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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났는데도 조회 : 1,671




이제는 아예 습관이 되어 버렸다.
거친 세파에 휘둘려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다보니 삶의 아픔에 대한 내성이 얼만큼은 길러진 것 같다.
오후 늦 무렵이면 우체부 아저씨가 어김없이 다녀간다.
그쯤에 학교를 파하고 나온 외손자를 태우고 어김없이 좁다란 마을 길로 들어오는 노란색 통학버스가 은근히 기다려진다.

하늘이 내려주었기에 결코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운명으로 받아드렸다.
주어진 삶의 테두리 안에서 지금껏 외손자와 함께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이미 아홉 해 전에 하늘이 우리 두 목숨에게 내린 삶의 숙제였다.

바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였다.
나는 늘상 외손자가 어리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랬는데 뜻하지 않게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그 충격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세 살배기 어린 외손자가 제딴에는 여법 의사소통을 하려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하기보다는 먼저 당혹감이 앞섰다.

지난밤 잠자리에 들기 전 외손자가 나에게 남긴 그 말 한마디 때문이다.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그리고 멀리 있는 엄마도 안녕히 주무세요.”

늘 함께 하지 못하는 제 어미가 어린 뇌리 속에는 퍽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이 느껴졌나 보다.
아님 천체에 숨어 있는 제 어미의 별 하나를 찾기가 그리 힘들었는지 속내를 쉽사리 터놓지도 못한 어린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아려 오는 아픔이 예리한 칼날로 생살 한 점을 도려내는 듯했다.
그에 못지않게 지금껏 아무런 탈 없이 마음 부듯하게 잘 자라주어 더할 나위가 없다. 그에 못지 않게 강한 책임감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아직은 어린 탓에 지난날에 있었던 뼈를 깎는 듯한 사연을 전혀 모른 채 살고 있다. 하지만, 저도 마음 아픈 만큼 키필코 잘 자라나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혼혈을 다해 지향하는 것이고 어린 제가 가야할 숙명에 길인 듯싶다.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샛노란 개나리꽃이 완연하게 모습을 드러내어 오후 한나절을 아늑하게 몰고 가려는가 보다.
그런 시름 아는지 모르는지 따스한 봄, 한낮 햇살 등에 듬뿍 이고 열차는 유유하게 남행을 지속하고 있다.

그 시차의 공간 속에서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매정스레 떠나는 것이 세상사 순리라 생각하며 묵묵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염원하는 진실한 속내는 그렇치도 못하는 애석함이 하나 큼직하게 며울져 있어 늘 마음이 아려만 오니,그렇게 응집된 아픔이 뇌리 속에 깊숙하게 자리를 하여 시차를 모르고 들썩여 버텨내기 힘겨운 고통만 되풀이 한다.

가혹한 현실이 이미 빈 껍질만 남겨 놓은 피페해진 내 영혼과 육신에 더는 또 무엇을 바라는지 나 자신도 지극히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참으로 숱한 나날을 그리 보냈는데도 그 무엇 하나 알리 없음에 마음은 늘 애석해질 뿐이다,

( 25, MAR.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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