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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喜方)계곡에 너를 두고 6 조회 : 1,337




늘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떼부터 아니 그보다 더 먼 전생부터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사탕을 주고 받기 위해 태어났나 봅니다.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찾아 든 낯선 이방인의 모습이 서먹하기보다는 썩 달갑지 않아 못내 떨떠름한지, 머릴 들어 바라 본 하늘이 뻣뻣하게만 보입니다. 그런 하늘 모습을 바라보는 나 또한 말을 아끼려 하는 깊은 속내를 아둔한 머리로 알듯말듯 하여 덩다라 서먹해질 따름입니다.

아울러 전형적인 겨울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듯 희끄무레한 날씨 또한 오늘따라 더없이 설핏하게만 느껴져 쇠진해져 가는 추한 내 육신의 아둔한 뇌리로 이제서야 뒤늦게 함축된 의미를 어설푸게라도 추축할 수 있어 마음 더욱 우울해집니다.

하지만 이곳의 하늘은 분명 내가 머물고 있는 그곳 하늘과는 현저히 다른 또 하나의 색다른 모습을 투시하는 것 같아,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낯선 곳에서의 또 다른 외로움에 서서히 젖어드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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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머물고 있는 영면의 터, 그곳 희방계곡으로 가려면 청량리를 출발하여 경주로 가는 중앙선의 무궁화호 열차를 이곳 제천역에서 다시금 갈아타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역사 대합실로 들어서려는데 내 등 뒤에서 '또각또각' 매끄러운 대리석에 부딪는 구두 굽의 쇳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와 얼른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몸에 착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고 검정색 하프부츠를 신은 한 젊은 여자가, 칠흑 같은 긴 머리가 칠렁이도록 발자욱 소리를 세차게 남기며 급히 뛰어갑니다.

추측컨데, 열차 시간이 임박하여 촉박하게 승차권을 구입하려는 것 같이 보입니다.

뒷모습만 보았을 때는 흡사 당신을 보는 것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먹장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니 아마 오후 늦무렵쯤에 인색하게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징후가 조금은 엿보입니다.

열차가 플랫폼에 진입하는 시간까지 여유가 약 이십 여분 정도 남아있어 플랫폼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열차가 홈 안으로 들어 올때 까지 암울했던 그 시절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더듬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마음이 고왔던 사람이었다고 감히 어느 누구 앞에서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 화재로 인하여 몸을 크게 다쳐 온몸에 75 프로의화상을 입어 흉칙해진 몸뚱아리를 전혀 꺼려하지 않고 보살펴 돌보아 주었습니다.
더욱이 철모르는 아무런 죄 없는 어린 눈망울까지 걷우려 당신은 그렇게 헌신을 하며 살았습니다.

생각이 짧은 일부 지각 없는 사람들은 속된 말로 다리져는 병신과 밤마다 뭇 사내들에게 웃음을 파는 술집 여자가 서로 죽이 맞아 만나서 사는 거라고 쉽게 지꺼리는 것을 등 뒤로 몇차례 정도 들었답니다.

그래도 당신과 나 우리 두 사람은 절대로 그런 말에 개의치 않고 굳굳하게 살았으며 당신은 아내로써의 자리를 충실하게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하루가 다 저문 늦저녁부터 이른 새벽녘까지 술 담배 연기 자욱한 룸싸롱에서 짓궂은 손님들의 온갖 희롱을 참고 견디느라 그리 지쳤어도 단 한 번이라도 얼굴을 찡그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당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어 언제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답니다.

화마로 모든 것을 다 잃고 벌거숭이 몸으로 무일푼이된 무능력 했던 내가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 그래도 하나쯤은 있었나 봅니다.
살을 베어내듯 추운 겨울 새벽녁 술에쪄들어 지쳐 들어 오는 당신이 뜨거운 곳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몸이라도 녹이라고 방 아랫목을 덥히려고 구멍이 열 아홉개 뚫린 연탄불을 제 때에 갈어 주는 것이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보아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였지요.

이른 새벽 동녘 하늘에 여명이 소리 없이 찾아들 무렵 한걸음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 오려고 지친 몸 이끌고 이층 옥탑방 계단을 올라서던 당신의 발자욱 소리가
조금 전 이름모를 어느 여인이 남긴 구두소리처럼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여 다시금 가슴이 아려옵니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겨울 찬바람이 여행객들이 인색하게 버린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려고 모여 든 몇 마리의 비둘기를 매정하게 쫒아내고 그저 밉쌀맞게 스쳐 지납니다.

하지만 그 바람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는 한 자락 죄책감이 가슴을 온통 헤집어 회한(悔恨)인 양 긴 한숨을 염치없이 내뱉게 합니다.

뼈마디마디에 서린 한이 그도 많아 더 좋은 날을 기약하며 아팠던 만큼 더 행복했어야할 당신이었는데, 뭐라 원망하는 소리 한마디도 남김없이 그리 쉽사리 내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무릇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지요 "그렇게 후회할 거니까 있을 때 잘 하라"고 아픔은 언제나 홀로 남은 자의 몫이라 그 고통 또한 그 무엇보다 큰가 봅니다.
허나 어찌하여이런 처절한 아픔만을 남기려 하였나요?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내 목소리 마져도 넉살스럽게만 느껴지니 당신께 지은 죄가 참으로 많았었나 봅니다.

철근과 회색 콘크리트로 잘포장된 플랫폼의 왼쪽 끝 자락에 열차가 서서히 몸집을 부풀리며 노란 안전선 앞으로 다가 옵니다.

열차에 오르려 서둘러 벤취에서 일어서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휑하게 불어오는 찬 겨울바람 뿐입니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나 그리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기 바로 몇해 전에 있었던 일이지요.

그해 겨울 어느 날 당신은 갑자기 이른 아침부터 여행을 떠나자고 나를 졸라댔고, 당신의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을 세세히 알고 있는 나는 당신의 뜻을 거부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몇차례 간 적이 있어 기억에 익숙해진 희방계곡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야 확연이 깨닯게 되었지만, 당신이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지 이미 어느 정도는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영주 부석사를 둘러보고 이곳 제천에 잠시 들러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고 때가 되니 출출하여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제천역 앞에 있는 자그마한 식당에서 단촐하게 점심 한 끼를 떼웠던 기억 또한 새롭기만 합니다

그 때 그 시간에 내 입 가장자리에 묻어난 음식물의 양념 자국을 보고 그리 좋아라 하며 티 없이 마구 웃어 놀려대던 그 얼굴도 존재치 않는 이 냉담(冷淡)한 현실이 전혀 믿겨지질 않습니다.
그리고 못내 순응(順應)하여야만 하는 아무런 힘이 없는 내 꼬락서니가 그저 망연(茫然)할 뿐입니다.

당신 섧디섧게 홀로 머물러 있는 그 산자락 희방계곡이 눈에 선하게 떠오름에, 설움 찬 마음인들 어찌 서두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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