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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메로 가는 길 - 70 조회 : 1,724




칠월 끝 무렵에 시작된 장마는 팔월 초까지 이삼일 간격을 두고 내리다 멈추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나마 타 지역의 논들에 비해 수리시설이 잘된 탓인지 물살이 가파른 샛강 개어귀에 인접한 저지대 논들의 벼가 군데군데 쓰러진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큰 피해가 없었다.
농부들은 저마다 들녘에 나가 비바람에 쓰러진 벼들을 모두 일으켜 세우고 빗물에 무너진 논둑을 바로잡고서 그제서야 겨우 한시름을 놓았다.

장맛비가 내려 한동안은 가뭄이 해갈이 되는 듯했지만 장마가 끝나 다시 날이 가물기 시작하자 뒷들 천수답들은 물이 턱없이 모자랐다.
조금 지루한 듯싶던 장마가 끝나자 등이 벗어질 것 같이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쪼였다. 그러자 개울로부터 멀리 떨어져 높은 곳에 있는 천수답들은 논바닥에 물이 말라들어 저마다 걱정을 했다.

살기가 여유로운 집들에 논들은 물길로부터 가깝고 배수가 잘되어 있는 위치에 자릴 잡고 있어 말 그대로 옥답이라 했다. 그런 조건을 두루 갖춘 논들은 장마나 가뭄에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천수답을 가진 살기 어려운 집들은 가뭄에 신경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척박한 땅이지만 그것이라도 있기에 겨우 연명을 해가는 그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땅이었다.

해마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면 어김없이 벼에 해충들이 들끓었다. 방제를 하려고 무거운 농약 통을 등에 둘러메고 손으로 분무기를 작동하여 온 논에 농약을 살포했다.
학교로 가는 길에도 논에서 농약을 살포하면 가끔씩 부는 바람에 농약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어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때때로 동네 어른들이 논에서 농약을 살포하시다 독성이 강한 농약에 중독되어 쓰러지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농약에 중독이 되어 그만 의식을 잃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읍내 의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미숙하게 농사를 짓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말복을 넘기고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가 가까워졌다. 그러나 연일 기승을 부리는 더위는 좀처럼 누그러지질 기미를 보이질 않아 더욱 짜증스럽기만 했다.

마을에 영선이가 다녀간 후부터 학교에서 영선이와 전보다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런 나에 모습을 석란이와 정순이는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조회시간에 석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께 자기 책상이 흔들려 삐걱거린다고 고쳐달라고 했다. 쉬는 시간에 학교 소사 일을 하시는 영선이 삼촌인 양씨아저씨가 공구 통을 들고 교실에 오셔서 수리를 하고 계셨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월급을 받고 일하시는 분이기에 당연히 수리를 하여야지만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석란이의 눈빛은 다른 아이들의 눈빛과는 사뭇 달랐다. 미루어 짐작을 해보았을 때 석란이가 다소는 고의적으로 책상을 고치려했던 것 같았다.
그런 작은 것이라도 기회를 삼아 자기가 영선이에게 뒤지지 않으려한 것같이 느껴졌다. 그 일로 인해 영선이가 자기의 친 삼촌이 일을 하는 모습에 오히려 멋쩍어 하리라 생각했는데 우리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영선이가 스스럼없이 팔을 걷고 자기 삼촌에 일을 돕고 있었다.

그날 영선이의 꾸밈없는 모습에서 느낀 것이 많았다. 그런 의연함에 가난하게 사는 내 모습을 어떻게라도 숨기려고만 했던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리고 자꾸만 오만해져가는 석란이의 그런 모습에 예전의 종구 모습을 되풀이해서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밉살스럽게 보였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도시락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영선이가 큰소리로 부르며 손짓을 했다.

“얘, 상민아! 이리와 도시락 같이 먹자.”

영선이로부터 갑자기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영선이가 서울에서 살다 와서 비위가 좋아 그런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반 애들이 보는 앞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불러 밥을 같이 먹자고 하니 더욱 그랬다. 주위에 있는 친구들 보기가 한없이 부끄러워 그냥 밖으로 도망치듯 달아났다.

그 뒤부터 교실에서는 나와 영선이가 말을 주고받으면 반 아이들이 뒤에서 수군거렸고 서로 좋아한다는 헛소문이 퍼져 났다. 그리 머지않아 그런 말을 처음 꺼낸 것이 바로 석란이었음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런 헛소문이 그리 싫어 내가 먼저 석란이에게 말을 걸었다.

“야, 윤석란! 너 나 좀 보자. 니가 그런 소문 퍼뜨렸지? 정말 비겁하게.”
“그래! 내가 그랬다 왜, 어쩔래? 며칠 전에 영선이가 니네 집에까장 놀러갔다며?”
“얘, 친구네 집에 놀러간 게 그렇게 큰 흉이니? 그런 말을 하게.”

석란이와 가벼운 말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영선이가 다소 불쾌한 얼굴로 석란이를 쏘아보며 말을 했다.

“얘, 친구가 친구네 집에 놀러간 게 그렇게 큰 흉이니? 그런 말을 하게.”
“응, 그러냐? 야 지금까지 우리 반에 상민이 집에 가 본 사람 한 명도 없어. 그런 상민이가 뭔 바람이 불어서 너를 지네 집에까장 데리고 갔다냐?”
“그건 내가 옥순이네 집에 놀러갔다 내가 상민이한테 집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간 것인데 그것이 무슨 잘못이니? 그런 쓸데없는 소문내지 말아야지. 안 그렇니? 그리고 친구가 친구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응, 너는 그렇구나! 친구도 친구 나름이지. 남자랑 여자가 좋아하는디 그게 말이 되냐?”
“너 참 답답하다. 우리가 무슨 어른이니 남자, 여자를 따지게 그리고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네가 어떻게 아는데?”

그렇게 정신없이 다툼은 계속 되었다. 석란이와 가까운 아이들은 석란이를 둘러싸고 영선이를 선호하는 애들은 영선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석란이가 조금은 많은 듯했다.

옥순이는 입장이 난처한 듯 따로 떨어져 보고만 있었다. 말다툼 소리에 교실이 시끄러웠던지 옆 반 아이들도 구경을 와서 복도에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어쩜 석란이와 영선이의 첫 다툼이었고 서로의 관계가 더욱 소월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석란이와 영선이는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했다. 시험은 물론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의 질문에 서로 앞 다퉈 먼저 대답을 하려 했다.

반성적이 4위였던 영선이가 한 칸 올라서 석란이의 턱밑에 바짝 다가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나는 논리가 정연하고 사리구분이 뚜렷한 영선이의 행동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 아픔에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으려는 그런 순수함을 느꼈다.

학교 소사로 일하시는 양씨아저씨는 원래는 서울에 사셨는데 6.25 전란에 먼 친척이 사는 이곳 채화면으로 피란을 내려오셨다. 그 뒤로 동생분인 영선이 아버지와 가족들은 휴전이 된 후 서울로 다시 올라가셨다.
그리고 양씨아저씨는 피난생활 중에 친척의 중매로 새터마을에 사는 처녀 한 분을 만나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옆집에 사시던 교감선생님의 소개로 학교의 잡일을 하시게 되었다.

‘나도 너처럼, 아니! 너보다 더 고생을 하며 아빠랑 살았는지도 몰라.’

그렇게 나를 향해 곧잘 말을 하는 영선이를 보면서 그 깊은 속내를 알고 싶었지만 마음속 깊은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 차마 묻지를 못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 같은 예감 속에 늘 궁금하게 생각을 했다.

늦은 저녁 집으로 오는 길은 늘 배가 고팠다. 차라리 달이라도 밝았으면 좋으련만 주위가 어둑어둑하기만 했다.
둔덕 위 목화밭에 새하얗게 피어난 목화가 낮으로는 그런대로 봐줄만 했는데 밤에는 그 하얀 꽃마저 두렵게 보여 그리도 싫었다. 그런 탓에 비석골 공동묘지 앞을 지나려면 겁이 덜컹 났다.

조금은 덜 무서울 것 같아 공연히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옥순이도 무서운지 내 옆에 바짝 달라붙어 별로 부르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하는 수 없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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