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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29 조회 : 1,598




치유될 수 없는 전쟁의 참화로 폐허된 땅덩어리만큼이나 모든 사람들의 인성이 극도로 거칠어졌다. 그 덕분에 전후의 사회상은 극도로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런 혼탁한 삶의 여건 속에서도 우리들 모두는 저마다의 진정한 삶의 몫을 찾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내 어린 유년시절 또한 거친 세파에 그을림이 없이 청순함 속에 빛 바라지 않기를 그토록 간절하게 바랬다. 허나 냉혹한 현실이 부과하는 시련은 그리도 클 수밖에 없어 나약하기 그지없는 나로서는 감당키 어렵기만 했다.
그 모두가 그릇되게 흐려진 인성의 바탕으로 가득 찬 윗세대들이 무분별하게 남겨놓은 잔인한 흔적들이었다.
그저 어처구니없이 떠넘겨진 상흔에 여파를 묵묵히 받아드리게 강요를 거듭하는 그 당시의 사회상황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댕그렁 댕그렁 댕그렁 댕그렁』

일요일 아침 예배시간을 알리려는지 철둑 너머 면소재지에 있는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산자락과 들녘에 은은한 여음을 남겼다. 앞뜰엔 아침 이슬에 젖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숙연한 모습으로 저마다 자릴 잡고 있었다.
들메 마을의 하루는 언제나 동편 산머리 소릿재에 여명을 벗어나 늠름하게 떠오르는 해가 아침의 장을 열었다. 해는 오전 내 아랫마을 초가지붕 위를 오래도록 맴돌며 다소는 밉살스럽게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정오 무렵이 되자 그제서야 너른 앞 들녘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온 들녘을 오후 내내 바지런히 헤집어 초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튕겨내고 있었다.

해거름에는 푸른 금강 둑 따라 읍내 옥녀봉에 느긋하게 몸을 눕혀 슬금슬금 찾아드는 어둠살에 시원스레 자리를 내주었다. 뒤를 이어 저녁노을이 서서히 모습을 감추면 들녘 마을의 하루는 평온함 속에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오월의 문턱을 넘어서자 가뜩이나 성급하게 다가서려는 초여름을 재촉이나 하는 듯 후더분한 바람이 간헐적으로 불어왔다. 그리고 바람은 쪽마루와 방문 언저리에 은은한 솔향기 속에 금빛 송홧가루를 흩뿌렸다.
노란 봄 병아리 솜털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뜨락에 나서 가파른 언덕배기를 바라보았다.

영겁(永劫)의 세월 속에 늘 제자리를 지켜 우뚝 서 있는 왕 소나무가 그리도 듬직해 보였다. 굽어 내린 가지에 오글오글 달려 있는 누런 송화가 얼핏 바라보기에 황금빛 너울을 이룬 것 같았다.
언덕바지 두 그루 쌍 소나무가 숱한 세월동안 마을에서 일어났던 희로애락의 숱한 사연들을 기억 속에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시골 마을 같은 하늘 아래 머리를 두고 한 우물을 먹으며 함께 웃고 울며 살았다. 때 묻은 정이 깊었건만 변화를 모르고 제자리걸음만 거듭하는 소작농에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들 중에는 더는 못 견딜 것 같고 가난이 싫어 한두 집씩 고향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 제가끔 사면팔방(四面八方)으로 뿔뿔이 흩어져 이젠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찾기조차 어려워졌다.
더불어 그렇게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일들이 마을 사람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런 가슴 아린 떠남을 아쉬운 눈빛으로 지켜 바라보았던 왕 소나무를 의미 깊게 바라보았다. 달짝지근한 송화 가루 향기가 허기진 배를 더욱 고프게 하면 뒷산 뻐꾸기 처연한 울음소리 따라 금빛가루가 바람결에 묻어왔다.
송화를 보고 있으면 늘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 어느 해인가 늦가을에 읍내로 시집가는 동네 언년이 누나의 잔칫날에 맹칼없이 덩달아 신바람이 났었다.
그 이유는 동네 어른들 말마따나 잔칫날에는 돈 안들이고 남에 살을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였으며 남에 살이란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뜻함이였다.
시루 속에 잘 달여 내린 송화주는 지체 높으신 어르신네들이 드셨다. 술이 거나하게 오르시면 불그죽죽한 얼굴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소리를 길게 질질 끄시면서 창을 하셨다.

‘청산리 벽계수야’가 잔칫집 안마당에 가득 넘쳐 나면 아직은 덜 자랐다고 동네 어른들 앉으신 자리에 함부로 낄 수가 없었다.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 그리도 먹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 입에 물고 푸짐하게 차려놓은 잔칫상 언저리를 눈만 끔뻑거려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부엌에서 잔치 일을 거두시던 어머니께서 안쓰럽게 보셨는지 잔치 음식을 앞치마에 가리고 나오셔 한 움큼 내 손에 재빨리 쥐어 주셨다.
그리고 혹여! 뉘라도 보면 흉이 될까 싶어 얼른 가라고 내 등을 가볍게 떠미셨다. 두근대는 가슴에 고샅길 담장으로 냉큼 달려가 길모퉁이에 숨었다. 떡살로 곱살한 무늬가 나오게 눌러 찍은 송화다식을 한 움큼 손에 들고 짙은 솔향기 맡고 또 맡아 어린 마음 자못 설레기도 했다.

덥석 한입에 넣어도 양에 차지 않을 것을 오랜만에 맛보는 음식이라 아껴 먹으려 했다. 다식 한쪽 끝머리부터 조금씩 떼어 먹으면 손때가 묻어나 짭짤한 맛이 나도 그마저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송화다식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이제 새신랑 따라 동구 밖 벗어나면 한동안은 보기 힘들 언년이 누나가 눈물을 질금거리며 꽃가마에 오르는 줄도 몰랐다.
마음은 온통 손에 움켜쥔 떡 조각과 송화다식에 정신이 팔려 베어 먹다 남은 작은 조각을 움켜쥔 손등 위로 늦은 봄 한낮 햇살이 다소곳이 내려앉았다.

그맘때쯤이면 잘금잘금 자라난 돌미나리가 차분하게 숨 고르는 냇가엔 성급한 송사리가 물살을 가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둔덕엔 맘씨 고운 동네 분남이 누나가 칠흑 같은 긴 머리를 칠렁이며 남색 댕기를 곱게 매단 것처럼 목 긴 붓꽃이 쭈뼛쭈뼛 피어나 있었다.
개울가엔 개망초 꽃망울들이 여름 나들이를 서두르나 조막만한 얼굴에 하얀 분칠을 곱살하게 하였다.
마을 안 진수네 초가집엔 속적삼 같은 백옥같이 흰 찔레꽃이 엇비스듬히 기운 싸리 울타리 등을 타고 앞 다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하얀꽃들이 후드러지게 피어나 소담스럽기 더없는 자태를 빙 둘러쳐진 싸리 울타리를 따라 기다랗게 들어 내고 있었다.

햇살 고운 방죽가 둑에는 하얀 오리 엉덩짝을 들썩이고 날개를 푸덕여 자맥질을 하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방죽가에는 향이 지긋한 창포가 동네 아낙네의 고운 손에 닿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넓기만 한 호서평야는 눈 들어 사방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들녘을 따갑게 내리쪼이던 해가 제 할일을 다한 듯 느릿 걸음 하여 금강 둑으로 향했다. 앞 들녘을 바라보니 흙먼지와 자갈로 덮인 신작로가 강경 읍내로 희뿌옇게 이어져 있었다.

한국전쟁 중에 미군들이 사용하다 남긴 군용트럭을 개조하여 만든 앞부분이 기다랗게 튀어나온 화물트럭 한 대가 보였다. 읍내의 길목으로 들어서려는지 높다란 제방 둑 위를 물방개처럼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곧게 뻗어난 신작로 가로수 위에 탐스러운 저녁노을이 불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뒷산에서는 잠자리로 찾아드는 산새들 울음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저녁 해가 옥녀봉에 서서히 기울어가면 읍내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온통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영롱함에 도취되어 나도 모르게 스르르 빠져들고 말았다.
한낮엔 중천에 떠있는 해가 그리 크게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저녁 무렵 옥녀봉 팽나무 우듬지에 걸쳐진 저녁 해는 낮에 본 해와는 완연(宛然)하게 다른 장엄한 모습 그 자체였다.
어둠살이 동네 고샅길에 찾아들어 동네 사람들 모습이 어스름하게 보였다. 늘 보아왔던 터라 조금 멀리서도 어림짐작으로 누구인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들녘 밭일을 끝내시어 등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 가시는 경수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원두막 밭일을 마치고 방죽가로 걸어가는 키 작은 동근이 아버지와 물동이를 이고 가는 상분이 어머니의 하얀 무명적삼에 치맛자락도 흐릿하게 보였다. 또한 지 아버지를 딱 빼닮았나 까불거리며 황소를 몰고 마을로 들어서는 종구의 모습도 저녁노을 속에 어우러져 마을에는 어둠살이 서서히 찾아들고 있었다.

동네 낮은 추녀 밑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앞 다투어 하늘 향해 소옴소옴 피어올랐다. 들 주막에는 읍내를 다녀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 옆으로 짐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지나가고 있었다.
점심때 거무튀튀한 껄끄러운 보리밥을 아침나절 어머니가 텃밭에서 솎아 오신 아주 어린 상추절임을 곁들여 먹었다. 내 깜냥으로는 든든하다 싶게 먹었지만 언제나 해질녘 그맘때쯤이면 늘 배가 고파왔다. 그리고 버릇처럼 빛바랜 사립짝 앞에 턱을 고이고 앉아 어머니가 이제나 저제나 오시려나 ㅅㅐㅇ각에 생각을 수 없이 거듭하며 앉아 있었다..

작은 두 눈망울을 모아 어머니가 걸어오실 서낭당 쪽을 눈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철길 건너 방죽가에 하늘 향해 쭉 뻗어난 미루나무가 서로 헤여짐이 못내 아쉬운 듯 기우는 저녁 해를 배웅하고 있었다.
그쯤이면 읍내로 장사를 나가셨던 어머니가 옹기를 머리에 이시고 구불구불한 기수네 보리밭길 따라 집으로 돌아오셨다. 옹기에 가득 담긴 젓갈을 다 비우고 오시는 날엔 마음 뿌듯해하시며 종일토록 텅 빈 집에 홀로 남겨 마음 아프셨는지 꼭 끌어안아주셨다.
그리고 구겨진 헌신문지에 쌓여 있는 황소 눈알같이 크고 굵은 눈깔사탕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깨트려 조각을 내주셨다. 어머니가 서둘러 저녁밥을 지으시면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지서의 유리 창문으로 내비치는 전등 불빛이 그리 외롭게만 보였다.

면내(面內)에서도 면소재지에 인접한 다른 부락들은 비록 밤 10시까지만 불이 들어오는 일반선이라도 각 가정에 전깃불을 켜고 살았다. 그러나 취락(聚落) 구조가 제일 취약하고 생활 여건이 그중 어려웠던 탓인지 우리 동네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집집마다 등잔에 석유를 넣어 불을 밝히고 살았다.
그래도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 온 마을을 뒤덮는 한겨울밤에는 석유 등잔불 밑 화롯가에 머릴 맞대고 모여 앉았다. 가마솥에 찐 고구마를 저마다 하나씩 들고 베어 먹으며 뱃속까지 시원한 겨울 동치미를 훌훌 마셨다.

때때로 입담 좋은 순이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려 어두운 밤에 아랫마을로 마실을 다녔다. 어쩌다 무서운 처녀 귀신과 달걀 귀신 이야기를 듣고 오는 날밤에는 어둠이 잔뜩 깃든 동네 어귀 대나무 밭에서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와 나를 잡아갈 것만 같았다.
겁에 잔뜩 질린 나는 동네 어귀를 벗어나기 무섭게 ‘엄니, 엄니! 나 무서워 죽것어. 빨랑 나와.’ 하면서 다급하게 큰소리쳐 어머니를 애타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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