밝자 그렇게 탐실하게 잘 자랐던 수박밭 한구탱이가 온통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동균이 아버지께서는 땀 흘려 지어 놓은 한 철 농사가 엉망이 되어버렸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셨다.
참기 어려운 분한 마음에 마을 동구밖 둥구나무 아래는 물론 좁다란 고샅길 까지 누비시며 소리를 쳐 화를 풀려고 하셨다.
그러나 속된 말로 심증은 어느 정도 갈지라도 확실한 물증이 없으니 그저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뿐이었다.

연일 지속되는 폭염의 열기로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무더위에 지칠대로 지쳐 숨을 헐떡이었다.
한편으로는 여름을 잘 넘겨 가을을 맞이하려 했다.

그쯤 알 산자락 풀숲에 몸을 숨긴 머루와 다래 그리고 으름들 까지도 늦여름 따거운 땡볕에 온몸을 양껏 그을리고 있었다.
아마도 만추에 풍만한 결실을 맺으려고 참고 견디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름내 자질맞게 울어대던 매미와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딱 멈추고 말았다.
미루어 짐작컨데 그리 극성맞게 들붙으려는 늦여름의 발악적인 기세에 눌려 잠시 주춤했던 가을이 이제서야 첫걸음을 실팍하게 내디디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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